좋은 엄마보다 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나에게서는 어떤 엄마냄새가 날까?

by 오후



혹시 막내세요?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사실 난 첫째다. 대체 첫째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고, 막내의 이미지는 또 뭘까?


내가 떠올리는 첫째는 든든하고 다부지고 앞장서서 다른 이를 챙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나는 확실히 그런 이미지가 아니다. 유약해 보이고 뒤로 물러서기를 좋아하고, 서툴러서 주로 챙김을 받는 편이다. 책임지는 것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 그런 면에서 막내의 느낌인 걸까. 막내의 이미지라고 하면 앳되고 독립적이고 자유분방한 느낌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좋지 않게 분석하는 습관대로 매우 나쁜 면만 떠올리고 있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건, 요즘 읽고 있는 <엄마 심리 수업>이라는 책에 나온 '엄마 냄새'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이 책은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쓰인 책인데,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투사적 동일시 현상을 이렇게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우선 감탄했고, 하여튼 나에게서 어떤 냄새가 날까 생각해보니 조금 심란했다.


여기서 엄마 냄새는 실제 엄마의 체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엄마가 아이 옆에 하루 몇 시간 이상 있어줘야 한다는 의미의 엄마 냄새가 아니다. (...) '엄마의 마음'을 의미한다.
엄마가 아이를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보면 아이 몸에는 귀여운 냄새가 밴다. 엄마가 아이를 못났다고 보면 아이 몸에 못난 냄새가 밴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못난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은 아이를 왠지 모르게 못난 아이 취급한다. 이게 엄마 냄새다.

*출처 : 엄마 심리 수업 (윤우상 저, 심플라이프)


우리가 자라는 동안 넌 똑 부러지지 못하다든지, 넌 어리 석어 빠졌다든지 하는 말들로 엄마가 무의식 속에 심어준 냄새. 우리는 어느새 그 냄새 같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아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 대한다. 아마 그렇다면 나에게서 풍기는 냄새는 '(뒷걸음질 치면서) 난 못 해'가 맞을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나약함의 냄새. 어쩐지 친구들이 "넌 그것도 못 하냐, 내가 해줄게"라고 하는 일이 많았고, 나도 도움을 받는 편이 늘 더 마음이 안심됐다.


어려서부터 뭘 하려고 하면 어른들로부터 <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어떨 때는 좀 해보게 하다가 역시 서툴다 싶으면 금세 "넌 그냥 하지 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그만두게 하셨다. 실은 돕고 싶어서 노력한 것인데 어린 나름의 논리로 반박하면 "웃기고 자빠졌네." 하는 비웃음이 돌아오기도 했다. 언제나 서툰 그 지점에 멈춰 서 있으면서, 혼자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대신 당신들이 직접 해주실 때 그 완벽함을 보면서 느꼈다.

'난 역시 안 돼.. 난 도움이 필요해.. 물러서 있을 거야.'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혹시 대학원에 가면 어떨지 집에 한 번 운을 띄워본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첫마디는 "요즘 박사 따고도 백수가 수두룩한데.." 였다. 왜 대학원에 가고 싶냐든지, 어떤 계획이 있냐든지 하는 질문은 없었다. 난 이미 백수가 될 무능력한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그때 어른들이 어떤 면에서 나의 도전(?)을 귀찮아하고 못 하게 했는지 이해도 된다. 아무리 해보는 말이라도 대학까지 투자가 이제 끝났는데 대학원이라니 싶었을 그 마음도.. 그렇지만 현실적 문제에 대한 효율적 답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었다. 나에게 뱉어진 그 말들이 나를 어떻게 속박했고 그로 인해 얼마나 자신감 없이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해주기가 힘들고, 그럼에도 내가 또 내 아이에게 똑같이 못 하게 하는 수많은 것들을 떠올리면 부끄럽고 참담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 가끔 내가 거꾸로 아이에게도 의지하고 있나, 하는 느낌이 들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이가 나를 보살피게 하면 안 되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어떤 냄새가 배어있을지..


아이를 키울수록 좋은 엄마란 어떤 엄마인지, 대상관계 이론에서 말하는 충분히 좋은 엄마는 어느 정도로 좋으면 된다는 건지 점점 더 모르겠기만 하다. 그보다 난 강한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의 부족함이 보일 때 같이 위축되어 흔들리지 않고, 아이가 어떤 일로 아파할 때 같이 약하게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부모의 자리를 지키는 그런 강한 엄마.

두려움에 아이를 탓하거나 단정 짓지 않고 버티는 쎈 엄마.

사소한 실수에 아이를 끌어내리지 않고 뒤에서 떠받쳐주는 든든한 엄마.

묵묵히 옆에 서있어 주는 기둥 같은 엄마.

그래서 나의 아이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세상에 도전해나갈 수 있는 언덕이 되어 주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믿음의 강한 냄새가 나도록 하고 싶다.


비록 나는 첫째 같지 않은 첫째이지만, 나약함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강한 엄마를 꿈꾼다. 어떤 점이 나약한 냄새를 나게 하는지 성찰하고 그 냄새를 지워나가고 싶다. 첫째 같지 않아 보여도 분명 부모님의 첫 육아라는 최전선에서 바람을 맞으며 강하게 첫째로 자랐고, 수동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많은 일을 적극적으로 책임지고 살아왔으며, 나의 존재는 무의식적 이미지나 과거 경험의 총합 그 이상 이리라 믿는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나의 냄새는 내가 정하기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