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냐고..

by 오후

작년 여름 친정에서 아이들과 며칠 머무는 동안 첫째 아이에게 아주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따끔하게 타이르면 되지 그렇게 크게 소리 지르고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 날은 마침 엄마의 핸드폰으로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이모에게 어린 둘째를 잠깐 보여드리고 아홉 살 난 첫째도 인사드리려고 불렀는데, 아이는 갑자기 대체 뭐에 그리 심사가 뒤틀렸는지 인사를 안 하겠다고 버틴다. 겨우 데려다 놓으니 벌러덩 드러누워서는, 아이고, 영상통화를 마치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는 소리쳤다.

"넌 왜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어!!"


첫째가 부끄러워서 인사를 못 하던 때가 있는 걸 안다. 하지만 이번은 부끄러워서가 아닌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본인 입으로도 귀찮았다고 한다. 세상에!! 귀찮았다니! 그것도 다 큰 아이가! 내가 벼락 치듯 화를 내니까 엄마와 아빠는 당황하시며 아이를 감싸신다. 그러다 엄마는 상황을 무마하고자 아이 보고 어서 잘못했어요 하란다.


"엄마, 그냥 잘못했어요 하라고 하면 얘는 뭘 잘못했는지 몰라! ㅇㅇ아, 네가 그러면 이모할머니가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그리고 이모할머니는 할머니한테 언니야. 언니한테 인사도 안 하려고 하면 할머니가 또 얼마나 속상해!! 할머니가 너한테 맛있는 것도 해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네가 그러면 돼?! 넌 왜 그렇게 못됐어!"





큰 아이는 놀 줄 모르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놀거리 없는 시골 외갓집보다 잘 놀아주는 친할머니, 구경거리 많은 도시 할머니 댁을 더 좋아한다. 그야 아이들 다 그럴 수 있지만, 나도 실은 적극적으로 챙겨주시는 시어머님이 우리 엄마보다 더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러면 엄마에게 못 된 딸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재밌게 대화 나누시고, 머리도 이쁘게 땋아주시고, 밖에 데리고 다니며 재밌게 놀아주시고, 딱 나도 원했던 엄마의 모습이 시어머니에게선 보이니까. 가끔 남편이 부러울 정도니까. 그래서 아이가 친할머니를 더 따르는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이해 가는 마음조차 한편으론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애쓰는데.. ㅇㅇ이 무척 이뻐하는데..'

난 첫째의 그런 편애가 말도 못 하게 얄미웠다. 정작 나도 엄마의 재미없는 면을 싫어했으면서도..

나야말로 엄마의 마음을 외면해 왔으면서도..


사실은 나도 어렸을 때 외갓집 가기를 꺼려했었다. 우리 집은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그때 우리 호랭이 할아버지는 동네에도 나다니지 못하게 해서 엄마는 눈치 보느라 이웃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게다가 난 낯을 무척 가려서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했고, 초등학교 때까지 차멀미도 심해서 어디 시내라도 나가려면 버스 타는 것부터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러니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3시간 거리 외가에는 도통 가실 수가 없었다. 자라면서 외가 친척들은 거의 얼굴을 본 적이 없고, 엄마는 외가의 대소사에 아직까지도 우리를 부르지 않고 아버지와 둘이서만 다녀오신다.


나야말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다. 전부터 눈치로 그렇게 느꼈다. 언제나 내가 문제라는 느낌이 있었다. 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이였다. 나 때문에 엄마는 엄마를 보러 가지도 못했다는 괴로운 마음.. 심한 죄책감.


그래서 기껏 밥상 차려놨는데 아이가 바로 먹으러 오지 않으면 화가 나는 건.. 옛날에 엄마가 밥 먹으라 그러면 내가 맨날 미적대면서 먹기 싫어하고 책이나 들여다보고 그랬기 때문에..

엄마 힘들게...


밖에서 할 일은 똑 부러지게 다 했지만, 집에선 말 안 듣고 고집부리고 떼쓰고 원망하고 그랬다.

엄마 힘들게...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단점을 써보라 하면 변덕이 심한 걸 꼽았다. 뭘 하려다가도 갑자기 하기 싫어지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무서워서 싫어지고 그랬다. 어른들이 싫어했다. 나는 늘 말을 안 들어서 엄마를 힘들게 했다.


언제나 희생하는 엄마의 굳은 표정.

저질러 놓고 불편한 마음.

엄마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운 마음. 이러면 안 되겠구나 싶은데 그렇다고 잘 고쳐지지 않는 답답함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이번에 들여다본 심연은 바로 이것.. 말 안 듣는 아이는 나쁜 아이이고, 난 왜 이 모양으로 말을 안 들어 엄마를 힘들게 하냐며 아직도 나에게 계속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넌 왜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하니?"


그런 말 절대 하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멈춰지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스스로를 매일같이 탓하던 말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한 말이었기 때문에.. 아이는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럼 나쁘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그걸 이제야 알았다. 심리학 좀 공부했다고, 나름 상담사라고 타인의 마음은 잘 들여다보지만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렇게나 헤맨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더 이상 아이를 탓하고 화낼 일이 아니라는 것을.. 또 더 이상 나에게 화낼 일도 아니라는 것을.. 나도 그냥 아이였을 뿐이다. 내 아이가 그러고, 또 대부분 아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30대 전후로 심리상담도 받으며 공부도 하며 스스로에 대해 이제 괜찮다고 여긴 것은 그 사이 내가 나아지고 바뀌었기 때문이지, 예전 날 것 그대로의 어린 나까지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용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아이와 지내는 게 힘들지 않았다.

아이와 있으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내가 불같이 화를 낼 때 아빠는 손녀를 감싸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라며, 생전 아빠에게서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주 묘한 기분이 들어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한참 동안 곱씹어보았다.


예전 심리상담에서 완벽주의가 있는 내담자에게 그 말을 들려줬을 때, 낯설고 신기한 듯 반응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스스로 '그럴 수도 있죠'라고 말하며 웃던 모습까지 생생하게.. 하긴 그전에 내가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 선생님께 그 말을 들은 것도 강렬했었다. 바라던 것들이 전부 내 욕심이라 혼날까 두려웠던 기억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고 수용받은 경험은 10년이 다 되어도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의 잔잔하고 담담한 말투부터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던 모든 순간들이 다..


그럴 수도 있지.


이젠 그 말을 아빠에게서도 듣는다. 비록 내게 해주신 말은 아니어도 괜찮아. 난 나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어렸을 적 했던 잘못들도 전부 잘못은 아니었다고 용서해줄 거니까. 내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들도 마음껏 인정해줄 거니까.


'넌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아. 그리고 설령 넌 그럴 수도 있었어.'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내내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때의 엄마, 그때의 나, 그리고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