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우리 딸이 겨우 한 살이던 그 해 겨울, 분유를 먹이면서 여느 때처럼 아기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의 왼쪽 눈동자가 회색으로 비쳐 보이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새까매야 할 동공 부분이 짙은 회색으로 뿌연 모습이었다.
이상했다. 자세히 다시 보려 해도 태어난 지 한 50일쯤 되었을 때라 쉽지가 않았는데 틈틈이 살필 때마다 분명 회색빛인 것 같았다. 근처 유명한 안과에 데려가니 제대로 보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잽싸게 눈을 들여다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런다. 아기들 동공이 뿌옇게 되는 것은 선천성 백내장이라는 병인데, 그거 절대 아니라며 걱정 말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이런 일로 왔냐는 듯이..
그런데 엄마의 감이란 게 이런 거였을까?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으면서도 영 불안한 마음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하도 걱정하니 남편이 그럼 안과를 한 군데 더 가보자고 의견을 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직전 들러본 두 번째 안과에서 결국 우리 아이는, 절대 아니라던, 바로 그, 선천성 백내장이 의심된다며 서울대 어린이병원으로 가보라는 소견서를 받아오게 되었다.
서울대 병원이라는 말에 겁부터 확 났다.
뭐든 치료 좀 받으면 되는 건 줄 생각했는데,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어 초조해졌다.
이듬해 초, 새벽같이 장거리 택시를 타고 서울대 병원에 초진을 받으러 도착했을 때,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아픈 아이들을 보고 나는 서글픈 떨림과 낯선 자각을 느꼈다.미뤄두었던 심각성이 그제야 피부로 와 닿는 것 같았다.
그 날 정밀검사 끝에 아이는 결국 좌안 선천성 백내장으로 진단을 받았고, 한시라도 빨리 혼탁해진 수정체를 제거하기 위한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 전 검사를 이것저것 받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어른들만 백내장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기에게도 백내장이라니..
아기는 내내 엄마의 어두운 뱃속에서 자라다가 드디어 자궁 밖으로 나오면서 눈부신 빛을 접하고 시신경이 급속히 발달하기 시작하여, 생후 100일까지 평생 시신경의 절반 정도가 형성되고, 8세경 시력이 완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어릴 때 백내장으로 수정체가 혼탁해지면 빛이 눈 속으로 잘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시신경의 발달을 저해해 평생의 시력을 떨어뜨린다.
우리 아이는 수술받는 날이 딱 100일쯤이었으니 시신경 발달의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어 말도 못 하게 속상하고 걱정도 컸다. 백내장을 발견한 것은 50일쯤이었지만 그전부터 진행되었던 걸 몰랐을 수도 있고..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지도 모르니..
앞으로 8살까지 최대한 왼쪽 눈의 시력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력을 키웠다. 백일 사진도 급히 앞당겨 수술 전에 미리 찍어놓고, 다음의 PHPV라는 카페에 가입을 해서(이 카페 도움 진짜 많이 받았어요!) 수술은 어떻게 받는지, 예후가 어떤지 수없이 찾아보고 또 찾아보며 시간은 흘러갔다.
작디작은 아가 눈에 컨택트렌즈를
2박 3일간 입원해서 수정체 제거 수술을 무사히 잘 마치고, 퇴원 한 달 후 진료에서 앞으로 왼쪽 눈의 수정체를 대신해 줄 컨택트렌즈의 도수를 재고 왔다.
(양안 백내장이면 인공수정체 제거 후 안경을 쓰도록 하는데, 단안이면 수술한 눈에만 컨택트렌즈를 끼고 보도록 한다. 어린 아가들에게는 둘 다 시련이다...)
아기가 끼는 매우 작고 높은 도수의 렌즈는 국내에서 생산이 되지도 않아서 미국의 렌즈 판매 사이트에 직접 들어가 주문을 하고 보름은 넘게 걸려 받아야 했다. 병원에서는 산소투과율이 높은 특수 렌즈라 밤에 끼고 자도 괜찮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세척해주면 된다고 설명해주었지만, 실제로 능숙한 분들은 매일같이 갈아 끼웠고, 우리는 그건 어려워 2~3일에 한 번 정도 렌즈를 빼서 세척해주었는데 다행히 염증 한 번 생긴 적 없이 잘 지나갔다.
렌즈 구매 방법부터 세척액은 뭐가 좋은지, 세척 방법은 어떻게 하는지, 렌즈 끼우고 빼는 노하우까지 카페에서 얻은 정보 덕분에 다 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기의 작은 눈에 렌즈를 끼우는 일은 말할 수 없이 고역이었다.
남편과 나 둘 다 안경을 끼기 때문에 렌즈를 껴본 경험은 있었지만 내 눈에 렌즈를 넣고 빼는 것과 아기 눈에 해주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손톱이 눈을 잘못 건드려 상처라도 날까 봐 늘 걱정이었고, 가끔 끼고 빼기가 잘 안 되는 날에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 죄책감에 시달렸다. 렌즈가 눈 가운데에 잘 자리하고 있는지 강박적으로 살피면서 종일 나는 아이 얼굴이 아니라, 왼쪽 눈만 바라보면서 살았던 것 같다. 눈을 잘못 비비기라도 하면 렌즈가 빠질 수 있어서 아이에게 눈도 못 비비게 하고, 가끔씩 눈을 감게 해 내 손으로 살살 쓸어내려 주었다.
그럼에도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렌즈가 갑자기 빠져서 케이스에 챙겨 넣고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고, 렌즈를 빼주려는데 계속 안 잡혀서 보니 눈에서 이미 빠져있어서 잃어버린 적도 있다.
(렌즈를 오랫동안 못 끼면 시력이 유지되는 게 아니라 나빠지기 때문에 가급적 늘 끼고 있어야 한다. 여분을 두고 쓰기는 하지만 새로 사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잃어버리지 않는 게 최선.)
그리고 렌즈는 아이 모르게 밤에 잘 때 넣고 빼고 한다고 해도 하루에 몇 번 인공눈물을 넣어줘야 했는데.. 아이들 다 그렇겠지만 특히 겁 많고 예민한 우리 딸이라 눈에 무언가 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서울대에는 3~6개월에 한번씩 검진을 가서 눈 상태도 체크하고렌즈 도수도 다시 재고 와야 했다. 눈을 검사하려면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아기들은 협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면제를 먹이고 검사를 한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 수면제 약은 조금 맵다고 하는데.. 안 그래도 아기 약 먹이는 일은 어려운 일인데 그것도 매운 약... 그것도 낯선 사람이 주는 약을... 아이는 절대 먹지 않으려 했다. 바둥대며 엉엉 우는 아이의 코를 쥐고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해서 약을 먹이는 일은 아이를 붙잡고 있는 내 몸도, 마음도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나마 그렇게 먹인 약은 토하는 일도 왕왕 있어서냄새나는 옷을 입은 채로 교수님을 만나고 지하철을 타고 인천까지 되돌아온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때는 차도 없었던 때라..
한 때 온라인에 떠도는 영상 중에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가 수술을 받고 생전 처음 들리는 소리에 무척 놀라는 모습과 이를 지켜보면서 감격한 아이 엄마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있었다. 우리 아이도 처음 렌즈를 끼워준 날 주위를 둘러보며 놀란 표정을 짓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오른쪽 눈에 의지해 보던 것과 다르게 더 잘 보였나 보다.
아기의 그 모습이 어쩌면 나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왼쪽 눈을 갖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버티지 않았을까..
(좌)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처음 수술받았을 때 (가운데) 3살 때 가림치료 하는 모습 (우) 4살 때 인공수정체 삽입 수술을 받고나서 한 달 동안 안대를 하고 지냈을 때
6년 간의 가림치료
백일 때 수술을 받고 퇴원한 후 바로 우리는 아이의 오른쪽 눈에 가림패치를 붙여서 1시간씩 가림치료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였다. 가림치료는 우리 아이의 경우 왼쪽 눈으로만 보는 시간을 가지게 해서 시력을 키우는 원리라 오른쪽 눈에 패치를 붙여야 했다. 그 말인즉슨, 패치를 붙여 잘 보이는 눈을 가렸으므로아이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엄청 짜증을 냈고 처음에는 그냥 잠이 들어 버리기도 했다. 4~5개월이면 아기가 한 번에 깨어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1시간을 가림치료한다는 것도 상당히 긴 편이었다. 안고 다니며 이것저것 보여주고 얼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병원서 처음 알려준 3M 패치는 또 어찌나 접착력이 강한지, 몇 번 붙였다 떼면 여린 피부가 금세 헐어서 더 좋은 패치를 수소문해야 했다. 국내에서 파는 거의 모든 패치를 다 써본 끝에 결국 유명한 오르토패치를 직구해서 정착했는데, 그나마 아이가 돌쯤 되니 자기 손으로 패치를 떼어내는 능력이 생겨버렸다. 호되게 혼을 내서라도 패치에는 절대 손을 못 대게 했다. 시력차가 크게 나면 두 눈 중 잘 보이는 눈에 의지해서 보는 게 편하므로 약시인 눈은 사용을 잘 안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가림 없이는 렌즈를 껴도 시력발달이 효과적으로 되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점점 가림을 하고 보는 것에 익숙해지고(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도 잡아낼 정도!) 아예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한 탓인지 아이는 가림치료가 으레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거부 없이 나중에는 하루 3~4시간의 가림치료를 7살까지 꼬박 해냈다.
집에서만 있기보다 밖에 나갔을 때 가림치료를 덜 힘들어하고 더 호기심 있게 주위를 둘러봐서 패치를 붙이고 외출도 꽤 많이 했었다. 대신 그렇게 밖에 나가면 말 걸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고.. 아기가 눈을 다쳤나 보네.."
"눈에 이거 왜 붙였어요?"
점점 클수록 놀이터에서 만나는 또래 아이들이 묻기도 했다. 다행히 시력 교정 때문이라 말하면 대부분 그런가 보다 넘어갔고, 오르토패치는 디자인이 알록달록하니 예뻐서 우리 아이가 붙이고 있는 걸 오히려 부러워하는 아이도 있었다. 마치 안경 쓴 친구 부러워하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우리 아이는 6살부터 안경도 쓰기 시작했다. 요즘은 일찍부터 안경을 쓰는 아이들이 많아서눈에 띄는 흠도 아니었다.다만 이게 TV를 많이 봐서 안경을 쓴다는 오해가 흔해서 그런 잔소리 한마디를 들으면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래도 언제나 당당하게, 약시인 것을 속상해하지 않으면서 사람들 앞에 나섰다. 나도 아이도.
(좌) 처음 안경 맞춘 날. 엄마 아빠처럼 자기도 안경을 쓰게 되었다고 아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우) 돌아보면 모두가 예쁜 나날이었다.
어떤 일은 그저 일어날 뿐..
처음엔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고, 믿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혼란스러웠다.그런데 서울대 초진을기다리던 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사소한의문이 들었다.
'그럼 불운한 일을 겪은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과연 생각했을까?'
아니다. 그랬을 리 없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일이 일어난 거다.누구에게나 바라는 일만 일어나는 게 아니고, 피하고 싶은 일을 모두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그러니 어떤 불행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을 짓누르던 불쾌감이 한층 옅어졌다. 진단을 받고 난 뒤에도 훨씬 담담할 수 있었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일어난 것뿐이니까.
물론 진료실에서 교수님을 만나 확진을 받고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났는데..
그걸 본 간호사 선생님은 "엄마,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수술만 하면 볼 수 있잖아요. 더 안 좋은 경우들도 많아요."라고 너무나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해주셨다. 이게 별 일 아니라고 말해주는 그 '단호함'에서 오히려 안도감이느껴졌다.
그럼에도 어느 날 렌즈 빼주기에 실패했을 때,
가림패치를 붙여 짜증 내는 걸 달래줘야 하는데 나도 지쳐서 웃으며 놀아주기 힘들 때,
가끔 모든 게 자신 없어지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아이의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탈 없이 잘 키웠고, 맛있는 걸 먹고, 재밌는 경험을 하고, 함께 뛰어놀고 함께 웃으며 살았다. 잘 보이는 오른쪽 눈에 감사하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그 외의 행복한 일들을 또 많이 누리며 살아왔다. 어떤 불행한 일도 그것이 앞으로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4살에 인공수정체 삽입 수술을 받은 뒤로 이제 밤에 렌즈 빼고 끼울 걱정 없이 맘 편히 같이 자면서 어린이집에도 보내고, 여름엔 물놀이도 하고, 드디어 렌즈에서 해방된 보통의 육아를 만끽하기도 했다.
6살에 안경을 쓰고 나서 왼쪽 눈의 교정시력은 0.1 정도였는데, 지금 10살엔 교정시력이 0.4 정도로 많이 올랐다. 이제는 그저 보통의 아이들처럼 오른쪽 눈 근시만 걱정하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왼쪽 눈이 너무 약시라 후천적으로 사시가 생겨 그것이 또 한참 애를 먹였지만 작년 교정 수술을 하고 나니 눈이 더 예뻐졌다.비록 사시수술 후로 안압이 살짝 높아졌지만 우리는 또 그것을 신경 쓰고 걱정하면서 열심히 웃고 살아가겠지.
이토록 길게 적어내려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여러 다른 기억들과 서러움이 생생하게 남아 있지만, 그마저도 다 하나의 추억처럼 느껴진다.
힘들었어도 잊고 싶지는 않은 특별한 추억들로..
안 좋았던 일들도 겪어내고 나면 조금은 자랑거리가 된달까, 시간이 흐르면 옅은 빛깔로 희석되기에 우리는 숨을 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어떤 날이었든 행복으로 기억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