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

by 오후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은정이란 인물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상담실 장면을 통해 잠시 그려진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엄마와 놀이동산에 갔던 날인데, 은정은 우울한 엄마의 옆을 지키느라 즐겁게 놀지도 못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펑펑 눈물을 쏟고 있었다.


'바보같이... 왜 엄마 눈치만 봐'

'아이 마음 좀 봐주지, 저 엄만 뭐 하는 거야'


우는 장면에 맘이 너무 아프면서도 어쩐지 매우 화가 났었다.


실은 우리 엄마도 어린 내 기억 속에 전혀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겉으로는 웃지만 그 속에 우울이 느껴진달까..

어두운 표정이 맘에 걸려 자꾸 눈치를 보곤 했다. 엄마가 안쓰러웠고, 그러니 엄마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어렸을 때 엄마와의 추억도 별로 없다. 같이 즐겁게 놀았던 기억도 없고.. 다정하게 머리를 빗어주신 적도 없고.. 아는 사람 누구나 다 우리 엄마를 착하고 따뜻하다고 말하지만, 아마 대가족 시집살이를 하면서 집안일에 과수원 농사에 너무 바빠서 그랬을 거라 생각된다. 타박만 해대는 시부모에, 그렇다고 무능력한 남편이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연년생 자식들에, 아무도 위해주는 사람이 없는 지치고 고된 삶. 어쩌면 그때 엄마 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늘 붙어 지내던 고모가 결혼을 해서 떠나고 나름 좀 큰 이후로 집에서 내 역할은 엄마를 챙기는 일이었다. 도통 시키는 분이 아니셨는데 그럴수록 알아서 간단한 빨래나 내 방 청소, 설거지처럼 할 수 있는 일은 하려고 다. 에 앉아서 과자나 먹으며 tv 보고 놀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맨날 나랑 동생에게 양보만 하고 엄마는 맛있는 것을 한 번도 편히 앉아 같이 드시지 않는 게 싫었다. 나 때문에 엄마 못 먹는 것 같아서.. 내가 엄마 몫을 빼앗은 기분이라서..

일이 많아 피곤한 엄마와 함께 놀고 얘기하고 싶은 나는, 엄마의 간절한 휴식을 뺏으려는 나쁜 아이.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굳어져있는 표정을 보면서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

심지어 착한 엄마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권리를 나라도 대변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 맞서 싸우고 하면서..
그렇게 해서 나는 아마도..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 그러면 안심이 될 것 같았나 보다.



드라마 속 은정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아마 놀이동산에 갔던 날은 은정이 엄마라는 타인의 감정을 스스로 짊어지기 시작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날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힘들었다는 비로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은정은 마치 쎈언니처럼 정의롭게 주위 사람들을 지켜왔지만, 정작 힘든 자기 마음은 돌봐주지 않았다. 상담실에서 괴롭게 울면서도 그런 자신을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 아렸다. 자기가 한없이 아픈 순간에도 남 걱정부터 하다니...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은정에게 선생님은 '마음에 담겨있는 눈물을 흘려보낸 것'이라는 말로 로했다.

엄마의 감정을 흡수해버린 딸의 모습,

자신의 감정은 없고 남의 감정들만 신경 쓰는 모습,

그 모습이 꼭 나 같기도 해서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내 마음속에도 눈물이 가득 담겨 있던 때가 있었기에.

난 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앞에 두고, 나를 뒤에 놓는 편이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불편했고.. 누군가의 굳은 표정이 싫어서..

굳은 표정이라... 맞다. 그동안 계속 눈치 보면서 배려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싶은 사람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결국 우리 엄마였던 것이다.
어릴 적 엄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패턴이 이후 대인관계에서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가지고.. 어느 순간 엄마의 감정을 뒤집어쓴 채 어린 시절을 잃어버렸다. 눈치 없이 어린이다운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일찍 어른이 되어 살아왔다.



그렇지만 이제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게 필요한 웃는 얼굴은 우리 엄마뿐이었다는 걸, 모든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아 홀가분하기도 했다.

엄마의 힘들었던 인생이야말로 슬프지만 엄마의 몫이었다는 것을, 내 몫은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살아가면서 과연 내 얼굴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나는 웃고 있는지..
진심으로 웃고 있는지..
내 아이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그런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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