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있지만, 사랑은 희미하게 숨겨져 있다

by 오후


엄마는 내게 집안일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시집 가면 실컷 할 거라며

미리부터 할 필요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언제나 좋은 건 우리 남매에게 주시고, 당신은 쉬지 않고 일만 하셨다. 그만큼 아껴주신다는 걸 느꼈다.

자식을 너무나 아껴서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사셨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마에게서 내가 배운 건..

그런 희생하는 삶 자체였다..


왜냐하면 우리 앞에서 엄마 자신을 아끼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셨으니까.

남을 아끼고 배려해야 한다는 건 배웠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돌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적당히 자신도 챙기셨으면 좋으련만 엄마의 희생이 너무나 감사하고 죄송하고 또 사실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했다. 난 등골을 빼먹는 나쁜 아이라는 느낌과 함께.. 왠지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든 거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바랐던 건..

즐거운 순간을 엄마와 함께 나누는 보통의 삶이었을 뿐..


그렇지만 엄마는 너무나 바쁘셨고 얼굴은 어딘가 늘 고달프고 슬퍼 보이셨다. 힘겨워 보이는 그 삶을 통해 나는 더욱 연약해져 갔다. 사랑받는 것 같지만 어딘가 불편한 그런 마음이 내내 있었다.



또 우리 엄마는 늘 그러셨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라고..

양보하라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남에게 못되게 굴면 다 돌아온다고..

조금 손해 봐도 괜찮다고..


물론 이 가르침이 나쁜 것도 아니고 분명 엄마에게 나는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아버지에게 늘 지기만 하고 갈등을 피하며 자기 몫을 챙기지 않던 엄마의 모습 그 자체를 또한 배웠다.

겸손이라기보다는 타인 앞에 때로 무력한 모습이었다.


꿈에도 모르셨겠지..

집에서 큰 소리 나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 자신을 누르고 또 누르며 간신히 버텨왔는데

그 고통스러운 방법을 아이가 배울 줄은..

당신은 그렇게 자식을 아꼈는데 대체 뭐가 그리도 힘들어 죽겠다는 건지 이해 못 하셨겠지..

세상 귀하게 키웠는데 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지 도통 알 수 없으셨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몫을 갖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느낌에 사로잡혀서 살았다.

혼자 편히 앉아서 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방법을 심리학에서 배우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가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생을 한 우리 엄마인데..

그 누구보다 애쓰고 노력하셨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지만 그래서 나는 거짓 웃음만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엄마로서 내가 아이에게 하는 말과 행동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나의 삶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나를 아껴줌으로써

아이에게 스스로 아끼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지..

내 몫을 정당히 주장하고 대우받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가 자신의 몫을 지키고 남에게 대우받는 법을 알게 하고 있는지..


드라마 <고백부부>를 보다가, 얼룩진 낡은 옷에 초라한 모습으로 유모차를 미는 진주에게서 쓸한 공감을 느꼈던 적이 있다.

아이를 애지중지 돌보기 위해 마치 시중이나 드는 하인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여행으로 두고 온 아들 서진이를 걱정하며 밤마다 우는 진주를 보면서 문득,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그렇게 소중한 존재를 키워내는 엄마의 존재도 중요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는 절대 하찮은 하인 따위가 아니라

그 누구도 하기 힘든 가장 귀중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아이가 소중하다면,

엄마의 자리도 똑같이 소중하다.



연약한 딸로 보호받으며 살던 아이가

어느새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을 만큼,

오랜 세월을 거쳐 이제는 나를 그렇게 키울 수밖에 없었던 우리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 알 수 있게 되었고,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저만치서 늘 주고 계시다는 것도 알 정도가 되었.


하지만 시간을 거치는 동안 때론 그 사랑이 너무 무거워 괴로웠던 만큼 내 아이는 과한 희생을 받으며 죄책감 갖게 하고 싶지가 않다.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편안한 사랑을 알게 하고 싶다.

희생하지 않고도 그저 기쁜 사랑을..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 자신감 갖는 사랑을..

그저 이 순간 조금 부족하더라도 함께 웃는 나날들을..


그 시작은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일 것이다.

부모의 말이 아닌 삶에서 아이는 배운다.

엄마가 된 내 삶 여전히 소중하다.




"내 삶이 곧 내 메시지다."
간디가 한 말입니다.
얼핏 들으면 자신감의 표현인 듯싶지만
다시 보면 지극히 겸손한 말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 아이가 듣는 메시지는 아니라는 것.
아이에게 비춰지는 내 삶이 메시지라는 것.
참 겁나는 말입니다.


- 서천석,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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