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지만...

엄마는 그래도 참 속상하다

by 오후



딸아이가 단짝 친구에게 오해를 받았다.



단짝이 그려놓은 캐릭터와 그 이름을 따라서 이름 붙였다고 말이다. 지유와 지우. 마침 이름이 비슷했던 모양이었다. 어떤 캐릭터인지 우리 아이는 본 적도 없는데... 흠..

아직 자기중심성이 강할 10살이다 보니 상대 아이 입장에서는 순간 그런 오해가 들었을 수도 있지 싶다. 그리고 단짝 아이가 전에 우리 딸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가 나중에 사과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거꾸로 그런 오해가 들었는가도 싶었다.


아무튼 그 아이가 막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는데, 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오해받은 게 더 억울한 데다.. 자기 잘못도 없는데 미안하다고 해서 그 친구를 달랠 수도 없는 일이니 어찌할 도리 없이 울면서 집에를 들어온 것이다.


그 후에도 절교를 하느니 뭐하니 메시지를 보내며 그 친구는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일단 그런 믿음이 들면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건 이해하면서도.. 억울하고 곤란한 딸의 입장도 있으니.. 엄마인 내가 더 속상해하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 정 멀어지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일러주고 나도 맘을 먹지만, 봄부터 워낙 둘이 친했던 지라 섭섭한 마음도 크고.. 하필 딸 생일이라 친구들 불러서 힘들여 파자마 파티까지 해줬는데 그 직후 일어난 일이라 솔직히 허탈한 마음도 있었다.


다행히 둘이 며칠 후 학원에서 만나게 돼서

딸아이가 잠깐 얘기 좀 하자며 서로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기는 했는데...

그 뒤로도 한동안 그 친구의 따돌림이 있었다.

원래 한 살 어린 친구까지 셋이서 친했었는데(파자마 파티도 이렇게 세 명이 함께 함), 단짝과 어린 친구 둘이 같이 놀면서 우리 딸을 소외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전 같으면 셋이 상의해서 같이 놀러 갈 일을 우리 아이에게는 묻지도 않고 둘이서만 약속 잡고는 어디로 놀러 간다고 자랑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룹 내에서 싸움이 나면 편이 갈라지거나 한 사람이 쫓겨나는 일이 사실 흔하기는 하지만, 아무리 흔하다 해도 따돌림이 당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힘든 일이니...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그 뒤로 이 일을 알게 된 남편까지 같이... 딸의 편을 들면서 어느덧 상대 아이들의 행동을 같이 비난....ㅠㅠ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부모의 자리를 지켰어야 하는데, 똑같이 아이들 수준으로 내려가버렸다.

이거 참 부모 노릇하기가 너무 어렵다.



* 이미지 출처 pixabay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우리끼리 험담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지 말고,

마치 상담실에서 하듯 딸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풀어내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니? 시간이 너무 지나면 전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해."


할 말 없다며, 아니 해봤자 들어주지 않을 거라며, 한사코 부정하던 딸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 핸드폰을 손에 들고 머뭇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짜증 나.."

"뭐가 짜증이 나는 거야?"

"나만 빼고 둘이 그러니까.."


짜증 난다고 그대로 메시지에 적으면 받는 사람 기분이 나빠지니까 다른 표현으로 돌리려 다시 물었고 그렇게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했더니,

딸아이는 결국 이렇게 메시지를 완성했다.


'너와 화해하게 돼서 기뻤는데

자꾸 너희 둘만 노니까 나도 속상해.'


답은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보내기로 했다. 일단 마음을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만도 의미가 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칼답장이 왔다.


'엄마들이 약속 잡았던 거라 어쩔 수 없었어. 미안. 나도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았어.'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단짝과 어린 친구네 엄마들은 먼저 안면을 튼 사이라 전부터 그 둘이 같이 다니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필 이 시기에 서로 오해가 겹친 모양이었다.

석연치는 않지만 아무튼 단짝 아이도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덕분에 그날 딸아이는 기분이 개운해져서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며칠 더 시간이 지나니 다시 친해져서 주말 내내 셋이 같이 붙어 다니며 놀다가 또 작게 투닥거리다가 아직은 위태위태한 상황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더 견고해질 사이인지, 이대로 멀어질 사이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가능한 상처를 줄이면서 앞으로 나아가 보는 수밖에...






실은 나도 예전에 친했던 친구 둘에게서 갑자기 소외된 일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다 큰 대학생 때...

중고등학교와 다르게 서로 거리두기가 어렵지 않으니 큰 어려움은 없이 지나갔고.. 둘 중 한 친구와는 나중에 다시 친해졌지만..

마음은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난 그때 왜 아무 말도 묻지 못했던 걸까.

혼자서 생각하며 내가 잘못한 이유를 만들었던 걸까.


이번 아이의 일을 겪으며 그때 터놓지 못한 내 마음이 같이 전달된 것 같아 약간의 대리만족도 있고 안도감과 함께 그리운 마음도 들고 기분이 오묘했다.

그리고 돌아보면 내가 싸우고 나서 다른 친구들을 밀어낸 일도 있었을 것이고..

여자들 싸움을 지겹도록 겪으며 지금까지 왔는데..

이 싸움을 우리 딸도 지겹도록 겪으며 커나가야 할 것 같아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작년 슈퍼밴드를 통해 알게 된 후로 아껴 들었던 <Still fighting it>이라는 곡 있는데,

날 닮아 미안하다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이 노래처럼,

엄마도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다.


중학교 때부터 가장 많이 싸운 친구와 쭉 가장 친한 걸 보면 '다 자라는 과정이야' 싶지만 그래도 그 수없는 맘고생을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내가 자란 길을 따라 반복되는 굴레를 견뎌내야 할 우리 딸에게..

아무리 말해도 피할 수 없이 서툴게 자라날 너에게..

부디 힘내라고, 그리고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 Ben Folds - Still fighting it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 대신 골라보지만, 이 곡 역시 너무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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