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일도 오니까

by Sophie

1.

드디어 붕어빵의 계절이 왔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좀 더 풀빵이나 국화빵 취향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서울에서는 붕어빵도 감지덕지다. 회사 앞에서 겨울마다 붕어빵을 파시는 할머니는 서울시세와 맞지 않게 팥도 슈크림도 1000원에 3개나 주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스락 종이를 받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이 붕어빵 한 쪼가리에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인데 세상이 왜! 세상이 뭔데 나를!


생각해 보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조그마한 것들이 참 많다.

갓 빨아서 꼬순내가 나는 이불.

출근하자마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내리는 신맛 나는 커피.

비온 후에 마알간 공기 속에서 하는 산책 같은 것들.

이런 것들로도 쉽사리 행복해질 수 있다니 참 괜찮은 삶이다.


혹시 오늘 잠시 힘든 일이 있더라도, 우겨쌈을 당해 더 이상의 햇빛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괜찮다.

오늘 이불을 빨 수 있는 코인 빨래방 잔액이 있고,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모아둔 신맛 나는 커피콩들이 있고, 비는 내일도 오니까.

매일매일 다시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으니까.


붕어빵이 참 따뜻하고 맛있었다.



2.

오늘 퇴근하던 길에 갑자기 옆자리 동료가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제가... 임신을 했거든요.”

우와. 잠시 벙쪘다가 헤어지는 순간까지 요란한 축하 인사를 했다.


집에 돌아와 선물로 보낼 과일청을 결제하던 중 문득 임산부는 꿀을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 떠올라 마카롱으로 급히 종류를 바꾸었다.

참 서툰 축하가 아닐 수 없다.

가까운 누군가의 임신이 나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매일 만나던 동료의 배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니. 신기하다. 괜히 내가 벅찼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친구한테 임신 선물 처음 줘봤다? 정말 신기해."

물론 엄마가 이해했을리가.

“그게 왜?“

엄마야 삼십년동안 수도 없이 해본 일이겠지만 나는 아니란 말이야.


아직도 처음인 게 너무나 많다.

아직도 처음 경험해 볼 경이와 행복이 차고 넘친다.

27년이나 살았음에도 그렇다면, 앞으로 60년간 남은 게 얼마나 많다는 소리야.

개꿀이다.



3.

어린 시절 집 베란다에 있던 화분에 꽃봉오리가 맺혀 한참을 그 앞에 앉아 꽃이 피길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몇 날 며칠을 바라볼 때는 그렇게도 펼쳐지지 않던 꽃잎들이 어느 날 내가 낮잠 자던 때에 활짝 피었다.


그럼에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내가 들여다볼 때에만 꽃이 핀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던, 친구던, 연인이던, 내가 물을 주고 정성을 쏟을 때에만 자라난다고 생각했다.


참 오만한 생각이었다.

오늘에서야 알겠다, 내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은 물을 주고 햇빛을 내리신다.

내가 보지 않는 순간에 꽃대가 자라난다.

움켜쥐었던 손을 펴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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