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저녁, 곧 귀국하실 지부장님께 너무 귀여운 카톡을 받았다.
'저 질문이 있는데 혹시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거나 싫어하거나 그러신가요?
제가 사랑하는 초코를 두고 가도 되나 해서요. 아내가 거부권을 행사해서 ㅜㅜ.
지부에서 사시게 되면, 초코랑 지내시는 것도 좋습니다.
사람을 좋아헤서 귀찮게는 하지만 쥐를 예방하는 중요한 기능도 있습니다.
간사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차장님이 초코를 쫓아내겠다고 해서요.'
메시지를 읽고 한참을 웃었다.
'지부장님 안녕하세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하는데, 같이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알레르기가 있는지는 모릅니다.
괜찮지 않을까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한다.
귀여운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중에서 고양이를 특히 더 좋아한다.
어른이 되면 반드시 고양이를 키우리라 학창 시절 내내 다짐했건만,
집에서 나와 산 지 8년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한 아이도 데려오지 못한 것은 쓸데없는 두려움이려나.
어른이 된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 이외의 다른 생명 하나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는 거다.
그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반려자가 되지 못할 내가 벌써부터 실망스러운거다.
결혼도, 육아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는 결국 두려움에 떨다 평생 쓸쓸할 것을 선택할지도,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2년만 함께 살 고양이라면 너무너무 환영이지.
심지어 사람을 좋아한다니.
너무 설렌다.
2.
꽤나 기도할 제목을 잘 만드는 편이다.
어떠한 순간에 어떠한 기도가 필요한지, 어떠한 기도가 주님의 기도와 마주할지 어렴풋이라도 파악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도저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해 하염없이 아버지, 만 부른 적이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요즈음.
도저히 무슨 기도를 해야 옳은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예배당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어쨌든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기도는 해야겠고,
그럼 자리는 지켜야겠는데,
나는 무엇을 바라고 또 무엇을 구해야 하지, 하며 그저 있었다.
그러던 어느 새벽, 하필 새벽 기도에 부르신다 싶더니 갑자기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야 할 것을 알려주신 거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어두운 새벽에, 우리 귀하고 예쁜 목자 아이에게 카톡이 왔다.
"언니, 내년 기도 제목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기도하다가 언니 생각이 몰아쳐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보낸 답장.
"하나님께서 보내신 곳이니 내가 가야 할 길이던, 해야 할 일이던 주님이 반드시 이루실 거고, 또 나에게 그분의 뜻과 선택들을 알게 하실 거라 믿어.
그래서 그냥 다른 기도 제목 다 필요 없고, 이년간의 모든 순간에 내 안에 주님이 아주 가득 찼으면 좋겠어.
사람에서든, 일에서든, 자연에서든,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가득 보고
진짜 하나님으로만 흘러넘치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하나님, 내 인생에서 더는 없을 만큼 귀한 두해가 되게 해주세요.
어떤 다른 것도 아닌 주님만으로 내 삶이 빈틈없이 가득 찬,
앞으로 더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한 사랑을 만지고 오게 해주세요.
3.
드디어 할머니랑 할아버지에게 나의 아프리카행을 고백했다.
전날 저녁부터 긴장하기 시작해서,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래서 뭐라도 붙잡고 싶었나 보다.
"엄마, 할머니집 같이갈래?'
"아니, 엄마 할 일 많아."
그니까, 엄마는 계획형 인간이고, 계획한 일들이 많아지면 다른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 순간 그 대답이 눈물 날 정도로 서운했다.
들킬세라 빠르게 집을 나서서 할머니 댁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나 왜 서운하지, 한참을 생각해도 설명되지 않아서 잠시 길가에 멈추어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잠잠해질 때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방금 네 말을 깨달았는데, 지금 거기로 갈까?"
"아냐 괜찮아. 생각해 보니까 혼자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오히려 할머니, 할아버지께 고백하는 그 순간은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이야기.
아직 정확한 상황의 판단이 되시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우려한 폭풍은 없었다.
여러모로 마음에 빈틈이 없는 나날이다.
평소라면 이해되었을 것들이 모두 튕겨져 나가고, 요동치지 않았을 감정들이 마음껏 날뛰는 날들이다.
아, 불안하다.
4.
한 달 만에 복싱장에 갔다.
혼나기 전에 한 달간의 공백을 설명하다 출장 얘기가 나왔다.
관장님이 처음으로 물었다.
"혹시 무슨 일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누가 출장을 우간다로 가?"
"NGO 다니고 있어요."
"아, 그 눈먼 세금 빠져나가는 곳? 가서 음식 좀 주고, 단체사진 몇 방 찍고, 그쵸?"
링 위에서 정신이 혼미할 때라 맞아요, 웃고 말았는데
우와, 무례한 사람이잖아?
집에 와서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 피부과에 갔다가 또 한 번의 질문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혹시 무슨 일하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NGO 다니고 있어요."
"약 처방할 때 전염병 위험국가 방문 횟수가 뜨거든요. 역시, 멋있는 일 하시네요."
그니까 이게 내가 고작 이틀간 들은 두 개의 상반된 반응.
둘 다 참 맞는 말이다.
가장 많은 돈이 쓸데없는 곳에 사용되고, 또 허례허식에 목매는 그런 일.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이 통째로 변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하는 그런 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방안이 고안된다면 마땅히 그 일을 택하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이게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한 아이를 살리려고 나랏돈 조금만 쓸게요.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