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by Sophie

1.

그 그림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찾으러 초기 르네상스 전시실로 갔다. 어머니는 내가 찾은 그림보다 더 인정사정없고, 더 아름답고, 심지어 더 진실되어 보이는 그림 앞에 서 있었다. 14세기에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라는 거장이 그린 그림이었다 (......)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뉴요커> 기자였던 저자는 병으로 형을 잃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꼬박 하루를 돌아도 모든 그림을 볼 수 없는 곳.

그러나 밟는 걸음마다 경이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는 10년간 하루 여덟 시간씩 그곳에 서서 자신을 지나쳐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림들을 하나하나 목격하고 음미한다.

책의 원제는 아이러니하게도 All the Beauty in the World,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상실의 아픔이 아름다움으로 상쇄된다.


예술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가?

아름다운 것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들 혹은 그랬던 것들의 빈자리를 채울 힘이 있는가?


한 번도 그 힘을 믿어본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흐의 새파란 밤 앞에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앉아있던 내가 기억났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하는 그의 울렁이는 물음에 온전히 표류하던 내가 떠올랐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내 안의 일렁이는 파도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2.

순풍이 일던 나의 아프리카행에 차질이 생겼다.


팀장님과 본부장님이 출장을 가신 사이 인사팀에서 나를 불렀고,

갑자기 내 파견이 몇 달이나 미뤄졌다. 혹은 아예 나가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

우습게도 화부터 났다.


이 년간의 거취를 정하는 중요한 삶의 기로였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듯이 들어서 옮길 가벼운 마음이 아니었는데.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몇 가지.


첫째, 순항 중에 있는 나에게는 더 이상 간구할게 없었다.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선택한 길의 초입에서 이미 나는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등산로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털레털레 혼자 걸어도 된다고 믿었나 보다.

등산이 이미 시작된 줄도 모르고.


둘째, 나는 오만하게도 나의 희생과 주님을 향한 신실한 선택이 나를 그곳에 보낸다고 단단히 착각했다.

온전히 이끌리어 가고 있으면서도, 주변에 흩뿌려진 부스러기에 더 눈길이 가 있으면서도, 내가 무언가 내어주는 양 생각했다.


어떠한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나도 모르게 줍고 있던 내 안의 사념들을 버렸고,

그 불안의 한가운데에 단 하나의 마음만 남았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


그렇게 꽉 쥔 손을 펴자 거짓말같이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왔다.

팀장님과 본부장님이 출장에서 돌아오셨고,

격렬한 논의가 있었고, 나는 다시 처음의 상태 그대로,

한 달 후에 그곳에 있을 예정이다.


고작 일주일로 나를 이렇게나 무력하게 주저앉히시고,

또 고작 일주일로 당신을 온 힘을 다해 부여잡게 하시는,

이 사랑에 어떻게 나를 내맡기지 않을 수 있을까.


벌써부터 이러시니 떨리도록 두렵고,

그러나 설렐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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