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일 년간 못 쓴 연차와 주말 근무가 꽤 쌓여 7일을 연달아 쉬고도 하루가 아깝게 남았다.
1월에 조금 출근을 할 거긴 하더라도, 조직개편이 되어 자리도 바뀔 예정인 뿐더러 4번 정도 나온 후에 출국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에 슬슬 자리 정리를 시작했다.
그 하루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우선 우리 팀부터 시작.
뒤에 계신 간사님은 일주일 내내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시더니 올리브영에서 마스크팩을 박스째 주셨고
대각선에 앉아계시는 PM님은 스타벅스에서 서울 텀블러를 사오셨다.
앞자리 과장님은 '너무 조금이라 민망하네' 하시면서 무려 5만 원짜리 상품권을,
그 옆자리 과장님은 '1월에 또 볼 거니까' 하시면서 초콜릿을 주시는 거다.
'아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오늘 마지막 아니라니까요' 했더니, '이제 슬슬 짐 싸야 하니까' 하면서 선물과 따뜻한 눈길을 한 번씩 받았다.
아직 더 있다.
옆 팀 과장님은 '오늘 마지막 출근이라면서요' 하시면서 영양제 한 박스를,
또 다른 팀 과장님은 찬양 가사가 적힌 캘린더를,
2층이나 아래에서 근무하는 동기 간사님은 프렌치프레스를 전달해 주러 올라왔다.
우리 앞 팀 간사님은 '원래 보조배터리를 사주려고 했는데, 이미 샀을까 봐' 하시면서 보조배터리 살 돈을 아예 그냥 보내줬다.
'제가 이걸 어떻게 받아요' 하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받아버린 소중한 마음.
그 외에도 찾아와 굳이 굳이 인사해 준 사람들이 한 다스다.
1월에도 4일이나 출근할 건데 너무 민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가도 따뜻하고 일렁이는 하루였다.
사람은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그 흔한 말이 참 싫었다.
있을 때 잘하지. 내 옆에 두고 오래오래 행복하지.
그러나 마지막에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건, 그 이전의 잠잠한 행복들이 고이고 쌓여 만들어내는 삼각주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참 감사했습니다.
2.
기나긴 분가 생활로 웬만한 건 다 혼자 할 수 있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이케아 가구 조립이라든지, 관공서 업무라든지)
그런 내가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사다.
나는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대학교 입학식에서 준 USB.
벨기에 어딘가에서 주워온 조그마한 유리잔.
입사 첫날 사용했던 펜.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고등학교 때 필기했던 과학 노트도 있다.
그렇게 의미가 생긴 물건들은 고이고이 모아 집안 구석구석에 둔다.
그러고는, 마치 다람쥐가 도토리 숨긴 곳을 잊듯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거다.
그렇게 이사할 때가 되어 집안 곳곳을 뒤지면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도토리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사는 버리는 것에서 시작이니, 혼자 이사를 못할 수밖에.
이번에도 버리기를 잘하는 엄마의 채찍질이 내 이사를 도왔다.
"올해 한 번이라도 생각난 적 있어?"
"아프리카 가져갈 거야?"
곧바로 대답할 수 없는 물건은 가차 없이 폐기다.
"너무 차가워" 타박했더니 "현명한 거야" 하는 응수에 20L짜리 종량제를 한 묶음 더 사 왔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도토리를 모을 테니, 그 도토리들을 잘 버려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3.
부정적인 감정을 회피하는 편이라 내가 내 상태를 잘 모를 때가 많다.
나름대로 좋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알만한 행위적 척도가 몇 개 있는데,
근래 며칠간 그중 하나가 멈추지를 않아 꽤나 고생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만 같은 생각에 눈치를 보는 거다.
그 눈치가 어느 정도냐면, 나와 친밀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커피를 사러 들어간 길거리 카페의 알바생 눈치도 본다.
퇴근 후 탄 버스 기사 아저씨의 눈치도 본다.
이게 참 괴로운 것이, 실재하는 현상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한번 사로잡힌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사방에서 감지되는 허위 경보에 잠식되다가,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는 게 유일한 수다.
이쯤 되니 이걸 이겨내라 하시는 건지, 무언가를 깨달으라 하시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거지.
그렇게 오늘도 허우적거리다, 지하철 손잡이를 손톱자국이 날 만큼 꽉 잡았다.
매번 파도의 끝엔 더 큰 바다를 주셨었지, 하며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