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부단한 기억의 몸부림 속에서야

by Sophie

1.

2025년이 된 후에도 10일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2024년을 잠시 되돌아보는 글.

굳이 한 해를 되짚지도 다음 해를 계획하지도 않는 편이지만, 지난해는 색이 바래기 전의 상태 그대로 조금 남겨두고 싶은 것 같다.


재작년, 제자훈련을 막 끝내며 이런 간증을 했었다.

'우리는 수많은 자리에서 여전히 죄인인 채로, 그러나 하나님을 조금 더 원하는 사람들인 채로 함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때쯤이던가, 목사님 전화를 받았다.

"마을장 하는 거 어떻게 생각하니?"

그 자리에서 매일의 하루를 곱씹으며 자책하고 의심할 나 자신을 알았기에 '주님, 제게 왜 이러세요' 물었을 때, '이게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야' 하며 되돌아온 답에 더 이상 물을 수도, 따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작한 일 년이었다.


세상에서 적막이 가장 무서운 나는 목자를 뽑으며 다른 건 아무래도 괜찮으니 시끄러운 아이들을 주십사 기도했고, 놀랍게도 1년 내내 우리는 가장 시끄러운 마을이 되었다.

올해 거듭 경험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첫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상상하며 숨도 쉴 수 없었던 나는 그날의 목자 모임 내내 눈물을 글썽였다.

이미 주님께서는 내가 예상했던 모든 문제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미리 예비해두셨고, 심지어 그 사실을 내가 알아차리게 하셨다.

그 어떠한 것도 나와는 관계없는 주님의 일임을 깨닫게 하셨다.


올해가 꽤나 괜찮게 지나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사람은 애당초 광야 없이는 온전할 수 없는 피조물이기에, 4월쯤 되어 내 사역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하루를 꼬박 교회에서 보내다 집에 오는 길, 오늘의 내 시간 속에 한 번도 주님이 계시지 않았음을 불현듯 알게 된 것이다.

어쩐지 순탄히 말씀과 기도 제목이 오가는 가운데 내 마음이 그렇게도 힘들더니, 나는 몇 달째 내 날것의 힘으로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었던 거다.

신기한 것은, 대체로 이런 문제들은 상태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그 방향이 역전된다.

그날 저녁, 많은 것을 쥐고 있던 내 손의 힘이 풀렸고 다음 주부터는 거짓말같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올해 참 여러 번 깨닫게 하시는 건, 사실 신앙은 기억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나를 살리셨던 기억, 내 삶을 흔드셨던 기억, 그리고 '주님이 하신다'는 그 당연한 진리를 끊임없이 상기하고 복기해야 한다.

그렇게 부단한 기억의 몸부림 속에서야 비로소 나는 홀로 걸음하지 않을 수 있다.


이후부터는 그냥 평안했다. 평안하기만 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았지.

사실 어려운 마음도, 지치는 순간도, 가슴 아픈 일들도 많았지만 결국 주님의 일하심이라는 확신과 기억에 이끌리어 나아갈 때, 평안과 광야는 놀랍게도 공존이 가능한 개체가 된다.

올해 나에게도 평안과 광야는 그다지 다른 말이 아니었다.


매주 나누는 말씀이 좋았다.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번 주에는 어떤 하나님을 만났는지 이야기하는 걸 보는 게 좋았다.

조금 미안하지만, 목자 아이들이 글썽이며 목원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실패한 목양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결국에는 다시 돌아와 어떻게 물고기 뱃속에서 나왔는지 이야기해 줄게 뻔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순간조차 귀하게 여길 아이들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른 명이나 되는 마을원 아이들에게 모두 닿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오만이었다.

주님께서는 이룰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

스쳐 지나치는 대화에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필요한 순간에는 기가 막힌 방법으로 대면하게 하셨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삶을 알고, 기도 제목을 알아, 때때마다 절묘한 통로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 옹기종기 모인 귀여운 삶들이 고작 한 해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는 본래 사랑의 공간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사랑하는 척은 기가 막히게 하더라도, 온몸을 바쳐 누군가를 어여삐 생각하는 마음, 은 좁고 얕다.

그런 내가 이 정도로 많은 사람을, 이 정도로 넓은 사랑을, 했다니 누군가의 사주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알겠다.

나는 사랑조차 홀로 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는 사랑할 힘조차 줄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음 사역을 맡겠노라 답했을 때 적어도 올해만큼은 좋을 수 없겠구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이 정도의 기쁨과 평안을 다시는 얻을 수 없겠구나, 했는데 주님은 이미 그 후를 예비하고 계셨기에 나에게 이 모든 것을 한 해 만에 품고 담게 하셨나 싶은 마음.


평안마을,이라는 이름을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었다.

저는 주님이 주신다고 하신 평안이 바로 이거라고 생각해요.

어렵고 아픈 순간이 오더라도, 내가 잡고 있는 손이 누구의 것인지 아는 것. 그래서 그걸로도 충분한 것.

사실 해석에 논란이 있을까 봐 숨겨두었던 말이 하나 더 있었는데,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시는 말씀을 보며 나는 항상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면, 주님은 어떡하지?'하고 고민하곤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만큼 그 평안이 귀해 보였다.

그걸 이렇게나 가득 느끼게 하실 줄이야.

다시금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놀랍게도 내가 교회에 365일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올해 꽤 열심히 일했는데.

한번은 과장님이, "아마 간사님이 우리 팀에서 팀장님 다음으로 메일 가장 많이 받을걸요?" 그랬다.

신입에서 중고로 넘어가는 혼란과 성장의 시기였고, 감사하게도 내 연차에 맡을 수 없는 일들에 대거 참여할 수 있는 해였다.

몇십억짜리 제안서도 통과시켜보고, 해외출장도 세 번이나 다녀왔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사원증을 찍으며 안정감을 느끼는 나 자신을 보고 '회사 생활이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람도, 일도, 미안할 만큼 즐거웠다.

그리고 그 일들 가운데서 주님의 마음을 보게 하셔서, 결국에는 그곳으로 직접 나아가게 하시다니.

도대체 그 계획은 어디서부터가 시작인 걸까.


요새는 예배당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눈물부터 난다.

걷는 걸음마다 모난 곳이 없었던, 아니 모난 곳에서조차도 종국에는 꽃이 피던 지난 해와,

그 해를 딛고 완벽한 기승전결의 결, 혹은 새로운 기를 맡게 된 올해의 서사 중 그 어느 것도 내가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이 나를 가장 눈물짓게 한다.

그렇게 주어지는 예측 불가능한 시간들이 내가 계획한 그 어떤 전개보다 옳고 기쁜 결말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기억으로 쌓여,

나를 강하고 담대하게,

그리고 더더욱 의존적이게 한다.

결국 신앙은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렇게 나아가기로 한다.

내 삶의 어떤 때보다도 더욱 내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또 설령 그것을 후회하게 될지라도 더 이상 돌이킬 수조차 없는 이 길에,

소심하고도 담대한 걸음을 내딛기로 한다.

넘어지는 순간마다 조금씩 파먹을 그의 기억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주어질 그 평안을,

믿어보기로 한다.



2.

보통 소감이라는 건 일련의 일이 끝나고 난 뒤, 그 시간들을 떠올리며 나눠보는 것일 텐데.

2년간의 모험을 앞두고 정말 돌이킬 수도 없는 날이 와버린 지금, 이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는 옳은 시작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실 한국을 떠나기 전 깊은 생각과 고찰을 선행하고 싶었으나, 파견 준비라는 게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빠른 포기.

지금은 경유지인 카타르 공항이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인가,를 먼저 곰곰이 들여다보기로 한다.

호기롭게 떠나는 선택을 했으나, 지난해 생각보다 많은 인연이 생겼음을 이제야 안 나는, 엄청난 양의 이별에 조금은 낡고 지친 상태.

두 번의 해외살이로 조금 자신만만했으려나, 하지만 개발도상국으로 떠나는 일은 완전히 다른 문제임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방 꾸밀 것들을 조금이라도 챙겨가라는 조언을 세명에게나 들었다.

집에 강도가 여러 번 들었다고 해서 자물쇠를 네 개나 샀다.


그리고 사실, 10시간의 비행을 이미 마친 상태이지만 나는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마치 출장이나 여행을 가듯, 그저 어디에 휩쓸리는 마음으로, 혹은 소풍 정도의 기분으로.

오히려 좋으려나, 싶다가도 이래도 되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두려운 마음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대비할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두려움.

나를 언제나 얼어붙게 하는 낯선 사람들과의 조우에 대한 두려움.

조금은 기대되고 있을 나의 합류에 내가 증명해 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혹시나 모를 위험과 아픔에 대한 두려움.


그러나 기대되는 마음이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막연히 큰일을 행하실 그에 대한 기대.

지난해 그러셨듯, 나에게 주실 당신의 자녀들과 내가 섬기게 될 또 다른 자녀들에 대한 기대.

앞으로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맡겨진 일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날것의 상태 그대로 그가 지으신 세계에서 살아볼 것에 대한 기대.


불현듯,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다.

당연한 두려움과, 이를 넉넉히 덮는 기대가 공존하는 현 상태가,

가장 옳은 방향임을 알고 안도한다.


이 정도면 꽤나 흥미진진한 모험기의 서론일지도.

그 모험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를,

동행하는 여정 가운데 수없는 말씀과 기도를 거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 베스트셀러이기를,

간구합니다.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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