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곳에 온 지 이틀이 지나가고 있다.
어제는 핸드폰을 개통하고, 장을 보고, 또 시차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는데,
고작 하루가 더 지났다고 생각보다 익숙하게 이 집을 활보한다.
내 옆자리에는 고양이가 잠을 자고, 창문 너머로는 원숭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중.
어제도 오늘도 느끼는 거지만, 한국과 6시간의 시차가 있는 이곳에서는 딱 저녁 6시부터 마음이 조금 울렁거린다.
한국에서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1층의 모두가 퇴근하고, 한국의 모두는 잠에 들어, 세상과 나의 끈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고요의 시간이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체험 같기도.
기분이 묘하다.
정말 몇 안 되는 고립된 행운 같다가도,
적막이 두렵기도 하고.
마음이 오락가락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사실 함께할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 사이의 빈 공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비집고 들어가 한자리 차지할 만한, 그래서 세상에 혼자가 아님을 알고 안도할 만한 조그마한 자리.
그렇게 부대끼며 사는 것이 아프고 지치더라도,
그렇게만 살도록 지어진 이유가 있으리라.
다음 주부터는 다시 사람에 불평하겠지만,
괜히 배부른 소리를 해보는 오늘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고양이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집 안에 나 말고 다른 복실한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도 위안이 된다.
가끔 갑자기 찾아와 냐옹, 한마디 하면
내가 적막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다.
누군가와 나의 공간을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래도 결혼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짝을 좀 주시겠어요?
2.
현지 운전면허를 발급받으려고 무려 4개의 관공서를 하루 만에 돌면서 느낀 점.
사람들이 모두 옆집 아주머니 같다.
내 안부를 묻고,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궁금해하고, 혹시 안되는 일은 끝까지 해결해 준다.
한번은 한국 병원에서 아주머니가 서류를 깜빡해 데스크에 프린트 부탁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여기는 병원 업무만 하는 곳이에요. 서류 구비해서 다시 방문해 주세요."
한참을 난감해하다 아주머니는 결국 병원을 떠났다.
오늘 운전면허 신체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내가 중요한 문서를 빠뜨렸는데,
의사 선생님이 데스크에 직접 전화까지 걸어 프린트된 서류를 나에게 손수 가져다줬다.
사실 좋은 행정처리는 전자일 텐데.
업무의 정확한 상한선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높은 전문성을 가지는 것일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허술하고, 묘하게 비효율적인 동선 안에서, 그럼에도 마음이 따뜻했다.
한국인이 이곳 아프리카에 와서 가장 먼저 겪는 불편이 Personal Space, 즉 개인적 공간의 침범이라고 한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이미 팔걸이를 넘어오는 그들의 몸과,
줄을 서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부딪혀오는 뒷사람에게서 그것을 느낀다.
관공서 의자에 앉아있으면 의자 사이의 틈을 비집고 할머니께서 앉으시고,
은행 직원은 스스럼없이 내 팔을 잡아 방향을 안내한다.
하지만, 개인적 공간이 비단 물리적인 개념만은 아님을 이내 깨닫는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찾으며 나를 사정없이 밀치던 그들이 낑낑대는 나를 보고 짐을 번쩍 들어 옮겨줄 때,
온몸을 붙여 내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를 넌지시 가리켜줄 때,
그들이 나의 삶을 꽤나 다정한 방식으로 침범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이 더 옳은 방식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냥, 오늘이 참 좋았다.
3.
지난주 주일에 이곳에 도착했고 오늘은 토요일이니, 정확히 일주일이다.
그 일주일간 부임 휴가가 주어져 온종일 일도 하지 않고 쉬었다.
첫 이틀은 장도 보고 운전면허 발급도 하고 꽤 돌아다녔던 것 같은데, 수요일부터는 정말 온전히 집에 틀어박혔다.
지부장님이 가끔 의아한 목소리로 전화하신다.
"나현씨, 밥은 잘 해먹고 있는 것 맞죠? 안 답답해요?"
이곳에서는 집 밖을 나가려면 직원이니 드라이버니 적어도 동행을 한 명은 구해야 하거니와,
나간다고 하더라도 아직 정확한 행선지를 모르는 내게 외출은 여간 품이 드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강제로 집에 감금되어도 한 달은 너끈히 만족하며 가둬질 수 있는 나로서는 참 마음에 드는 시간이구먼, 하며 지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나 보다.
어제 잠시 1분 거리에 있는 채소 시장에 마실 삼아 다녀온 게 그렇게나 기분이 좋았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나의 귀소본능은 외부에서의 충분한 에너지 소모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생기는 반작용 같은 거려나.
참 당혹스러운 일이다.
집에 있으면 나가고 싶고, 나가면 집에 있고 싶으니 이게 무슨 청개구리.
그걸 아프리카까지 오고 나서야 깨닫다니 지금까지 어지간해서는 이런 사치스러운 여유를 부릴 짬이 없었던 거다.
이런 걸 두고 줘도 못 먹는다,라고 하는 걸 텐데.
다음 주부터 직장인의 하루가 시작되면 다시 지금의 순간이 그리워지겠지만, 그때는 지금의 울렁이는 마음을 기억해야겠다.
아, 이 시간과 저 시간이 함께 있어야 나는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떠올려야겠다.
4.
이곳에 와서 처음 맞는 주일이다.
숱한 해외 생활을 해왔지만 대개 한인교회 정도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2년 동안 생으로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렇게 예배가 시작하자마자 부른 찬양.
그의 음성을 들어버렸다.
You heard Your children then
You hear Your children now
You are the same God
You are the same God
[Same God - Elevation Worship]
먼 곳으로 떠날 때마다 나의 주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전에 내게 응답하셨던 그 주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하지만 그렇게나 다르게 생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같은 고백을 할 때,
나는 비로소 또 한 번 갇혀있던 나의 시선을 확장한다.
나의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의 하나님이 또다시 나의 하나님이 되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전능을 갑작스레 온몸으로 체감한다.
그때에도 지금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귀를 기울이시는 한결같은 주님은,
내가 당신을 알지조차 못하던 어떤 미지의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정없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2년 동안 참 처절하게도 깨닫겠다, 싶었다.
하나 더.
지난 스리랑카 출장에서도 느꼈지만, 기도의 깊이는 그 간절함에서 나온다.
스리랑카의 그들은, 또 오늘의 이들은
죽어가는 옆집의 이웃을 두고, 황폐해져가는 이 땅을 두고 토해내듯 기도한다.
더 나은 미래를 주소서, 하는 얄팍한 우려가 아니라 생사가 오가는 당장의 내일을 드리며 기도한다.
내 삶에 오늘의 이들이 가진 것 같은 간절한 기로가 과연 몇 번이나 등장할까.
나를 후벼파는 기도의 깊이가 과연 어디까지 시추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이들의 기도에 합류해야겠다.
죽어가는 이 땅이 나의 땅이 되어, 우리를 살려주십사 기도하는 2년을 보내야겠다.
아주 간절하고, 또 아주 처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