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곳 사람들은 지도 볼 줄을 모른다.
아닌가, 내비게이션 볼 줄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들은 대부분 10년 전 구식 일제라 내비게이션 구비가 안 되어있고, 그나마 차를 가진 사람도 몇 없다.
진짜 신기한 것은, 지도 없이도 길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
어제 드디어 출근을 시작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4시간이나 떨어진 수도에 갈 일이 있어, 중국 마트와 대형마트, 그리고 공항을 거쳐거쳐 돌아왔다.
도대체 우리 운전기사님은 그걸 어떻게 다 외우시는지, 출발하기 전에 동선을 물으시곤 아무것도 켜지 않고 출발한다.
중간에 시내 중심부에 들어가 현지 직원을 내려주고는, 그다음 목적지로 가차 없이 출발한다.
공항은 그렇다 쳐도, 현지 운전기사가 사는 곳에서 4시간이나 떨어진 수도의 중국 마트 위치를 알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러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 그 앞에 내려주신다.
컬리와 쿠팡에 길들여진 우리는 좋은 과일 고르는 법을 더 이상 알지 못하고,
티맵이 구비된 차를 모는 우리는 나의 집으로 가는 길조차 외우지 않고,
좋은 식당을 고를 때에는 네이버 리뷰를 본다.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이곳 사람들은, 그럭저럭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재밌기도, 멋있기도.
나보다 지능이 적어도 두 배는 높을 이 사람들을
이러나저러나 내가 도와야 한다니,
좀 웃긴데.
2.
벌써 아프리카에 온 지 2주가 넘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출근하랴, 적응하랴, 왜 아프리카는 심심하다고들 하시는지 아직 모르겠다.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저녁이면 쓰러져 잔다.
이렇게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금방 가겠다, 하던 차에 지난해까지 몸담던 교회 대학부가 수련회를 시작했다.
틈틈이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고, 보내주는 사진들을 받고 있자니 마음이 이상했다.
정말로 나의 삶이 그들에게서 분리되었구나.
나는 이제 그곳에 없구나.
내가 기우는 것을 아시고 귀신같이 나를 그곳에서 떼어내셨구나.
그것뿐이랴.
한두 번도 아니지만 나를 빼놓고 설을 지내야 했던 우리 가족과,
나가기를 눌러야 했던 수많은 단톡방과,
이제는 나의 부재가 이상하지 않은 단체사진들 사이에서 나는,
조금은 자유롭고
조금은 쓸쓸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별은 대개 영원한 것임을 깨닫는다.
수많은 맺음과 끊음 사이에서 어떤 것을 소중히 또는 소홀히 여겨야 할지 고민한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것은 순간마다 일어나는 침식과 퇴적이 내 강의 흐름을 바꾸어 내리라,
하는 내심의 기대가 있으므로.
3.
(1) 운전을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는 걸어 다닌다는 행위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10분 거리에도 차를 몰아야 한다.
즉, 운전을 하지 못하면 집에 영영 갇혀버린다는 소리.
그 말에 겁을 먹고 출국 직전에 장롱면허 연수를 받기는 했으나,
오자마자 후방 카메라도 없는 랜드크루저 운전대를 잡을 줄은 몰랐다.
도착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 지부장님(도 아니고)의 남편분께 잔뜩 긴장한 채로 현지 연수를 받았다.
손에 손톱자국이 선명하더라.
그러고는 일주일이 채 안 되어 내 운전이 업무에 투입됐다.
쏟아져 나오는 오토바이에 정신을 못 차릴 줄 알았지만, 뭣모르는자의 용기는 생각보다 저력이 있었다.
또 한번의 일주일, 이제는 퇴근하고 장 보러 가는 드라이브가 참 기분 좋은 일임을 깨닫는다.
(2) 벌레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언저리서부터 아프리카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그랬다.
"넌 벌레 때문에 아프리카 못 가, 이놈아."
모기는 고사하고 날파리에 집을 버리고 도망칠 정도였으니,
이 삶을 선택한 내가 나도 웃기다.
이곳에 온 지 삼 주 차.
그니까 벌레를 때려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이곳 생활을 정리할 때까지도 못할 것 같지만,
적어도 흐린 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에 개미 정도는 기어다녀도 못 본 척 지나가고,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투명한 컵으로 가둔 뒤 도움을 요청한다.
첫날에는 나를 공포에 떨게 하던 방충망 곳곳의 구멍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물론 한국에서 소중히 품어 데려온 전기 모기채를 여전히 펜싱칼 마냥 휘두르기는 한다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두리번거리던 나는 고작 15일 만에 경계를 풀었다.
(3) 그러니까,
'자신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시오', 하는 질문에 나는
'지레 겁을 먹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일들과,
아마 기어코 일어나지 않을 수많은 일들 사이에서,
나는 끝끝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하여 나 자신을 끌어안곤 하는 것이다.
내 두려움의 반의반조차도 효용가치가 없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번번이,
나는 나를 가장 안전하고도 쿰쿰한 구석 어딘가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나를 매 순간 깨어지게 하는 것은,
그림자만 거대하던 밤바람의 나뭇가지.
고작 여우비를 품고 있던 그날의 먹구름.
사람의 걸음은 대개, 굽이굽이 부닥치는 비포장도로보다 훨씬 더 많은 순간을 둘레길 정도에 위치해있음을,
그 길의 난코스는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바위산보다, 이미 예정된 작은 동산 정도로 갈무리됨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지레 겁을 먹더라도 이내 한 발을 내딛는 사람',
정도면 괜찮지 않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