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lt

by Sophie

1.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사실.

나는 생각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했더라.


어제 펜이 다 닳아서 새 펜을 꺼내다가 내가 2년째 같은 펜을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브라 블렌 3C.

아프리카에 오면서도 같은 볼펜을 5개나 사고, 리필 심을 4박스 준비해왔다.


펜뿐만이 아니다.

한 브랜드의 슬랙스가 마음에 들어 4벌을 다른 색으로 가져왔고,

내 모든 컵과 텀블러는 스탠리 해머톤 그린이다.

패드와 노트북, 이북 리더기는 모두 5년째 같은 곳에서 주문 제작 중인 녹색 체크무늬 파우치에 들어있고,

하다못해 머리끈도 몇 년째 같은 곳에서 구해다 사용하는 중이다.


익숙한 건 편하다.

내게 가장 잘 맞는 결을 고르고 골라 정착한 물건일수록, 나는 그 외의 것을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분위기 전환을 해보겠답시고 새로운 선택을 했을 때의 이질감은 결국 나를 돌고 돌아 처음의 익숙함으로 데려다 놓는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아마도 사람.

익숙함 속에서 매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이내 혼자일 것을 다짐하게 하는,

종국에는 나의 내면을 탓하게 만드는.


볼펜처럼 고르고 골라 매년 다른 색으로 구매해 사용하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2.

본래 신앙이라는 것은

그분의 크신 능력을 먼저 경험하고,

그분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그 두 개의 흐름이 하나의 존재로 귀결되는 것일 텐데.

나는 요즘 그 반대의 수순을 밟고 있다.


주일 아침, 아프리카와 유럽,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 사이에 끼어 찬양을 한다.

그러던 중 exalt, 한 개의 단어가 마음에 박혔다.

일상에서는 잘 쓸 일이 없는 말이라 그랬나.

그 주일, 하루 종일 그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냥 찬미가 아니다.

혹시라도 자격이 없었던 이에게 더 높은 지위를 주는 것.

아마도 더 컸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나는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있다.


내가 오랜 시간 내 안에 가두었던 주님은, 고작 나의 위로자에 지나지 않았던 듯하다.

나의 삶을 지키시고, 나의 마음을 만지시는, 나만의 구원자.

그런 그가 이 세상을 사랑하사, 그들 모두를 건지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말도 안 되게 경이로운 일이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진짜 경이는 사실 엄청나게 감동적인 것이라서

목격하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


그 아득한 존재의 떨림이

이전에 나를 찾아오셨던 그때의 기억과 만나,

그 두 개의 흐름이 결국, 또다시 하나의 존재로 귀결된다.

신앙은 사실, 참 두근거리는 일이다.



3.

요즘 비가 자주 온다.

아프리카는 사계절이 없는 대신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아직 우기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비가 슬금슬금 내리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우기는 장마와는 달라서 잠시 동안 비가 오고 하루 종일 시원한,

모두가 기다리는 시간이다.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특히 비가 오는 밤을 좋아한다.

큰 비가 내리는 밤이면 타닥타닥, 내 작은 공간이 소리로 가득 찬다.

그렇게 빈틈없이 나를 감싸는 그 고요의 소란을 좋아한다.


같은 이유로 바다를 좋아한다.

특히 여름날의 바다에 유유히 떠있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사각거리는 겨울이불에 파묻히듯, 나를 온전히 내맡긴다.

그렇게 나의 모든 면을 마주하는 따뜻함에서의 표류를 좋아한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쏟아지는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중 문득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나를 에워쌀 무언가가 아닐런지.

나의 울타리를 침범하여 그 필사적으로 띄워놓은 공간을 채워줄 완충재를 찾고 있는 거지.

혹은 그런 방식으로 나를 온전히 안아줄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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