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by Sophie

1.

아프리카에 파견 나온 사람은 혼자서 꽤나 다양한 일을 맡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온 이는 몇 안 되고 도울 이는 아주 많으므로.


집을 짓고, 학교를 짓고, 교회를 짓는다.

밥을 주고, 농사를 돕고, 저축을 가르친다.

우물을 파고, 질병을 예방하고, 일자리를 준다.


사실 어려운 건 없다.

주어진 예산이 존재하고, 그들이 부족한 게 무엇인지는 자명하고.

나는 그저 그걸 채우기만 해도 이 시간을 충분히 마칠 수 있다.

하지만 한 시간씩 걸리는 그곳들을 다섯 번째 보았을 때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그 모든 필요를 소상히 보듬더라도 이 사람들은 여전히 같은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높다.

갑작스레 교실이 주어지고, 좋은 품질의 씨앗이 생기더라도, 딱 그것의 유통기한만큼만 변화는 지속된다.


우리 기구는 한 개의 공동체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는 일을 "졸업"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처럼, 아직 모든 것이 준비되지 못했을지라도

스스로의 성찰과 발전을 통해 점차 어엿한 성인이 될 역량이 생겼다는 뜻이므로.


즉, 나는 조금 더 지혜로워져야겠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주 일부만 남더라도,

그 잔존물이 누군가의 토대가 되어 그를 둘러싼 세상이 결국 홀로 설 수 있는 개체로 변혁되도록.

보내지는 것들에 한 개 한 개,

정성스러운 마음과 주님의 뜻을 담아야겠다.



2.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 넌 스물한 살이 되고 성인이 되는구나. … 나는 결코 너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줘. 네 아빠와 나는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영원히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단다. 넌 우리의 빛이었어. … 네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어.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어. 나는 거의 미쳐 버릴 뻔했단다…….

[그레첸을 멀리하라 - 수잔네 아벨]


오랜만에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세 시간 만에 먹어치우듯이 책을 끝냈다.

한 다섯 번 눈물을 참다가, 결국에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눈을 닦으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사실 서글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마는,

그것이 기억의 흐릿함을 뚫고 나오는 송곳과 같은 것일 때 아픔은 배가된다.

그 아픔을 무려 독일 소설에서 마주하다니,

우리 삶에서 꽤나 많은 것들이 인간의 속성 정도로 갈무리되는 것을 새삼 느낀다.


가끔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어쩌면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도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흘렀을 그때의 울분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신의 목소리와 표정은, 아마도 나와 엇비슷한 나이였을 그 때로 돌아가 미처 치료하지 못했던 마음의 상처를 고스란히 꺼내놓는다.

그럼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당신에게서 영영 사라지지 않을 그 구겨진 한 귀퉁이를 꽤 오랜 시간 되뇌이게 된다.

할머니의 인생에서 힘들지 않았던 시간들이, 적어도 그 구깃한 자국보다는 훨씬 더 컸길 바라, 간절히 소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도.

아마 마음이 영영 기억할 그 시절의 형상을 넉넉히 덮을,

조금은 더 행복하고, 조금은 더 따뜻한 시간들이,

켜켜이 쌓일 수 있도록.



3.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때가 있다면

모든 사람이 미워 보일 때도 있다.

진짜 이상하지, 그런 날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럼 나는 그 순간부터 잔뜩 긴장하여 나를 꽉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의 뾰족함이 드러나고, 나는 또다시 내 안의 그 가시조차 미워하게 된다.


오늘 아침, 공교롭게도 큐티 말씀이 나를 깊게 갈랐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39]


나는 지금까지 이게 '네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가 너를 아끼는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렴',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너는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단다', 하시는 말씀이었던 거다.

결국 선행되어져야 하는 방향은 바깥이 아니라 안이었다.


사랑은 자본과도 같아서, 있는 자에게는 더하여지고, 없는 자에게는 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내가 나를 애틋하게 생각해야, 비로소 누군가의 빈틈이 주님의 손길로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

사실 그것은 나의 작은 우주에서 벗어나 그의 커다란 우주를 인정하는 것임을 이해한다.

그가 보시기에 참 좋았던 그 세상이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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