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까지 사랑한다 하시네

by Sophie

1.

시차 적응에 완벽히 실패했다. 11시에 잠에 들어도 1시에 깬다. 어떤 날은 5시까지 눈이 말똥말똥하다.


나는 매일 새벽 공기에 누가 약을 탄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떻게 낮 동안 꾹꾹 눌러 담은 마음과 감정들이 이렇게나 밀려들어오는지. 우리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생각는 되는 건가 보다. 그니까 수동이 아니라 자동이다. 막을 의지도 가질 수 없을 만큼 응축된 무언가. 가끔 토나올것같은 소용돌이.


다행인 것은 그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못하는 내 안의 소심들. 적어도 이 혼란을 떠넘기지는 않을 정도의 단단함.


아 잠들고 싶다.



2.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태로 오늘이 왔다.


출장 첫날 싸한 기분이 든 건 사실이다. 내 눈에도 이 아이들이 이렇게나 예쁜데 하나님은 여기서 쏟아지게 사랑하고 또 쏟아지게 우시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었나 보다.

이미 견고하게 쌓아 올린 앞으로의 계획과 조금 흔들리더라도 순항 중이던 나의 삶에 더 이상의 변화구가 있을 것 같지 않았나 보다.

분명 빈말이었을 지부장님의 파견 제안을 받으면서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확신했으니.


그러나 그런 내 마음에 바람이 불었고, 하필 지부 파견 공고가 몇 년 만에 떴고, 이 모든 일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떠밀면 나는 떠밀릴 수밖에.

그것도 아주 속절없이.


이것이 금요일.

토요일과 주일은 가능한 모든 상상과 걱정을 한 바퀴씩 돌렸다.

그럼에도 꿈틀대는 마음이 현실을 마주했을 때 잠잠해질 것을 기대하며 월요일을 보냈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은 저녁때쯤이었다.

"엄마, 할 말이 있어."

"남자친구 생겼어?"

"진지하거든."

아직 삼십 대가 채 되지 않은 딸로서 이 년간의 아프리카행을 부모님께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 년간 행해질 부단한 걱정과 고민을 떠넘기는 일이며, 주말이면 딸의 본가행을 기다리는 그들의 기대를 미리 수십 차례 저버리는 일이며, 동시에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다져진 그들의 안테나가 당신들의 딸 안에 가득 찬 두려움과 떨림을 감지하도록 그저 두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에서야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의 흐름이 결말을 맞이하리라,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을지도.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너의 안전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시기에 네가 그곳에 가는 게 참 소름 돋고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요일 아침,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 혹시 여유 되시면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근데 제 말을 들으시면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실지도 몰라요."

이미 뱉었던 말과, 예정된 직분. 격변하는 이 시기에 부서를 돌보겠노라 약속했었는데.

손을 덜덜 떨면서 전한 나의 소식에 목사님은 담담했다.

"당연히 괜찮지. 사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야, 나현아."

수요일 아침, 팀장님과의 면담까지 마친 나는 세상에 나의 여정을 막는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조금의 기대와 조금의 절망을 품었다.

하지만 꽤나 길고 자세한 지원서는 나의 불안을 이끌어내기 충분했고, 나는 모두의 허락을 맡고도 자격 미달로 나아갈 길이 막히는 꿈을 꿨다.

금요일 오전, 갑자기 팀장님께 메신저가 왔다.

'간사님, 방금 본부장님과 논의하였고 지원서 제출은 안 하셔도 됩니다.'

'혹시 이미 채용이 완료된 것일까요?'

'아뇨, 간사님을 지부에 부서 이동하기로 했어요.'

흔하거나 상식적인 방식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수순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게 딱 일주일. 금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마치 새벽의 고속도로와 같은 길을 거쳐, 나의 아프리카행이 확정된 것이다.


멍한 채로 퇴근해서 두 시간 동안 죽은 듯이 낮잠을 잤다.

눈을 뜨니 불안이 나를 엄습했다.

사실 지금도.

두렵다.

무섭다.


참 장난과 같은 것이, 나에게는 대개 찰나 이상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에 대학 원서를 내기로 한 것도,

대학원생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도,

교회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2년간 살아내게 된 것도.

내 삶의 모든 순간 나에게는 긴 숙고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불안에 잠식되어 수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나아가지 않음을 결정했을 나를, 그분은 참 잘도 아시는 거다.

이게 뭐지 하면서도 떠밀려간 그곳에서 결국 충만할 나를, 그분은 이미 보신 거다.


그러면서도, 소심한 나에 대한 자상한 배려는 놓치지 않으셨다.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을 사전답사의 기회를 절묘하게도 허락하셔서, 내가 일하게 될 곳과, 함께 일하게 될 사람과, 또 내가 섬기게 될 그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하셨다.

나는 이미 졌다.


그렇게 나는 내 이십 대의 마지막 이년을, 나의 청춘을, 아프리카에 바치게 되었다.

아까운 청춘이려나, 혹은 청춘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려나.

가장 어여쁜 때에, 가장 어여쁜 길을 걷는 것이려나.


음악을 꿈꾸던 십 대의 언젠가, 찬양을 작곡한 적이 있다.


하나님의 방법은 너무도 깊어서

알아채지 못한 순간 내 삶이 변하네

홀로는 설 수 없는 나의 연약한 마음을

그것까지 사랑한다 하시네


그 시절 십 대 소녀가 알던 것을, 10년이 지난 지금의 내가 모를 리가.

내 삶을 가차 없이 뒤흔들면서도, 그럼에도 나의 연약한 마음을 소중히 품으시는 그 사랑을 내가 알지 못할 리가.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길에, 조심스레 한발 내디딜 수밖에.



3.

할머니.

할머니가 걱정이다. 진짜 어떡하지.


잠시 상황 설명을 해보자면, 나는 우리 집에서 평화사절단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첫 손녀였던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었고,

당신의 자녀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만큼 성격이 불같았던 할아버지가 나를 대하는 모습에 엄마는 지금도 놀라곤 한다.

그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다툼과 갈등, 때로는 우울을 잠재우기 위해 그 집에 투입되는 것이 바로 나.

나의 존재만으로도 이렇게나 쓸모 있어지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렇게 사라져도 되나.


사실 그건 둘째치고, 내가 자신이 없다.

또다시 언제 올지 모를 그 연락에 밤을 지새우며 불안에 떠는 그 생활을 다시 해낼 자신이 없다.

혹시나 모를 마지막 순간에 내가 그 옆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두렵다.


애당초 내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용기가 아니라,

그들을 이곳에 두고 떠날 용기였을지도.


7년 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날 때, 마치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짓듯 할머니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었다.

"할머니, 성경인물 중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모세?"

"여자 중에서는?"

"에스더!"

그렇게 나는 에스더가 되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말한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그러니까 할머니, 왜 내 이름을 에스더로 지어서 할머니 옆에 가만히 멈춰 있을 수 없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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