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학생을 만나는 일의 가치

해봐야 알지 안 해보고는 알 수 없는 것들….

by songofsongs

요즘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면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린다.

어떤 사람은 교사를 ‘편하게 사는 직업’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금 가장 불쌍한 직업’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한 학부모는 교사를 꿈꾸는 자녀에게 “굳이 그 길을 택할 필요가 있겠냐”며 다른 진로를 알아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학생이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 부모의 걱정도 이해되지만, 동시에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꿈을 함부로 꺾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지금, 존경과 냉소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매일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와 학생이 있다.



1. 교사는 완전무결해야만 하는가


교사는 실수하면 안 되는 직업처럼 여겨진다.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일수록 교사를 한다는 편견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니 교사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것은 곧바로 무능이나 자격 부족의 증거처럼 취급된다.


물론 실수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학생의 생명과 안전, 평가의 공정성과 같은 영역에서는 엄격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 활동 전반—수업 방식, 학급 운영, 관계 맺기—까지 완벽함을 요구하는 순간, 학교는 정지된다.


실제로 민원이 들어오는 순간, 교사는 시도 자체를 멈춘다.

조금 색다른 수업, 새로운 프로젝트, 학생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실험은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이 되어 버린다. 안전한 길만 걷는 교사는 비난받지 않지만, 동시에 학생에게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학교가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사에게도 실패할 자유와 수정할 기회가 필요하다.



2. 언제까지 ‘가짜 공정’에 매달릴 것인가


요즘 많은 학교에서 우수상, 장려상 같은 전통적인 시상이 사라지고 있다.

일부 학생이나 학부모가 “왜 우리 아이는 받지 못하느냐”, “상장이 열등감을 만든다”라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학교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제도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겉으로 보면 공정해 보인다. 모두가 상을 받지 않으니,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만 평등하게 맞춘 가짜 공정이다.


현실에서 학생들의 노력, 집중, 이해도는 분명히 다르다.

수업 시간에 질문하고, 과제를 성실히 하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에는 과정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결과를 똑같이 맞추라고 요구하는 순간, 학교는 성취의 의미를 잃는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전환기 수업이나 프로젝트형 수업에서조차 이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점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교사의 새로운 시도를 더 잘 이해하고, 더 깊이 흡수한다. 반면 학습 기초가 약한 학생들은 오히려 더 따라오기 힘들어진다. 평등을 외치며 결과를 맞추는 정책이, 실제로는 학습 양극화를 더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3. 실패를 극복할 기회는 주어지고 있는가


학교는 점점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공간”이 되어 가고 있다.

규칙을 어기면 즉시 기록이 남고, 그것이 학생의 미래를 좌우하는 자료가 된다. 형식적으로는 ‘충분히 지도한 뒤에 책임을 묻는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학생들이 규칙을 완벽히 지키는 존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교실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범하다.

실수도 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실패를 ‘학습의 일부’로 다룰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할 수 없는 학교에서, 회복은 불가능하다.

교사도, 학생도 실수는 곧 낙인이 된다. 그러면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다. 안전한 선택만 반복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과연 사회에서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학생을 만나는 일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소중하다고 믿는다.

교실은 아직도 누군가의 인생이 방향을 바꾸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을 만나고, 어떤 아이는 처음으로 ‘잘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모든 것은 매뉴얼로 만들 수 없다.

해봐야만 알 수 있고, 관계 속에서만 생겨난다. 그래서 학교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학교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불완전할 권리와 다시 해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고, 그 속에서 사람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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