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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Apr 14. 2021

#패션 #매거진 #뉴욕 #ootd + more

넷플릭스 <볼드 타입> 리뷰

미드 <The Bold Type>에 대한 제 첫인상은 다름 아닌 의구심이었습니다. '패션 매거진'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영화 <악마는 프라마를 입는다>와 미드 <어글리 베티>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뉴욕에서 커리어에 열정적인 주인공들이 사랑과 우정에도 열심히라는 점에서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를 연상시키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키워드를 전부 가져왔지만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드라마면 어쩌지?!?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볼드 타입>을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트렌디하고 적당히 눈길 끄는 요소를 믹스한 '적당한' 드라마일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패션 #매거진 #뉴욕 #ootd #사랑 #우정과 같은 해시태그를 붙일 수 있는 그런 드라마요.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네,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The Bold Type>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의 좌충우돌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성적 지향, 그리고 계급과 인종에 대해 꽤 깊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폭넓은 타겟층을 목표로 한 드라마라고 예상했지만 그보단 틈새시장을 노린 드라마였고 제작진들이 이 시리즈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순서대로 Jane, Sutton, and Kat

<The Bold Type>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제 막 인턴에서 기자가 된 Jane과 3년 넘게 어시스턴트 업무를 하고 있는 Sutton, 소셜 미디어 팀을 맡고 있는 Kat. 직장에서 만난 세 사람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은 물론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절친이 됩니다. 한 오피스에서 근무하며 커리어의 시작점도 성장하는 속도도, 그리고 나아가는 방향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주죠. 때론 실수를 연발하지만 우리의 히로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커리어와 우정, 사랑을 저글링 하는 이 드라마에서 틈만 나면 암호명 "Fashion closet!(나 할 말 있어! 지금 당장 샘플실에서 만나!)"을 외치는 그들을 보며 '그래, 직장에 마음 터 놓고 이야기할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회사 다닐만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저도 모르게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직장 생활 5년 이하의 경력을 가진 세 사람은 이제 서서히 일머리가 생겨 제 몫을 해내기 시작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기도 합니다. 이제 막 인턴에서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고 생각한 Jane은 불현듯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시도하고 꿈에 그리던 패션 업계에 발을 담근 Sutton은 어릴 적 꿈이 디자이너였단 사실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진로를 탐색해 나갑니다. 그리고 일찍이 능력을 인정받아 소셜 미디어 부서를 책임지고 있는 Kat은 안정적인 커리어 패스를 보여주리란 예상을 뒤엎고 시즌 3에서 돌연 정계로 방향을 틀기도 하죠. 변덕스럽고 도무지 만족을 모른다기 보단 새로운 환경에 시시때때로 노출되고 안정성보단 재미와 자기 만족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MZ 세대의 특징을 잘 보여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들이 새로운 시즌에서 n잡러의 삶을 택한다고 해도 저는 더 이상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이 드라마는 기자인 Jane과 소셜 미디어 부서를 맡고 있는 Kat의 열렬한 타이핑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를 꽤 직설적으로 전달합니다. 패션 매거진은 겉으론 가장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보수적이며 폐쇄성을 가지고 있는 업계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SNS에 보여주기 좋은 화려한 칵테일 파티의 이면에는 추악한 업계의 실상이 공존하는 곳이죠. 일을 하다가 고소를 당하는 건 물론 SNS상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신공격과 성적 위협을 받기도 하며 비공식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음성 파일이 공개되어 집단적으로 조롱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를 통해 이러한 고난을 헤쳐나갑니다. 그리고 고군분투하는 그들이 방향을 잡고 조금 더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편집장인 재클린의 아낌없는 서포트가 뒷받침되죠.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놀라운 고백을 통해 Jacqueline은 이상적인 직장 상사를 넘어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시청자들에게도 한 발짝 가까이 다가옵니다.



극 중 계급과 인종, 젠더, 성적 지향에 대한 이야기는 주인공인 Kat과 그의 연인인 Adena를 통해 무척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본인을 스스럼없이 '자랑스러운 무슬림 레즈비언 포토그래퍼'로 소개하는 Adena를 통해 Kat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죠. 흑인 여성이지만 안정적인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부모님 덕분에 대담하고 거칠 것 없이 자라온 Kat에게 Adena는 그들이 각자 놓인 처지가 다르다는 사실을 단 한마디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당신과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고요. Adena의 말처럼 미국에서 외국인이자 여성, 무슬림이자 퀴어로 산다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이 드라마는 둘의 대비되는 상황을 통해 무척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해외에서 외국인들이 주기적으로 겪는 비자 문제가 그들의 삶을 뒤흔들 정도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새로운 터전에서 자신의 인종과 종교, 성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 삶인지 말이에요. 일부에선 Kat의 캐릭터가 인종 문제를 간과한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흑인 여성의 새롭고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캐릭터가 무척 긍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인종에 관한 문제는 이미 Adena를 통해 무게감 있게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리고 끊임없이 널뛰는 둘의 관계를 보며 좀 불안하기도 했는데 "Kat과 Adena의 관계가 실패로 돌아갈 때 그게 (사회적으로) 얼마나 부정적인 비유가 될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화면 바깥으로 밀어낼 생각이 없다."는 제작진의 인터뷰를 보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볼드 타입>의 장점을 나열하느라 바빴지만 사실 어떤 때는 너무 예측 가능하고 뻔한 결말을 내놓아서 김이 빠지기도 했고 어떤 때는 감정 기복 심한 캐릭터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의사 결정을 번복하는 Kat을 보며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건가 싶어 종지에는 세대 차이를 의심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단점을 꼽고 있기엔 이 드라마는 재미와 함께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을 부지런히 다루고 있단 점에서 장점을 고루 갖춘 드라마입니다. 현재 넷플릭스에는 시즌 3까지 업로드가 되어 있는데 마지막 시즌이기도 한 시즌 5의 촬영을 얼마 전에 마쳤다고 합니다. 과연 세 사람은 패션 매거진 스칼릿에서 커리어와 우정, 그리고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일단 넷플릭스에 시즌 4의 빠른 업로드를 요구하며 이쯤에서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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