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가 결혼했다

월간 (다시) 시드니 4월호

by Ronald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한 건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첫 만남 과정부터 오랜 시간 동안 곁에서 친구 커플을 봐온 나로선 이 소식에 누구보다 뛸 듯이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함께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마침내 청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 모든 과정이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그래서 한편으론 조금 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잡고 있던 두 손을 더욱 꼭 쥐고 함께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가기로 결심했단 사실이. 그리고 구체적인 결혼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있어 코로나19로 판데믹이 선언되었다. 시드니는 세 차례의 록다운으로 국경 문을 꽁꽁 걸어 잠갔고 한국에서 가족들이 참석해야 했던 친구의 결혼식은 당연히 기약 없이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확진자 수가 몇 만 명대를 오가는 사이, 나는 다시 시드니로 돌아왔고 이대로 국경 문을 영원히 봉쇄할 것만 같았던 호주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해외 입국자에 대한 여러 제약을 느슨하게 풀기 시작했다. 1월에 시드니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베프에게 정식으로 결혼식 초대장을 전해 받았고 나는 빠르게 참여 의사를 밝혔다. 한국과 달리 결혼식이 한나절 동안 이어지는 호주 스타일에 따라 초대장에는 시간대별 상세 일정이 첨부되어 있었고 마지막 줄에는 그들이 평소 잠자리에 드는 시간인 9시 30분까지 기입되어있는 웃음이 있는 청첩장이었다.



가까운 이가 결혼을 한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일명 스드메가 생략된 결혼 준비 과정을 지켜보는 건 내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드레스숍이 아닌 곳에서 직접 드레스를 골라서 수선을 맡기고 피팅을 보고 결혼식 장소를 찾아 직접 예약을 하고 테이블마다 올려놓을 꽃을 고르고, 참석하는 사람들의 자리 배치도를 고민하고 포토그래퍼/비디오그래퍼 섭외하는 일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소요하는 작업이었고 결혼식 날까지 그야말로 커다란 백지를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과정이었다. 4월 말로 예정된 결혼식 전에는 헨즈 트립과 헨즈 나잇이 있었는데 옆에서 참가만 했던 나는 괜히 마음만 분주해져 이 모든 걸 손수 계획하고 진행하는 친구를 지켜보며 내내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헨즈 트립으론 시드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아보카 비치에 다녀왔는데 잠시 사는 동네를 벗어나 탁 트인 바다를 마주하는 건 기분 전환을 하기에 딱이었고.



그리고 2주 후에는 헨즈 나잇이 있었는데 화관 만들기 클래스가 더해져 다들 하하호호 웃다가 본인 스타일의 화관을 만들기 위해 모든 이들이 갑자기 초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손재주 좋은 친구들이 많은지라 각각의 개성이 더해진 화관을 구경하는 건 덤이었고 처음 만난 사람들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지난 2년 동안 하지 못했던 왁자지껄함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4월의 마지막 날인 30일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 날짜가 다가와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당일 새벽에 일어나 결혼식 갈 준비를 하며 비로소 결전의 날이 밝았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와 한 친구는 각각 신부와 신랑의 결혼식 비하인드 신을 찍기로 했고 또 다른 한 명은 메이크업 및 스타일링을 해주기로 해서 세 명이 새벽부터 단장을 하고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결혼식이 진행될 호텔로 함께 이동을 했다. 방문을 두드리니 아직 눈이 부스스한 친구와 친구 가족들이 우리를 맞았고 그들의 얼굴을 보니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르륵 풀어져버렸다.


세리머니가 진행되는 11시까지는 제법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동이 트기 시작했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바깥에선 세차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변 근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식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보며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식 직전에 비가 잦아들어 예정대로 야외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결혼식은 예상했던 대로 아름다웠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감동적인 순간이 많아 다들 웃다가 황급을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하나도 긴장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치시던 어머니께서 신부가 입장하는 순간부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이라든지 평소에는 내색하지 않던 딸에 대한 사랑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전해주신 아버지, 그리고 그날이 있기까지 신부에 대한 사랑과 주변 지인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신랑의 스피치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베스트 프렌드의 결혼식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바쁜데 다들 결혼은 어떻게 하는 걸까 싶어 갑자기 결혼식을 치른 주변의 모든 지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친구의 결혼으로 인해 4월 내내 덩달아 정신없었지만 친구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기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지만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준 것에도 감사했다. 2022년 4월은 『베스트 프렌드가 결혼했다』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달이었고 그만큼 행복한 기억도 많았던 한 달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