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이사를 결심했다

월간 (다시) 시드니 5월호

by Ronald

한 달 동안 이사를 두 번이나 했다. 그냥 '두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라고 쓴 이유는 이사는 그만큼 번거롭고 품이 드는 일이라서 반드시 해야 하는 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피치 못 할 사정이 연달아 발생해버렸고 그렇게 한 달 간격으로 이사를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의 계약 연장에 실패였다. 당시 하우스 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던 곳은 호텔과 주거용 아파트가 합쳐진 복합 건물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으로 호텔 대신 입주민의 비중을 높여서 건물을 사용 중이었다. 그런데 1월에 코로나 피크를 찍은 후, 서서히 관광객들이 돌아올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계약 연장에 오케이를 했던 집주인이 갑작스레 호텔로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부지런히 방을 보러 다녔고 어렵사리 당시 살고 있던 동네에 방 하나를 구하게 되었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다. 이삿날 다시 이사를 결심하게 될 줄은.


생각해보면 집을 보러 갔던 날, 새 집주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마음에 걸리는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무언가를 물으면 'Cool' 같은 대답이 돌아왔지만 사실은 그 앞뒤로 엄청나게 많은 조건과 세세한 부연 설명이 붙는다는 점이 그랬다. 하지만 방의 상태와 가격이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전에 계약하려던 곳의 집주인이 갑자기 잠수를 타는 바람에 급하게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던 내게 이사 날짜가 딱 맞았다는 점이 그때는 조금 운명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물론 그건 심각한 착각이었다.) 그래서 평소라면 짚고 넘어갔을 문제를 '괜찮을 거야'라고 대충 모른 척하고 뭉갠 것이 화근이었다. 싸함은 싸이언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동안 여러 명의 하우스 메이트와 생활해보며 깨닫게 된 것은 낯선 타인과의 생활은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줄 때 비로소 평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 하우스 메이트는 상식을 크게 벗어난 사람이었단 게 문제였다. 그녀는 이사하는 순간부터 도대체 이게 그쪽이랑 무슨 상관인지, 싶은 것들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계약서를 쓰던 날 이미 구두로 이야기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나는 이사를 마친 홀가분함 같은 것은 느낄 겨를도 없이 이사 당일날 또다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하지...'


결국 이사 다음 날, 나는 집주인이자 하우스 메이트에게 곧바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최소 계약 기간이 3개월이었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이 계약을 이어받을 다른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나는 올릴 수 있는 모든 곳에 광고를 올렸고 이대로 2주 안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서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사를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하우스 메이트였다. 입주자에 대한 요구 사항이 지나치게 많고 까다로웠으며 어떤 경우에는 집을 보여주기로 약속을 다 잡아놓고 갑자기 마음을 바꿔 약속 시간에 맞춰 집 앞에 와있다는 사람에게 문을 안 열어주기까지 했다. 그동안 살면서 제법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났다고 생각했으나 이런 유형의 인간의 처음이었고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하루하루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스트레스였다. 오히려 업무가 바쁜 날이면 집 문제를 잠깐 잊게 해주는 회사가 숨구멍처럼 느껴질 정도로.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어느 날,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잘 차려진 점심을 먹고 귀가를 하던 중이었다. 친구의 파트너가 계약 파기를 한번 생각해보라며 말해준 6주 치의 계약 파기 비용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귀가 솔깃하고 말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그러니까 '계속 새로 들어올 사람을 못 구하면 거기서 그렇게 3개월을 살 작정이야? (그러느니 지금 당장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이런 최악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약 2주 동안 번번이 퇴짜를 놓는 하우스메이트를 보며 빠른 시일 내에 대체할 사람을 찾을 확률이 낮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이렇게 세입자를 구하려고 계속 스트레스만 받다가 계약 기간인 3개월을 채우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순간 원래는 없던 적극적인 옵션 하나가 두둥실하고 떠올랐다. 바로 계약 파기 비용을 물고 이사를 나가는 것. 이미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서 공은 저쪽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공은 여전히 내쪽에 있었다.


현실적이고 감당 가능한 최적의 대안을 발견하고 나서 나는 약 3일간 호주 정부 사이트에 들어가 렌트와 계약 파기 관련 조항을 샅샅이 찾아보았고 알고 보니 2020년 3월 이후 계약 파기 비용은 6주 치가 아닌 4주 치로 줄어들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약 파기에 대한 내용을 숙지한 뒤 수요일에 이사를 결심했고, 목요일에 집주인에게 이사를 통보했으며,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신속하게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약 3주간 나를 괴롭히던 문제가 3일 만에 사라진 순간이었다.






〰️ <그렇게 렌트를 시작하게 된다>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