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다시) 시드니 6월호
〰️ <이삿날 이사를 결심했다>와 이어집니다.
Hello?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건 월요일 아침이었다. 스팸 전화가 걸려오는 일이 드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때는 기다리는 전화가 있었다. 한 시간 전에 주말에 본 집에 애플리케이션을 넣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전화가 걸려올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일단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9시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없는 월요일 아침이었지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상대로 부동산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순간 저 멀리서 희망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부동산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소개를 마친 직원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넣은 지원서가 통과되었고 집주인이 내 지원서를 보고 무척 만족했다는 점,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호주의 렌트 시스템은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특히 집을 본 세입자가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선착순 개념으로 무조건 이사를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 그렇다. 집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정해진 인스펙션 시간에 맞춰 집을 보고 집이 마음에 들었다면 지원서와 기타 서류를 준비해서 넣는다. 그리고 집주인과 부동산이 지원서를 보고 그중 가장 적합한 세입자를 고르는 시스템이다. 계약 기간은 보통 1년을 기본으로 하고 렌트 비용은 2주 단위로 내는 경우가 많다. 인기가 많은 곳들은 스무 명이 넘는 지원자들이 몰리기도 해서 마음에 드는 집으로 렌트를 들어간다는 건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인데(왜냐하면 내 마음에 쏙 들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들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처음으로 애플리케이션을 넣은 집에 지원서가 통과되었으니 그야말로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렇게 빨리 렌트를 할 생각은 없었다. 1월에 다시 호주로 돌아왔을 때 계획은 일단 쉐어를 살면서 적어도 1-2년 정도 지낼 확신이 서면 먼저 자동차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렌트는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고 이삿날 이사를 결심하게 되자 또다시 이름도 성도 모르는 타인과 함께 덜컥 산다는 것이 더 이상 내키지 않았다. 집은 어쨌든 간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이사 문제로 주변에서 조언을 얻다 보니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나처럼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자기 렌트를 시작하게 된 사연이 하나둘 쯤은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모든 게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는 건 이젠 정말 운이 좋은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계획 없이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건 또 아니다. 이제는 그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들을 빠르게 이어나갈 뿐이었다.
이사 결심에서 이사까지 3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 집주인과 트러블이 있고 나서 조용히 이사 갈 집을 미리 알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해진 인스펙션 날짜와 시간에 맞춰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도 사정을 이야기하고 업무 시간 중에도 종종 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이사할 결심을 하자 옆에서 적극적으로 이사 갈 만한 동네를 알아봐 주고 그중 괜찮은 집 리스트를 보내준 친구의 일조가 컸다. 친구가 보내준 스무 개 정도의 리스트 중 마음에 드는 집이 세 군데 있었는데 지원서가 통과된 집은 그중 하나였다. 몇 군데를 인스펙션 하긴 했지만 지원서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이 처음이었고 까다로운 호주 렌트 기준에 맞춰 주말 동안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월요일 아침에 신청을 마쳤다. 나중에 세어보니 지원서에는 총 17개의 첨부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첨부파일이 17개나 된 이유는 (1) 이 세입자가 렌트비를 낼 만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인지 (2) 또한 집세를 밀리지 않고 낼 수 있는 신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기본적으로 신분증과 거주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하고 추가로 근로 계약서, 직장 상사나 이전 집주인의 레퍼런스, 은행 잔고 증명서 등이 있으면 가산점이 붙는 형식이다. 내 경우엔 이전 렌트 히스토리가 많지 않아 최대한 낼 수 있는 서류를 모두 준비하는 게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월요일, 부동산에서 레퍼런스를 써준 헤드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사항들을 확인하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도 전화가 걸려온 걸 보면 아무래도 꾸준한 소득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던 것 같다.
수십 개의 리스트를 추려서 보내준 친구는 어떻게 자신이 준 리스트 중 단 세 군데만 마음에 들 수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준이 높았던 걸 보면 사실은 생각보다 심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것 아니었냐면서. 하지만 오히려 내 대답은 그 반대였다. 그렇게 한번 데고 나니 오히려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을 땐 그것이 결국 나의 발목을 잡을 거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급하다고 해서 섣부른 결정을 했다간 그 뒷수습도 전부 내 몫이 된다는 걸 한 달 동안 이사를 두 번이나 하게 되며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출근할 때마다 예전에 인스펙션 갔던 집들을 지난다. 그리고 그때 성급하게 지원서를 내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매일 생각하고 있다. 예전에는 스튜디오보다 원 베드룸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스튜디오에 살아보니 예전에 원 베드룸 유닛에 살 때 보다 만족도가 높다.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면 거실에서 방으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분위기 전환을 할 수 있다거나 음식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지만 실제 필요한 면적이나 살림살이보다 공간이 너무 넓으면 쓸쓸한 기분이 쉽게 들기 때문이다. 나중에 짐이 늘어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테지만, 역시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있다.
집은 타이밍이란 말처럼 이사에는 분명 운명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안착하게 된 현재의 집에 정말 만족하여 살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자동차 보다도 렌트가 후순위였던 이유는 언젠가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가능하면 발목을 잡는 책임을 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년 계약이란 단어는 내게는 항상 부담스러운 단어로 다가왔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서 1년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1년 동안은 집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나를 더 이상 불안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크게 안도하게 만든다.
(*) <그렇게 렌트를 시작하게 된다>는 고래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인용한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