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다시) 시드니 8월호

by Ronald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준비로 8월을 시작해봅니다.



천선란의 『노랜드』

올해 초에 이북 리더를 구입하여 어느덧 사용한 지 반년이 넘었다. 예스24 구매 기록을 살펴보니 올해 구입한 책의 절반 정도를 이북으로 구입했는데 이북 리더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역시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기다리지 않고 지금 당장이라도 사서 읽을 수 있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꼽고 싶다.(시드니까지는 항공편으로 부쳐도 일주일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아이패드와 달리 기능을 단순화하여 딴짓할 요소들을 미리 차단해준다는 점. 그래서 핸드폰을 아예 안 본다는 건 아니지만 그 횟수를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겠어요.


최근에는 궁금했던 렌조 미키히코의 『백광』을 완독 했다. 엉킨 실타래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오랜만에 허겁지겁 음식물을 집어삼키듯 읽은 소설이었는데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 찾아보니 그 외에는 전자책으로 나온 게 없어서 아쉬웠다.



일 년에 한국 드라마를 한 두 편 정도 챙겨보는데 올해의 첫 한국 드라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다.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박은빈 배우가 맡은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함께 이 드라마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몇몇 에피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고 언론의 보도에 고개를 갸웃하게 했던 지점들을 다른 관점에서 비춰줘도 속이 후련했다는 점에서 특히.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주인공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약간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로맨스의 비중이 커지기도 했고 어떤 에피에선 제작진의 관점에 동의할 수 없어 중도하차할 뻔한 위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여태까지 대중매체에서 보이지 않았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들과 생각할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제 역할을 다 하지 않았나 싶다.



영우가 “동 투 더 구 투 더 롸미” 할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게 됐는데 처음에 동구라미 이름이 동구라미인지 몰랐을 때는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지..' 했는데 어느새 둘이 만나는 씬 나오면 같이 신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우리의 최춘광씨(a.k.a.최수연)가 점점 좋아졌고 권모술수는 그냥 계속 싫었네요.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헨즈 나잇을 포함한 다른 이벤트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결혼식의 모든 과정을 담은 앨범을 선물로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전에 했는데 그 결심을 그대로 실행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지낼 때 엄마에게 어버이날 선물로 앨범을 만들어드린 적이 있는데 핸드폰 사진도 편리하고 좋지만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시며 좋아하셨던 모습이 떠올라서 친구에게 한 권, 친구 부모님에게 보내드릴 한 권, 총 두 권의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역시 어르신들에겐 아날로그 한 게 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도 이쪽이 좋지 않겠어요.


오랜만에 해보는 방대한 양의 작업이라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몇 차례의 수정과 테스트 끝에 마침내 친구 부부에게 3개월 만에 선물을 전달할 수 있었다. 앨범을 끝으로 비로소 베프의 결혼식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언니(or 누나) 잘 다녀올게

동네에 아는 고영이 생겼고 아침엔 가끔 이웃 고영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한다. 뱃살이 땅에 닿을 것 같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게 매력 포인트인 고영인데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목소리가 또 너무 작아서, 가끔 "냥" 하고 울 때면 나는 그냥 너무 귀여워서 주먹을 물게 된다. 이름은 내 멋대로 통통보씨라고 붙였다.



한국에서 항공편으로 부친 택배가 도착했고 그렇게 주말 행복 예약. 도착한 책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왜 소설이 한 권도 없지?!? 이렇게 까지 소설을 안 읽었던가 싶어 반성 모드에 들어갈 뻔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책은 사진이 들어가 있고 이 책은 삽화가 들어가 있으니 종이책이 낫겠다 하며 장바구니에 담던 때가 생각났다. 다행히 이번에 주문한 종이책들은 모두 만듦새가 좋아 이북이 아니라 종이책으로 구입하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오래도록 좋아해 온 작가님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고 도착한 책 중 당연히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를 가장 먼저 집어 들었다. 나는 작가님의 사진도(당연함), 넘쳐나는 짤을 대방출하기 위해 간간이 인스타에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를 열어주시는 유머러스함도 좋아하지만 예전에 블로그에 길게 주욱 써 내려간 긴 글을 올려주실 때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에세이를 준비하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책인데 기대한 것보다 더더 좋았고 예상보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일도 많은 책이었다.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한 권이었고 오랜만에 기대한 만큼 기대를 충족시켜준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친구들을 초대해 첫 집들이를 마쳤다. 친구 둘 불렀을 뿐인데 우왕좌왕하는 나 너모 어이없었고 한번 해보니 그동안 밥 먹으러 오라고 자주 불러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엔 더 맛있는 거 해줘야지. 집들이 날은 얼마나 정신이 없던지 사진 한 장 못 찍었고 위 사진은 요즘 밀고 있는 삼겹살+비빔면 콤보를 친구에게 소개(?)하기 위해 초대한 날.



비어있는 선반을 뭘로 채울까 계속 고민했고 그곳에 꽂고 싶은 책들을 리스트업 했다. 그동안 궁금했던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역시 읽고 싶은 책과 소장하고 싶은 책은 다르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장바구니에서 슬며시 빼기를 반복. 책을 사고 싶은 욕구가 들 때마다 어차피 책장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을 되뇌었고 고민 끝에 캐롤라인 냅과 요네하라 마리의 책들을 구입하였다.


예전에 한 친구가 자기는 한국으로 휴가 올 때마다 다 읽은 책들을 부지런히 한국 집으로 반납했다는 말에 정말 새로운 인종을 만난 기분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난 정확히 반대로 엄마 집 책장에 꽂혀있던, 좋아하는 책들을 부지런히 이곳으로 날랐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책을 읽는 행위도 자체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냥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가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맥시멀 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에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지.


결국 새로 산 책 보다 책장에 있던 책이 더 많이 포함되었는데 그렇게 몇 차례 항공/선편을 타고 함께 한 책들이 있다. 처분할까 하다가도 국제 이사를 한 후에도 어차피 같은 책을 살 거란 걸 깨달은 이후론 그냥 소장한 책들을 이고 지고 다닌다. 기왕이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책들이 좋으니까. 원래는 한 달 정도 걸리던 선편이 코로나 이후에는 3~4달씩 걸려 그냥 부쳤다는 사실을 잊고 있으면 언젠가는 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제가 아침을 많이 먹는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그럴리가요.

카페인을 줄이기 위한 노오력으로 몇 주 전에 디카프 원두를 구입했고 절반 정도 소비한 어제 드디어 일반 빈을 구입했다.(일반 원두도 있으면 디카프 안 마실 것을 알기에.) 워터멜론이 쓰여있길래 궁금해서 구입했는데 산미도 바디감도 있는 원두였다. 디카프랑 번갈아 가며 마셔야지.



아침으로 바나나 먹는 게 질려서 지난번에 친구네서 처음으로 오트를 시도해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그래서 어떤 오트를 사면 되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한 병을 만들어서 전해줬다. 내 친구들 왜케 서윗해〰️



지난번에 1260x600 사이즈의 책상을 구입하며 다음엔 반드시 1500 이상 되는 큰 책상을 사야지라고 다짐했으나 역시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이사 온 스튜디오엔 큰 책상을 놓을 공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익스텐더블 테이블을 구매했다.


나무톤이 밝고 만듦새가 견고해 한달음에 달려가서 사온 책상인데 길이는 1200이지만 기본 너비가 600에서 900까지 늘어나서 친구들을 초대할 때면 식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고 무언가 이것저것 펼쳐놓고 작업을 하고 싶을 땐 큰 책상의 역할도 잘 해내서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번엔 반드시 큰 책상을 구입하겠다고 또다시 다짐하게 되지만.(불끈)



밤새 물 올림으로 꼿꼿해진 보라색 튤립을 온 동네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 활짝 핀 꽃도 좋지만 릴리나 튤립처럼 꽃 피기 전이 가장 아름답고 줄기의 선이 곱고 아름다운 꽃을 좋아한다.



특송 후기 : 오늘부터 박소담 배우 팬 합니다

해피 엔딩 사랑맨에게 영화 <특송>은 행복한 영화였다. 엔딩에 대한 관객의 질문에 "두 주인공이 그렇게 되길 개인적으로 바랐다"라고 답변해주신 감독님의 말이 기억에 남았고.


자동차 추격씬이 많은 영화에서 로케이션을 부산으로 한 건, 한국에서도 부산은 가장 운전하기 빡 쎈 도시로 손꼽히기 때문에 더 박진감 넘칠 것 같았고 뿐만 아니라 부산은 바다를 끼고 고층 빌딩과 오래된 주택가가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고.


필름 페스티벌 첫날이었고 Q&A 세션이 준비되어 있는 줄도 모르고 갔다가 귀가하니 거의 11시가 다 되었지만 오랜만에 고양감이 들 정도로 즐겁게 영화 관람을 하고 나올 수 있어 정말 즐거웠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시간표를 샅샅이 살펴보며 보고 싶은 단 두 편의 영화를 골랐는데 그중 하나가 <특송>이었고 다른 한 편은 <헤어질 결심>이었다.



치라시로 든든한 점심. 회사에서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지만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 점심이었다. 연어 천국인 호주에서 연어 외에 맛있는 해산물을 먹으면 조금 신이 나고 만다.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데 대신 주인공들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하는 모든 행동(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 손짓과 몸짓)과 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초반부터 두 사람의 관계를 자연스레 납득해버렸고.


스크린에서 탕웨이의 존재감이 엄청나서 계속 감탄했는데 영화 <색, 계>에선 보는 이들에게 숨 막히는 긴장감을 주었다면 헤결에선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두근, 두근, 하게 만들었다. 중국어로 이야기할 때 또 너무 우아해서 나도 모르게 감상 모드에 돌입하게 되었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다가 이렇게 웃은 건 처음이었데 초반엔 ‘뭐지... 이렇게 웃어도 되나...?’ 의심 모드로 있다가 얼마 안 있어 그냥 맘 놓고 웃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관람한 극장은 웨스턴/아시안 비율이 6:4 정도 됐는데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웃는 사람들도, 어느 씬에선 헙 하고 숨을 죽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관심 가는 상대가 생기면 나도 모르게 절로 눈길이 가고 자꾸만 바라보고 싶어 지는데 극 중 해준의 직업이 형사라는 점이 이런 사실을 자연스레 감춰주기도, 때론 대놓고 드러낼 수도 있게 한다는 점이 재밌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히치콕의 <이창>을 떠올리게 했던 망원경 씬.


이런 설정을 포함해 영화 전반적으로 중의적인 대사가 많은데 이게 관객들로 하여금 엄청나게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정서경 작가님이 “은유 그런 것 없습니다”라고 했음에도, 이미 관객들은 제멋대로 해석 플러스, 의미에 의미를 더해 결국 온갖 다양한 해석이 지구를 뚫고 나가는 게 너무 재밌었고.


대부분 반대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 기억뿐이지만 처음 식사 자리에서 마치 10년을 함께한 동거인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첫눈에 호감을 갖고 그러다가 사랑에도 빠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좋아하는 장면은 두 사람이 고오급 스시 도시락을 먹는 씬. 스시를 먹고 함께 정리정돈을 하는 장면은 처음엔 약간 무협 영화처럼 느껴지다가 뒤로 갈수록 약간 코믹 영화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막판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결국 이날은 집에 와서 그동안 아껴둔 필름클럽 <헤어질 결심> 편을 듣고 새벽 한 시가 다 되어서 잠들 수 있었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 2차 관람 언제 가능하다고요?



퇴근길 하늘이 예뻤다.



일인 가구에게 과일은 뭐랄까 잘 챙겨 먹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에 약간 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 담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수박을 사서 바닥까지 샥샥 떠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맛있게 생겼다 했는데 역시 달디달았고.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지 며칠 동안 꼼짝 않던 해바라기가 좀 폈다. 퀵 세일로 5불에 데려왔는데 귀여워.



일은 그냥 하면 되는 거고 회사는 회사지 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직장에 다닌 지 6개월이 넘었다. 그런데 새로운 곳으로 출근하니 자연스레 만나는 사람들이 바뀌고 사는 동네가 달라지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생활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 변화가 나는 마음에 들고, 돌아올 여름이 조금 기대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