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한 가지는 빌트인 가구의 비중이 크고 그 가구의 모양도 쓰임도 좋았다는 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 이사를 하며 새로 구입해야 할 목록이 비교적 짧았지만 퇴근 후에는 IKEA/K-MART/Target을 부지런히 돌고 책상을 픽업하고 침대 프레임을 조립하는 나날을 보냈다.
마음에 드는 동네 카페를 찾기 위해 눈에 보이는 대로 시도를 해보다가 마침내 (1) 커피가 맛있고 (2) 원두를 판매하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카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커피뿐만 아니라 차이 라떼까지 잎차로 내려주는 곳이어서 출근길에 부지런히 발도장을 찍고 있다.
카페와 함께 마음에 드는 이탈리안도 발견했다. 대학교 안에 입점한 업소라서 그런지 가격도 저렴하고 푸짐한 양이 마음에 들었는데 무엇보다 봉골레 파스타가 맛있다(!) 이곳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대체로 간이 세서 입맛에 맞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집 앞에서 이런 곳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술은 잘 마시지 않지만 가끔 해장하고 싶은 날이나 자작한 국물에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는 날이면 주말에 아점을 먹으러 종종 출동하게 된다.
이사와 함께 그동안 사모은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하나씩 개시했다. 일단 구입하면 안심하는(?) 타입인지라 무언가 사고 나서 바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문데 호주 오고 나서 몇 달 동안 차곡차곡 모아놓은 바쓰 타월이나 그릇 같은 것들을 이때다 싶어 일제히 개시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물건들이 더해지니 일상에도 자그마한 변화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게 재밌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일까 아니면 독립을 꿈꾸기 시작한 이후부터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언제든 부담 없이 부를 수 있고 오고 가는데 큰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 동네 친구를 갖는 게 소망이었는데 이사와 함께 달성하게 되었다. 일단 동친의 장점으론 주말 브런치로 부대찌개를 때릴 수 있단 점을 꼽고 싶고요.
이쯤 되면 조금 더 크기가 큰 과일 바스켓이 필요한 거 아닐까 싶지만 작은 바스켓과 함께 과일 쌓기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퇴근길에 마트에 들렀다가 봉지에 담긴 알배기 배추가 너무 귀여워서 집어왔다. 나는 원래 국물파(?)인데 몇 년 전부터 건더기, 특히 그중에서도 야채를 익혀 먹는 것에 맛을 들렸고 국물 요리에 아낌없이, 푸짐하게 넣어 먹을 생각에 데려왔다. 무엇보다 포장이 너무 귀엽기도 했고.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가 회사에서 한번 돌았고 감기라고 하기엔 몸살처럼 온몸이 아파서 결국 나도 코로나에 걸렸구나 했는데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걸린 감기여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며칠은 누워있는 사람을 하기로 했다.
동네 자랑을 조금 더 해보자면 동네에서 자그마한 인디 영화관도 한 곳 발견했다. 예전에 Paramount사의 스튜디오였는데 현재는 1개의 상영관과 카페, 숙박 시설로 리노베이션을 해서 운영 중이다. 몇 년 전에 좋아하는 사진가님이 이 카페에 들른 사진을 보고 언젠간 가봐야지 하고 점찍어뒀던 곳인데 이렇게 근처로 이사 오게 될 줄이야. 단 하나의 상영관은 크지도 않고 무척 귀여운 사이즈인데 방문할 때마다 관람석이 거의 꽉 찬다. 이 날은 친구와 함께 <애프터 양>을 관람하러 다녀왔고 영화를 보기 전에 커다란 라떼도 한 잔 마셨다.
윤방울은 작년부터 엄마와 함께 돌보던 고양이인데 이곳으로 온 후, 윤방울은 엄마가 돌봐주고 계신다. 그런데 저 족구만 머리로 자기를 보살펴준다는 사실을 아는 것인지 여름이 되자 말로만 듣던 고양이의 보은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고추잠자리였는데 어느 날, 새벽부터 찾아와서 평소와는 다른 울음소리로 엄마를 부르길래 나가봤더니 생포해온 고추잠자리를 자랑스럽게 내놓았다고 한다. 엄마는 살아있는 잠자리(=고양이가 좋아하는 것)를 엄마에게 물고 왔다는 것에 크게 감동받으셔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는데 방울이가 얼마나 훌륭한 고양이인지에 대해, 엄마에게 온 장문의 카톡을 보고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고.
그런데 칭찬의 효과였을까 며칠 후, 방울이가 아기새를 잡아와서 엄마도 나도 뜨악해버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참새나 비둘기 같은 새도 아닌 처음 보는 아기새를 어디선가 물고 왔는데 새벽에 불러서 또 나가보니 기절해있는 아기새가 계단에 있었고 아직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엄마는 응급처치를 해서 방울이의 손이 닿지 못하도록 박스에 넣어 물과 함께 옥상 위에 올려두셨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기새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엄마새와 아빠새가 찾아왔고 두 마리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날른 덕분에 이틀 후에 한 마리가 날아갔고 삼일 후에 또 한 마리가 날아갔다. 엄마는 아기새가 날아가서 너무 잘됐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고 성장한 아기새가 가을에 박 씨를 물고 오면 되겠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방울이의 보은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다.
출근길에 맥도날드 들르는 사람이 있냐고요? 맥모닝이 먹고 싶어서 출근길 맥도날드에 들르는 사람이 바로 접니다. 아침부터 콜라를 들이켜는 타입은 아니지만 맥모닝에는 무조건 콜라파.
이사를 한지 얼마 안 돼 집은 아직 난장판이었지만 귀가하면 조용한 평화가 기다리고 있단 사실에 마음이 편안했고 무엇보다 친구가 끓여준 꽃게 라면을 먹다 보면 없던 기운도 솟아난다고요. 친구 덕분에 매우 고급진 누들 요리를 몇 차례 접하게 된다.
오랜만에 혼자 살아보니 대부분의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현실이 조금 벅차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어느 순간에는 ‘맞아, 이런 것까지 스스로 챙겨야 했지.. ’하고 얕은 한숨을 뱉다가도 내 삶이 온전히 내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 어떤 때에는 오히려 안정감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퇴근길 마트에 들렀다가 릴리가 싱싱해서 한 단 사서 책상 위에 뒀더니 그림처럼 예뻐서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만 여러 차례 시선이 갔다.
또 다른 뉴스로는 친구에게 이사 선물로 극락조를 선물 받았다. 사이즈가 너무 커서(170cm) 화분을 옮기거나 분갈이를 하는 것 등 혼자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처음엔 망설였는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자신을 부르라는 친구의 말에, 기댈 친구가 있을 때 마음껏 편히 기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좋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집안에 커다란 식물을 들이게 됐다.
친구들에게 딱히 영업을 한건 아닌데 지난주에 조막만 한 스튜디오에 극락조를 들인 나를 보고 용기가 생겨서(?) 한국에 있는 친구도 같은 식물을 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나는 기쁨의 땐쓰를 추었는데 대품 식물은 약간 가구와도 같다 보니 구매 난이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애기 극락조는 아무래도 성에 안 차고 대품을 들이자니 이사할 때가 미리 걱정되어서 늘 결정을 미루었다고 하는데 칭구들아, 우리 하고 싶은 거 미루지 말고 다 하고 살자.
어쩌다 보니 몇 개의 식물을 공간에 들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식물을 몇 개 더 들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일단 리스트업 다 하고 그중에 고르는 걸로. 지금까진 주방용 머리가 긴(?) 식물 하나랑 거실엔 tongue plant, 화장실에는 서양난이나 다육이 놓는 걸 생각하고 있다.
일을 시작한 지 삼 개월 정도 지나자 스스로가 한심하고 답답했던 시기를 (다행히) 지나게 되었고 육 개월 정도 지나자 슬슬 일에 속도가 붙고 데이터를 원하는 방식으로 굴려 결괏값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상태를 눈치라도 챈 것처럼 일복이 터져서 정말 하루 종일 숨도 쉬지 않고 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일이 매우 바쁜 와중에도 옆에 있는 장군 같은 여자 친구들을 보며 힘냈다.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된 건 사실 내겐 우연 같은 일이었지만 여초 업계다 보니 함께 벌판을 헤쳐나가는 여자 친구들을 보며 힘을 낼 때가 많다.
핫팟 먹고 싶다고 노래 불렀더니 핫팟 약속이 세 개나 생겨버렸고 역시 중간이 없는 광인의 삶.
마침 엄마의 생신이 돌아오고 있는 와중에 임영웅 씨의 콘서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호주 서버로 괜찮겠냐(?)는 친구들의 우려처럼 임영웅 콘서트 티켓팅은 시작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마우스 질을 했음에도 장렬히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티켓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비슷한 날짜에 나훈아 씨 콘서트도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작년 명절에 늦은 시간까지 나훈아 씨의 콘서트를 TV로 시청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이쪽이 더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업무 중에도 출퇴근길에도 부지런히 예스 24 사이트를 들락거렸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2자리 연석 예매에 성공할 수 있었다.
엄마는 친구분과 함께 8월 나훈아 씨의 서울 콘서트에 다녀오셨고 나는 그다음 날 나훈아 씨의 콘서트가 얼마나 대박이고 감동적이었는지에 대해 주말 아침부터 엄마랑 30분 영통을 해야만 했다. 콘서트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아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는 보며 나는 또 웃음이 터져버렸고.
SNS의 탐라가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도배되었고 그래서 헤어질 결심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싶은 순간에 거짓말처럼 상영일이 떴다. 8월 기다려.
몇 년 전 교토에 갔을 때 당시 김민철 작가님의 에세이를 보고 관심이 생겨 도예 클라스를 신청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밥그릇 두 개를 만들어 왔다.
밥그릇 용도로 만들었지만 사이즈가 살짝 작아서 요거트 그릇, 앞 그릇(?) 등으로 맹활약 중이고 처음으로 만든 거라 두 개의 모양이 제각각이고(하나는 매끈, 다른 하나는 뚱뚱) 삐뚤빼뚤하지만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게 된다.
1월에 시드니로 돌아와서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을 보며 어색하고 낯설어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에 어느새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무엇보다 6개월의 프로베이션이 잘 마무리되었고 큰 금액은 아니지만 연봉도 소폭 올라, 그렇게 마음껏 기뻐하며 7월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