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장과 생일 파티, 그리고 빌리 아일리시

월간 (다시) 시드니 9월호

by Ronald
연어장

SNS에서 가보고 싶은 음식점이나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 레시피 같은 것이 올라오면 일단 캡처를 해두는 편이다. 그러다가 잊히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낮은 확률로 살아남는 생명력 좋은 레시피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SNS에서 한 연어장 장인의 레시피를 발견하게 되었다. 만드는 방법이 비교적 간단해 보였고 평소 좋아하는 새우장을 떠올리며 연어장도 비슷한 맛이려나 혼자 상상을 하다가 자연스레 캡처 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레시피를 본 이후 며칠 동안 머릿속에 연어가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연어장에 성공하고 말겠다는 의지와 호기심이 정점을 찍던 어느 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장바구니에 연어를 담고 있었다.


준비물에 샘표’701’이라고 너무 정확하게 쓰여있었기 때문에 701 간장을 손에 넣기 위해 한인마트를 몇 군데 돌았는데 다들 벌써 연어장 소문을 듣고 쓸어간 것인지(아님) 가는 곳마다 701 간장이 품절이었다. 그러던 중 샘표501 간장으로 해도 무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걸 알게 된 후 나는 미림과 와사비를 잽싸게 구입하여 연어장 만들기에 착수했다.


부제로 ‘연어 많이 사서 남김없이 맛있게 먹기’가 떠올랐던 연어장의 레시피는 총 세 단계로 구성된다. 1. 연어회 2. 연어장 3. 연어 구이. 적지 않은 양의 식재료를 구입해서 다른 방식으로 요리를 해서 즐긴다는 점이 일인 생활자인 나에게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매번 요리를 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라 한 번 할 때 많이 하는 게 당연히 이득이지만 혼자 살아보니 같은 음식을 연속해서 먹는 게 더 고역이란 걸 깨닫게 된 뒤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보통 레스토랑에서 먹는 연어 스테이크가 200g 정도 된다 하니 총 600g의 연어를 구입하였다. 회랑 연어구이는 150g, 연어장은 2회분으로 300g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내 손으로 연어를 사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생물 생선이 처음이기도 했다. 생선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생선은 손질이 부담스러워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커다랗고 차갑고 물컹거리는 연어가 쥐어졌고 연어장에 대한 의지와는 별개로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그러다 싱싱한 연어가 두 손에 들려있단 사실을 깨닫곤 서둘러 연어회를 뜨기 시작했는데 스시집에서 보던 것과는 뭔가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조금 뒤늦게였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건 회라는 음식은 재료가 싱싱하다면 어떻게 자르던 맛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연어회의 처참했던 모습을 반성하며 연어장을 만들기 전에는 연어를 어떤 식으로 잘라야 하는지 먼저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을 통해 지난번에 얼마나 대충 회를 잘랐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렇게 연어장은 지난번보다 나은 형태와 크기를 갖출 수 있었다. 사실 알맞은 비율로 간장과 미림, 설탕, 와사비를 넣는 것보다 연어 껍질을 제거하고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것이 더 힘들었다. 다행히 기대했던 대로 연어장은 입에 잘 맞았고 베트남 고추를 넣은 뜨끈한 우동을 끓여 함께 먹으며 행복한 금요일 밤을 보냈다.


마지막은 연어 스테이크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숨은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비늘 제거하기였다. 비늘은 기본적으로 제거가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유튜브의 도움을 받아 비늘을 제거했다. 비교적 작은 사이즈라 한번 방법을 깨닫고 나니 어렵지 않게 비늘을 전부 제거할 수 있었다. 연어 스테이크는 특별한 조리 방법이 필요 없었기 때문에 함께 먹으면 어떤 사이드 디쉬가 더 어울릴지에 더 초점을 맞췄다. 매쉬드 포테이토와 아스파라거스, 방울 양배추로 넉넉하게 사이드를 준비했고 이로써 연어장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몇 차례 만났지만 오랜만에 요리혼(?)을 불태울 수 있어 즐거운 경험이었고 또다시 연어가 생각날 때면 나는 아마 이 레시피가 생각날 것 같다.



빌리 아일리시

9월 중순에는 벼락치기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예매해둔 빌리 아일리시의 콘서트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휴가 가려고 회사 다니는 사람처럼 여행을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여행이 예전만큼 설레지 않는 것처럼 콘서트도 예전보단 덜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빌리 아일리시는 드물게 호기심이 생기는 아티스트였고 그렇다면 무조건 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스탠딩은 무리다 싶어 얌전히 1층 지정석으로 예매를 했다.


퇴근을 하고 오랜만에 올림픽 파크로 향하는데 가장 마지막으로 다녀온 콘서트가 언제였더라 생각해보니 2018년에 다녀온 핑크가 마지막이었다. 공교롭게도 4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보러 가니 기분이 좀 이상했고 무엇보다 코로나 이후로는 처음 가는 공연이라 조금 긴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장이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팬들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후 9시, 엄청난 함성 소리와 함께 빌리 아일리시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박진감 넘치는 <Bad Guy> 무대 연출이 너무 좋았고 그녀가 마지막 곡으로 <Happier than ever>를 부를 때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웅장해졌다. 천재라는 수식어가 너무 당연하게 어울리는 아티스트라 무대 위에서 엄청나게 카리스마를 뿜뿜하는 언니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놀라울 정도로 귀여워서 조금 놀랐다. 그녀는 멋있고 생기발랄한 이십 대였다.


콘서트 당일날 프로필을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빌리 아일리시가 01년생이란 걸 알게 되었고 공연장에 온 수많은 중고등학생 팬들을 보며 그 사실을 실감했다. 그래서 할미팬은 잠시 현타가 왔지만 정말 할머니가 되어서도, 십 대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근근이 좋아하는 가수를 업데이트하며 콘서트는 꾸준히 다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일 파티

9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다. 올해는 여러 의미(?)를 담아 셀프 생일 선물로 아이폰을 선물하기로 미리 정해두었는데 이전에 사용하던 아이폰이 고장 난 건 아니지만 5년 이상 사용했더니 용량이 부족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냥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었다. 프리 오더를 하려니 이상하게 한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문이 계속 떠서 물음표가 찍혔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재고가 풀린 건지 주말 픽업이 가능하다길래 잽싸게 예약을 마쳤다. 그동안 화이트, 블랙만 사용해왔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컬러물을 들여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폰 14 프로 딥 퍼플이 내 손안에 들어왔고 너무 오랜만에 업그레이드라 그런지 여러 기능이 매우 낯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핸드폰 바꾼 실감이 나서 좋았다. 새 폰과 함께 새 사람 할게요.



생일 당일에는 가까운 친구들과 생일 디너를 함께 했다. 원래는 스테이크 집을 가려다가 막판에 이탈리안으로 장소를 변경하였는데 시끄럽지 않고 파스타와 생선 요리 모두 만족스러운 수준이라 장소 바꾸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생일이니 모처럼 와인도 한 잔 하고 좋아하는 수박 케이크를 먹으며 생일 축하 노래를 들었다.


3년 만에 이곳으로 돌아와 예전 멤버 그대로 생파를 한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했는데 당연히 선물 받는 것도 너무 좋지만 이제는 친구들이 쓴 카드 읽는 게 제일 재밌다. 박찬호 화법으로 함께 해야 할 것들을 열거하는 부담시런 친구, 내 이름 스펠링을 틀린 친구, ‘네가 올해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생일 카드를 읽다가 나는 뽱 터지고 말았다.



생일 다음 날에는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만두 파티를 하고 왔다. 솜씨가 보통 아니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열 맞춰 가지런히 놓여있는 만두를 보고 감탄했는데 심지어 맛도 너무 좋았다. 금손이자 요리왕인 내 친구들 정말 최고야.


마음 따뜻한 친구들 덕분에 생일 주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고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었던 9월 한 달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