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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Mar 11. 2023

어떤 감정은 한 발짝 뒤늦게 찾아온다

한국 휴가를 다녀온 이야기

인천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온 건 오후 7시 30분쯤이었다. 마중 나온 엄마랑 아빠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며 서둘러 카트를 끌고 가서 포옹을 했다. 딱 일 년 만이었는데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두 분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니 그간 별 일 없이 잘 지내셨구나 싶어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침 10시 20분에 시드니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10시간을 꼬박 날아 나를 한국 땅에 데려다 놓았다. 한국을 방문하는 건 일 년에 한 번 정도다 보니 심적으론 굉장히 멀게 느껴지는데 물리적으론 이렇게 10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는 게 새삼 놀랍고 신기했다. 사실은 별로 멀지 않구나 싶어서.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공항을 빠져나오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나를 맞았다. 여름 나라에서 겨울 나라로 넘어온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제야 러기지에 챙겨 온 겨울용 아우터를 급하게 걸쳤다. 두터운 외투를 걸쳤음에도 맨다리와 코끝으로 느껴지는 온도가 무척이나 쌀쌀하게 느껴졌다. 근데 그게 싫지 않고 오히려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매운맛 겨울 공기가 반가워서 코로 깊게 숨이 들이마시자 폐 속까지 그 냉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길게 내뱉고 다시 깊게 들이마시고를 반복하며 숨 쉴 때마다 느껴지는 차디찬 공기와 눈앞에 펼쳐진 조금은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들을 마주하며 한국에 도착한 걸 실감했다. 한겨울의 해는 벌써 져버려서, 바깥은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한국으로 휴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어떤 결심이었다기 보단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에 가까웠다. 이곳으로 돌아온 지 일 년이 되었으니 그렇다면 이제는 한국을 한번 다녀올 때가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 마침 팀에서도 휴가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고 한국을 가는 김에 들러야지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무비자 여행이 막 재개되어 지금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리저리 날짜를 넣어보고 비행기 가격을 비교해 보고 회사 일정을 체크한 뒤 23년 2월 초에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출국까지는 앞으로 4개월. 평소보다 꽤 이른 티켓팅이었다.


그런데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나자 비로소 한국 휴가를 간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그리고 곧바로 찾아온 감정은 설렘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한국 휴가가 무척 가고 싶었구나라고.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랬다고. 어떤 감정은 한 발짝 뒤늦게 찾아오기도 한다는 걸 이번 한국 휴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일이 바쁠 때나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면 비행기 티켓과 예약해 둔 일본 호텔을 몰래몰래 들춰보곤 했다. 그러면 놀랍게도 기분이 나아졌다.


그렇게 한파가 한풀 꺾인 2월 초에 한국에 도착해 3주간 머물렀다. 중간에는 3박 4일로 도쿄 여행을 다녀왔고 그전에 1박 2일로 부모님과 속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휴가를 가기 전부터 리스트에 넣어두었던 영화 <퍼스트 슬램덩크>와 박소담 배우의 <유령>을 포함해 총 5번 극장을 찾았고 팟캐스트 비혼세를 통해 꿈을 키우게 된(?) 배구 직관도 3차례나 다녀왔다. 보고 싶었던 가족 혹은 친구들과는 총 10회의 만남을 가졌다. 한마디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3주를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 이제 그 이야기를 차근차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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