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 배구 V-리그가 종료되었다
지난 4월 6일 목요일에는 배구 22-23 V-리그 챔피언 결정전 흥국생명과 도로공사의 경기가 있었다. 마침 이곳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이스터 연휴이기도 해서 마음이 여유로웠는데 그날 밤 배구 경기 소식을 듣고 곧바로 라이브 중계를 켜지 않을 수 없었다.
중계를 켰을 때는 이미 3세트가 진행 중이었는데 흥국과 도공이 각각 한 세트씩을 따내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세트를 가져오느냐 아니면 내주느냐에 따라서 챔피언컵에서 한 발 가까워지느냐 아니면 한 발 멀어지느냐가 달린 중요한 시점이었다. 경기는 흥국의 홈경기장인 인천산삼월드체육관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흥국이 한 점을 낼 때마다 관중석에서 엄청난 응원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정규 리그를 끝내고(정규 리그 우승은 흥국생명이 가져갔다.) 정말 이번 시즌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아냈을 때 "흥", 공격을 하기 위해 다시 공을 띄워줄 때 "국", 그리고 공을 때릴 때 "빠샤!" 하는 구호와 "서브~ 에이스~ 옐라나!" 같은 응원소리가 퍼질 때마다 나도 함께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 2월에 한국으로 휴가를 갔을 때 배구 직관을 3번이나 다녀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국 휴가를 가서 배구 경기를 보게 되었냐면 이야기의 전말은 이렇다. 그날도 회사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즐겨 듣는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는데 그날의 팟캐스트 주제가 배구 직관 후기였다. 진행자 분은 IBK 김희진 선수의 열혈 팬이었고 최근 다녀온 직관 후기를 너무나도 신나는 목소리로 전해주셨다. 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IBK 경기가 있는 곳이라면 그게 어디든 직접 차를 몰고 가서 경기를 관람하고 오신다는 말에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라는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급기야 어떤 생각에 다다르고 마는데 그건 바로 '나도 배구 직관 보고 싶어'라는 마음. 그렇다, 어떤 덕질은 시드니에 있는 사람을 한국까지 데려가기도 한다.
검색해 보니 10 말월부터 시작된 V-리그는 4월 초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거의 다섯 달 동안 리그가 계속되는 것이니 일정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스케줄이었다. 결국 업무 부담이 적은 2월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배구의 인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아 인터넷으로 배구 티켓팅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보곤 했다. 다행히 보고 싶은 경기의 티켓팅에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한국 휴가 4일 차에 수원체육관에서 열리는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경기를 처음으로 직관하게 되었다.
직관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한편으론 (실망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직관은 유잼. 유잼 중에서도 대유잼이었다. 수원은 현건의 홈이었는데 티켓팅이 처음이었던 나는 그중에 위치가 괜찮아 보였던 현건 응원석을 덜컥 예매해 버렸고 그래서 흥국이 점수를 낼 때마다 현건 응원석에서 움찔움찔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김연경 선수가 코트에 나왔을 때, 그리고 경기를 보는 내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티브이에서 보던 슈퍼스타가 저기. 바로 저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건과의 매치는 네트 근처에서 상대팀으로 공을 슉 넘겨버리는 양효진 선수, 상대팀의 빈틈을 공략해서 날카롭게 공격을 때리는 정지윤 선수, 올스타 전에서 띵띵땅땅 댄스로 화제가 된 이다현 선수, 그리고 해설로 익숙한 황연주 선수까지 생각보다 아는 선수가 많아서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고 무엇보다 도쿄 올림픽에서 억울한 순간마다 등장했던 비디오 판독이 전광판에 띄워져 점수가 뒤집힐 때마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결과는 3-0로 흥국의 완승. 첫 직관에서 승리의 짜릿함을 맛보고 다음 경기를 기약했다.
두 번째, IBK와의 경기는 흥국생명의 홈구장인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펼쳐졌다. 홈구장의 위엄을 지하철역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개찰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카메라의 렌즈가 향한 그곳에는 킴의 전광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연경 선수의 도시에 온 것처럼 신나는 발걸음으로 대규모 인파를 따라 경기장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전좌석 매진'이라는 입간판이 우리를 맞았다. '하.. 이게 바로 배구 황제의 위엄이구나'하고 나는 조금 감탄해버리고 말았다. 비록 그날 경기는 패했지만 홈구장의 뜨거운 열기와 김연경 선수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는 경기였다.
마지막 배구 경기는 엄마와 함께 다녀왔다. 나의 휴가와 엄마의 체력, 좋아하는 선수가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시기,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대우주적 우연에 대해 열렬히 영업했고 그렇게 엄마는 6n 년 인생 처음으로 배구 경기 직관을 하게 되었다. 2월 23일에 열린 흥국생명 vs 도로공사 경기에선 흰둥이 박정아 선수를 드디어 만날 수 있었는데 도쿄 올림픽에서 클러치 박으로 불리며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따내는 놀라운 집중력과 아쉬운 순간엔 잠깐 동안 경기장에 드러누워버리는 박정아 선수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보다 재밌으셨다고 하니 뿌듯함 플러스, 경기까지 이겨서 기분 좋게 휴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다시 챔피언 결정전으로 돌아와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흥국과 도공의 경기를 이제는 집에서 작은 모니터로 보고 있자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특히 4세트에선 메가 랠리라고 불리는 엄청난 랠리가 펼쳐졌고 3세트와 4세트에서 흥국과 도공이 사이좋게 1세트씩을 가져가서 마지막 5세트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 2시간이 넘게 진행된 경기로 선수들도 지칠 대로 지쳐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정말 우승 트로피가 코앞에 있는 상황이라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는 팽팽한 경기가 5세트까지 이어졌다. 도공이 우승컵을 가져갈 확률은 0%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국생명의 승리를 점쳤지만 [V리그 최초 리버스 스윕* 우승]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날 밤 승리의 여신은 도로공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쉽게도 챔피언컵은 놓쳤지만 김연경 선수는 다음 시즌에도 흥국생명에 잔류하며 다시 한 번 통합 우승을 노려보겠다고 하니 그의 결정에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아낌없이 보내고 싶다.
"혹시 배구 좋아하시나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제 아무 망설임 없이 즐거운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라는 다소 과장된 부사를 굳이 여러 번 붙여서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고". 신나는 목소리로 생생한 직관 후기를 들려주시던 그 팟캐스트 진행자처럼 말이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도 혹시 그렇지 않으신가요..?
(*) 리버스 스윕 : 1, 2차 전을 상대팀에 내줘서 한 경기만 더 지면 패배로 끝날 수 있었지만 3, 4, 5차 경기를 모두 이겨서 역전승한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