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1박 2일 여행
제주나 부산을 가기엔 일정이 빠듯한데 그렇다고 아무 데도 안 가기엔 아쉬울 때 강원도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다. 그렇게 한국 휴가, 여행 속의 여행으로 서울에서 차로 3~4시간이면 도착하는 속초를 목적지로 정했다. 서울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얼마 안 있어 가평 휴게소에 도착하니 비로소 여행 간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점심은 춘천 명동골목에서 닭갈비를 먹기로 했다. 가는 길이라고 하기엔 조금 돌아가는 느낌이 있지만 닭갈비를 좋아하다 보니 속초/강릉 가는 길에는 가능하면 춘천에 들러 점심을 먹는 편이다. 지난번에 엄마랑 방문했던 식당에서 닭갈비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그 집을 찾았다. 닭갈비는 맛도 맛이지만 뜨거운 철판 위에서 엄청난 손놀림으로 닭갈비를 볶아주시는 직원들의 솜씨를 보는 재미가 있다. 어떤 직무든 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감탄하게 되는데 마지막에 볶음밥이 잘 눌어붙도록 얇게 착착 펴주시던 나이 지긋한 직원분을 보며 박수를 쳐드리고 싶었다.
속초로 목적지를 정하고 의외로 어려웠던 건 숙소를 정하는 일이었는데 생각보다 체인 호텔을 포함해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소를 알아보던 당시에 울산바위뷰로 불리는 소노펠레치델피노가 sns에서 화제가 되었던 때라 냉큼 검색을 해보았는데 얼마 있지 않아 마음을 접었다. 체크인은 2시인데 뷰가 좋은 방을 배정받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후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부지런할 자신이 없어 빠르게 마음을 접고 다시 숙소를 알아봤고 그렇게 발견한 곳이 청초 호수를 끼고 있는 속초 씨크루즈 호텔이었다.
후기에 나오는 것처럼 위치가 정말 좋은 숙소였다. 강원도는 이동 거리가 꽤 되더라도 어차피 차로 이동하면 되니까 숙소의 위치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속초 시내를 기점으로 하니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았고 그게 무척 편리했다.
그리하여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숙소에서 15분 거리에 있던 속초 재래시장. 항상 건너뛰던 만석 닭강정을 이번에는 기필코 먹어보겠다며 비장한 마음으로 재래시장을 찾았다. 유명한 가게들이 많아서인지 평일인데도 신기할 정도로 관광객들이 많았다. 곳곳에서 좋은 냄새와 비주얼을 뽐내는 음식에 정신이 팔려 하나씩 사다 보니 어느새 양손이 무거울 정도로 음식을 구입했고 그렇게 자연스레 저녁 메뉴가 정해졌다.
독립한 이후엔 모부랑 여행을 가면 자연스레 방을 두 개로 나눠 예약을 하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커다란 방 하나를 예약했다.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티브이 소리를 들으며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을 잔뜩 펼쳐놓고 편안하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람대로 닭강정, 튀긴 미니 크랩, 꼬마김밥, 물회, 부꾸미로 저녁을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분명 살 때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종류별로 하나씩 먹다 보면 어느새 금방 배가 불러와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뷔페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한다.
저녁을 먹었으니 산책이라도 할까 하고 지도를 살펴보다가 근처에 속초 동아서점 있단 사실을 발견했다. 서점이나 도서관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여행 중에 기회가 되면 들르는 편인데 마침 위치도 숙소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어서 엄마랑 저녁 산책 겸 다녀왔다.
작은 동네서점인 줄 알고 갔는데 생각보다 큰 사이즈에 놀라버렸고 대형서점인데 동네서점에서 볼 법한 큐레이션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동네 서점을 방문할 때면 꼭 책 한 두 권은 구입하고 나온다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종이책으로 읽고 싶었던 신형철 평론가의 『인생의 역사』를 구입하려고 방문했으나 신박한 큐레이션을 구경하다 신이 나서, OOO님의 『골목 방랑기』와 예전에 시 수업을 들으신 적이 있는 엄마에게 선물하려고 시 코너에서 진은영 시인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집어 들었다.
엄마에게 선물할 시집을 포장하려고 여쭤보니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권당 포장비용이 700원 정도로 저렴했다. 그래서 이참에 셀프 선물을 하면 좋겠다 싶어 구입한 책 3권을 전부 포장했는데 책마다 각각 어울리는 포장지와 스티커로 포장을 해 주시는 게 인상적이었다. 시집은 한국을 떠나는 날 엄마에게 드렸고 호주로 돌아와서 구입해 온 두 권의 포장을 뜯는데 과거의 나에게 선물을 받는 것 같았다.
체크아웃하고 바로 엄지네로. 이제는 서울에도 분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나 엄지네는 속초에도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무척 한산했고 소문의 꼬막 비빔밥을 주문했다. 생각보단 평범한 맛이었지만 만석 닭강정과 함께 그간의 궁금증을 해결했으니 그것으로 만족!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양양, 강릉 해변을 찍으면 어떨까 했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꽤 멀기도 했고 그렇게 하면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길어질 테니 대신 속초 바다를 구경하고 설악산을 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호주는 한국처럼 산이 많지 않아 오랜만에 본 산이 반갑기도 했고 숙소에서 본 설산이 멋졌던 게 아무래도 한몫을 했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온 설악산. 겨울형 인간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보는 눈 쌓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설악산으로 목적지를 틀긴 했지만 그렇다고 본격 산행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안개가 많이 낀 날이었지만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위쪽에 도착하니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고 으스스한 기분마저 들어 케이블카를 타고 바로 하산했다.
이대로 가긴 아쉬우니 기념품숍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목탁 두꺼비를 발견해서 한 마리 데려왔다. 작년에 좋아하는 작가님이 온라인 강연에서 이게 보기보다 소리가 좋다며 드르륵, 드르륵 하고 두꺼비 등을 긁어주시는데 정말 맑고 기분 좋은 소리가 나서 첫눈에 반해버린 바로 그 두꺼비였다. 그 후 한동안 목탁 두꺼비를 구입하려고 애썼는데 그걸 한국에서 호주로 배송하자니 조금 번거로워서 그냥 포기했는데 이렇게 운명처럼 설악산에서 목탁 두꺼비를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역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기념품숍이자 찻집이기도 해서 서울로 돌아가기 전 모부와 마지막 티타임을 가지기도 했다. 어느 가게를 가든 들어가면 무조건 뭐 하나씩은 사서 나오시는 엄마는 이 날도 설명만 들으면 만병통치약 같은, 몸 이곳저곳에 다 좋다는 차를 구입하시곤 굉장히 만족해하셨고 그렇게 기분 좋게 찻집을 나올 수 있었다.
1박 2일 여행은 당일치기 여행 보단 여행다운 기분을 느끼게 해 주지만 짧은 일정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 이 아쉬움을 동력으로 자연스레 다음 여행을 또 기약하게 된다는 게 1박 2일 여행의 묘미 아닐까.
내년 한국 휴가는 대략적인 시기를 제외하면 아직 정해진 계획이 아무것도 없지만 오랜만에 지난 겨울에 다녀온 속초 여행을 갈무리하며, 모부와 함께 또 어디든 다녀오면 좋겠구나 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