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nald Dec 06. 2018

다시, 홍콩

Hong Kong again


3년 전에 홍콩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니, 다녀왔다기보다는 들렀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머무른 시간이 고작 5시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주간의 휴가를 한국과 대만으로 쪼갰더니 도무지 홍콩까지 끼워 넣을 틈이 보이지 않았다. 휴가는 한정되어 있는데 보고 싶은 얼굴도 해야 할 일도 많았던 하지만 무엇보다 가보고 싶은 곳도 넘치던 시절이었다. 누구 말처럼 시간이 부족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그렇게 욱여넣은 홍콩을 거의 스냅샷 찍듯 두어 시간 둘러보고 부랴부랴 공항으로 돌아왔던 게 벌써 3년 전 이야기다. 후덥지근한 날씨, 몇몇 장소가 흐릿한 잔상으로 남았을 뿐이지만 머물었던 시간에 비해 꽤 여러 장의 사진이 남았다. 잠깐이었지만 내게 홍콩은 색이 예쁜 도시로 기억된다.


시드니에서 약 10시간가량의 비행 끝에 마침내 다시, 홍콩에 도착했다. 몽콕에 있는 호텔로 직행해 체크인을 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때가 되어있었다. 숙소에서 쉴까 고민하다가 간단히 국수 한 그릇 먹고 근처의 나이트 마켓을 둘러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밤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환하게 비추는 네온사인과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구경했다. 홍콩의 밤거리는 과연 그 명성만큼 화려하고 찬란했다.


이번에는 모처럼 관광을 왔으니 관광객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케이블카 같은 것도 타보기로 했다. 나름대로 다양한 나라에서 여러 종류의 케이블카를 타봤다고 자신했지만 옹핑 케이블카는 투명한 속내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케이블카가 약 25분 동안 끝도 없이 길게 이어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커다란 공항에서 모형처럼 움직이는 비행기를 구경하고 산 넘고 바다 넘었더니 저 멀리 부다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부터 날씨를 확인했더니 여행 내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이 날만은 날씨가 좋았다. 햇살이 좋았고 도심 속 산봉우리 가득한 풍경을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홍콩인지 좀 헷갈릴 지경이었다. 드높은 빌딩들 때문에 시야에서 하늘이 차지하는 부분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반대로 녹색 풍경의 비중이 제법 늘었다.


사진의 풍경을 보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있다. 모로코 페스의 테너리, 쿠바, 그리고 홍콩의 익청빌딩이 그랬다. 패딩턴의 한 서점에서 건축/인테리어 관련 책들을 훑어보다가 무심코 집어 든 사진집에서 처음 익청빌딩을 만났다. 사진 속의 빌딩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다섯 시간 동안 잠깐 봤던 홍콩의 이미지를 가장 집약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건물의 이름이 익청빌딩이란 걸 알게 된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낮과 밤, 각각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익청빌딩을 찾았다. 외국어로 몬스터 빌딩이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한 집과 옆집이, 한 층과 다른 층이 과연 기괴할 정도로 촘촘하게 밀집해있었다. 분명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이었지만 흥미로운 외관만큼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해가 떨어지자 서둘러 귀가하는 주민들이 각각의 건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고 마치 커다란 기계에 숨을 불어넣듯 건물에는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잿빛 얼굴의 홍콩을 만나기도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미세먼지일까 희뿌연 하늘에 대관람차의 AIA 광고만이 오롯하게 빛났다. 친구에게 사진을 전송했더니 '헐..'이라는 허망한 답신이 돌아왔다. 회색 하늘 때문에 선착장 너머 침사추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날씨라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해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빗방울까지 떨어져 IFC몰을 서성이다가 침차이키의 완탕면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저녁에는 피크트램을 타고 홍콩 시내의 야경을 구경하러 올라갔더니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장면을 나는 칠레 산티아고에서도 본 적이 있지. 여행 일정이 여유롭다면 기상예보를 보고 이 날과 저 날의 계획을 바꿔치기하고 뿌듯해했을 테지만 선택지가 없는 단기 여행자는 회색 하늘을 오롯이 마주하고 들이치는 비를 피해 IFC몰을 둘러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칠레 산티아고는 1박 2일, 홍콩은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피크트램 타고 올라가서 본 야경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본 홍콩 상하이 은행 빌딩의 조명이 예뻤던 게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TAFE에서 일주일에 3일, 하루 3시간씩 포토그라피 강좌를 들었다.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른 사진을 수십 장씩 찍는 날들이 이어졌다. 찍은 결과물을 두고 강사들의 설명을 들을 때면 이해가 될 것 같다가도 또 돌아서면 고개를 갸우뚱하기 일쑤였다. 새로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배어버린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사실 더 어려웠다.

 

오랜 버릇을 고친다는 명목 하에 혹은 연습의 일환으로 홍콩에서는 셔터를 부지런히 눌렀다. 하지만 작은 LCD 화면 위로 새하얀 사진이 로딩되는 게 부지기수였고 작게 보니깐 괜찮았는데 확대해서 보니 사실은 아니었던, 정체불명의 사진들이 노트북 화면 속에 등장하곤 했다. 3박 4일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가장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지우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이제 내게 홍콩은 색이 예쁜 동시에 카메라가 바쁜 도시로 기억될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