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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Dec 24. 2018

집으로 떠나는 여행

Home away from home

지난번 집 밖으로 안 나가기 프로젝트에 성공한 우리는 본격적으로 집으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숙소가 곧 여행지인 여행.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나라를 꺼내어 그중에 도시를 정하고 둘러볼 것들을 꼽는 마음으로 지역을 선정하고 에어비앤비 지도 위로 떠오른 사진들을 하나씩 찬찬히 넘겨본다. 마음에 들면 주저 없이 하트를 클릭하고 긴가민가 싶은 곳도 일단은 위시 리스트에 저장. 그렇게 지역명으로 이름 지어진 리스트에는 마일리지처럼 숙소가 차곡차곡 쌓인다. 옵션이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면 좀 전에 인심 좋게 준 하트를 슬쩍 거두기도 하고 반대로 손에 쥔 카드가 너무 없다 싶을 때는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도를 재탐색한다. 마침내 최종 후보가 3개 정도로 좁혀지면 꼼꼼히 숙소 정보를 읽어보고 어매니티와 같은 디테일을 다시 체크한다. 그리고 결정.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또 다른 집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한 사람의 취향이 집대성된 집 구경하기를 좋아한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면 항상 그 친구를 꼭 닮은 집을 구경하곤 했다. 친구의 집은 평소 그 혹은 그녀가 즐겨 입던 스타일의 거대한 확장판 같았고 공간 구석구석에 놓인 자그마한 소품들은 친구의 섬세한 취향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아이템이었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지는 공간을 구석구석 구경하다 선반 위에 놓인 손바닥보다 작은 피규어에서 친구가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호주에 살면서 그리고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서 재밌었던 점은 각각의 집들이 구조에서 인테리어까지 무엇하나 같은 집이 없다는 점이었다.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면적과 3,000만이 채 안 되는 인구로 인해 아직까지 주택의 비중이 높았고 그 마저도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커다랗게 지어져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건물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고 있던 유닛을 잠시 떠나 오두막 같은 스튜디오, 아지트를 연상시키는 복층 구조의 집, 운동장 같은 뒤뜰이 있는 집에 짐을 풀 때면 자연스레 여행자의 마음이 되곤 했다. 호텔이 주는 편리함은 없었지만 개성 있는 공간이 주는 즐거움은 그 이상으로 컸다. 정리가 잘 된 키친에서 깔끔한 성격이, 스타일리쉬한 침실에서 감각적인 취향이 엿보일 때면 사진으로 본 호스트의 모습이 희미하게 그려지곤 했다.


칠레를 여행할 때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와 같은 시를 쓴 작업실과 서재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원을 중심으로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된 시인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장소는 기다란 식탁이 놓인 다이닝 룸과 동네의 아늑한 바를 옮겨놓은 듯한 별채였다. 칠레의 존경받는 시인 네루다는 디에고 리베라와 같은 당대의 아티스트들과 활발히 교류했고 그의 집에서 수시로 친목을 도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공간에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집은 무엇보다 사람, 그리고 사람을 빼고는 도무지 이야기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많은 이들의 흔적과 자취가 이제는 주인 없는 그 공간을 아직까지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롱위켄이면 짧게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 골드 코스트부터 길게는 6시간 정도가 걸리는 퍼스를 가기 위해 일찌감치 티켓을 끊어놓는 것으로 모자라 황금 같은 주말을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비행기로 2시간이 걸리는 호바트,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저비스 베이를 광인처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5년이 지나 올해 10월 노동절 연휴에 다녀온 곳은 시드니에서 30분 거리의 디 와이. 예전만큼 새로운 장소를 찾고 특별한 일정을 채우는데 열심히이지 않지만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즐거운 연휴를 보낼 자신이 있는 우리가 나는 좋다. 미래를 사는 여자, 세림 언니는 70세에 다 같이 모여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함께 볼 거라며 손에서 핸드폰을 놓을 줄 모른다. 남다른 노후 준비가 아닐 수 없다. 가라오케 동영상을 남기고 여러 가지 의상을 입고 많은 사진을 찍었다. 70세에 우리 집에 모여 집으로 떠난 이 날의 여행 사진 볼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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