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나무에게 말을 거는 남자

by 강 산

책방에서 일한지, 혹은 매일같이 방문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이연은 여전히 책 제목을 한눈에 외우지 못했고, 손님에게 건넬 맞춤 책을 고를 안목도 없었다.

하지만, 책방 할아버지는 그런 걸 단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여기 책들만 서가에 다시 꽂아줘요. 연 씨.”


나무 상자 하나.

반납된 책들, 혹은 다시 돌아온 책들, 아니면 아직 누군가에게 가지 못한 책들.


이연은 서가 앞에 앉아 먼지를 털고, 낡은 커버를 살피며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장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일은 이상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좋았다.

마치 무언가를 고르고 있는 게 아니라, 고르게 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책들이 조용히 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눈에 익지 않은 책 한 권이 시선을 붙잡았다.

표지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중앙에는 짧은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무에게 말을 거는 남자』

― 매일 같은 자리에 앉는 이의 기록 ―


“이건…?”


연은 책을 펼쳤다.

처음 몇 장은 글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페이지, 한 문장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숲 느티나무 아래, 같은 시간, 같은 말.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스쳤다.

책방 안인데도 말이다.

아무런 음악도 없는데, 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 순간, 책방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책… 오래 기다렸던 사람에게 가야 해요.”


연은 책을 덮었다.

자신이 그 사람인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왠지 오늘은 이 책을 들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책을 품에 안고, 책방을 나섰다.


요즘 이연의 점심은 늘 같았다.

편의점 도시락, 냉장 진열대에서 고른 가장 싼 것.

그리고 반복되는 고민.

‘다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나. 언제까지나 책방에 머무를 수는 없겠지…’


서울숲.

그곳이라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도 왠지 그곳을 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발걸음이 서울숲으로 향했다.

서울숲 입구를 지나자, 뺨을 스치는 공기가 달라졌다.

서울 도심의 건조한 바람과는 다른, 초록의 냄새가 섞인 바람.

이연은 걷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숨을 고르고 싶었다.

서둘지 않아도 되는 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서히 식어가는 햇빛 아래,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견디고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가족들, 유모차를 밀며 걷는 엄마들,

혼자 앉아 책을 읽거나 이어폰을 낀 채 고개를 숙인 사람들.

도시는 여전히 분주했지만, 이 숲만은 조금 다르게 숨 쉬고 있었다.


이연도 벤치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


오늘도 잘 있었어요? 나는 별일 없었어요. 다만, 도시락이 좀 짜네요.


이연은 피식 웃었다.

‘뭐야, 이건 일기야? 나무한테 말 거는 사람의 독백?’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짧은 문장이, 오늘 하루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이연은 매일 점심마다 서울숲을 찾았다.

그리고 책 속 다음 장을 한 장씩 넘겨갔다.

며칠 뒤.

책의 세 번째 장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오늘은 사람이 많네요. 그래도 난 당신이 있어서 괜찮아요. 누가 듣지 않아도, 당신은 다 들어주니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이연의 시선이 멈췄다.


눈앞의 벤치.

책에 묘사된 그대로, 도시락을 꺼낸 한 남자가 있었다.

혼잣말을 하는 듯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느티나무의 껍질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연은 책장을 덮었다.


‘…설마?’


처음으로, 책과 현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 균열은 다음 날 더 확실히 벌어졌다.


왜냐하면—

그녀가 전날 읽었던 바로 그 문장이, 오늘 그 남자의 입에서 또렷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도시락이 좀 짜네요.”


같은 시간, 같은 자리, 같은 말.


이연은 확신했다.

책 속의 문장이, 지금 이 현실의 일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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