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래도 사랑하시죠?

뮤지컬이 밥 먹여주냐고요? 덕분에 굶어는 봤어요

by 강 산

글쎄, 뮤지컬을 언제부터 사랑했는지는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누군가는 유치원 졸업식에서 받은 장미꽃을 기억할 때 나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본 호두까기 인형의 뿔소라 머리를 한 배우가 기억난다는 정도?


조금 더 또렷한 기억이라면, 청소년 할인을 받으면 4만 원 언저리로 내려가던 뮤지컬 티켓을 사기 위해, 엄마가 점심 사먹으라고 준 만 원을 꼬깃꼬깃 모았던 중학생 시절의 어느 날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며칠을 점심시간에 츄파춥스 하나로 버티며, 배를 쥐어짜듯 1시간을 견뎠다. 친구들은 매점에서 컵떡볶이를 먹고 계단에 앉아 수다를 떨었고, 나는 츄파춥스를 입에 문 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혼자 주문처럼 되뇌었다. “난 지금 모차르트를 위해 굶고 있어.” 뮤지컬을 위한 허기는 이상하리만치 달콤했다.


그리고 그렇게 온몸이 어지러울 만큼 배가 고픈 어느 날, 몰래 극장에 입성해 어두운 객석에 앉아 마주한 3시간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비싼 티켓을 끊어주는 어른도 없었고, 같이 가줄 친구도 없었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사랑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죽음과 사랑 사이 어디쯤 혼란스러운 마음을 노래로, 조명으로, 앙상블과 펼치는 연기로 ...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들을 보며, 참 많이도 울었다. 평소엔 좀처럼 울지 않던 내가 뮤지컬만 보면 그렇게 울어댔다. 울고 나면 기분이 가뿐해졌고, 마음은 말갛게 씻겨 나갔다. 결국 사랑이란 그런 건가 보다. 내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찾게 되고, 만나면 이유도 없이 마음이 벅차오르는 그런 것.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열리는 아동용 뮤지컬 공연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기억은 딱히 없지만 엄마 말로는 거의 주말 정기권 회원처럼 매주 출석했다고. 다른 아이들은 어두운 극장이 무서워 울거나, 배우가 등장하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산산조각 내곤 했지만, 나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지켰고, 커튼콜에는 박수까지 힘껏 쳤다고 한다. 관람 태도로만 보면 그때 이미 ‘관객상’ 수상감이었다.


어쩌면 그게 내 덕질의 기원일지도 모르겠다. ‘덕질’이라는 말은커녕 ‘뮤지컬’이라는 단어도 채 알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무대가 내려오고 배우들이 손을 흔드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심장은 분명히 두근거렸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첫사랑은 이름도 모르는 그 뿔소라 머리 배우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은 뮤지컬의 아름다운 면모를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대 위 피날레의 환상, 커튼콜의 눈물, 오케스트라의 파도 같은 연주를 찬양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뮤지컬의 단점을 낱낱이 살펴보려 한다. 애정이 듬뿍 담긴, 아주 편파적인 시선에서 말이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친구에게 투덜대며 떠들 듯—얄궂고 귀여운 방식으로.


아마 진짜 단점, 이를테면 가격 같은 건 굳이 다루지 않을지도 모른다. 뮤지컬이 얼마나 비싼지, 그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나만 해도 매번 예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깐 멈칫하며 ‘이 돈이면 치킨을 몇 마리…’ 같은 계산을 해보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티켓 가격이 내려갈 일도 없고, 내가 이 책에서 호소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대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뮤지컬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뮤지컬만의 은밀하고도 기묘한 매력들이다. 예를 들면, 한계가 명확한 연출, ‘고전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은 먼지 풀풀 나는 캐릭터 설정과 올드한 스토리라인. 그리고—무엇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가버려 놓치면 다시는 못 보는, 평생 마음 한구석에 박혀버리는 장면들.


이 은밀함이야말로, 내가 뮤지컬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뮤지컬은 늘 반짝이는 정면만 보여주지 않는다. 종종 뒤틀리고, 낡고, 때로는 허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예매 창을 열게 되는 그 마음, 그게 사랑이지,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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