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던 배우가 모두의 배우가 되었을 때

그들의 성장 속에 나의 청춘이 겹쳐 있다

by 강 산
2016년, 스위니 토드

1. 나의 첫 ‘토비’ — 2016년 여름의 기록


2016년 7월 24일.

<스위니 토드>의 막이 오르고, 나는 객석에서 처음으로 ‘토비’라는 인물을 만났다.

그해 여름, 무대 위의 토비는 김성철이었다.

그는 아직 데뷔 2년 차의 신인이었고, 무대 위에서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존재를 증명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날의 나는, 감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 알던 관객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쓴 후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토비!!!!! 정말 귀여웠다!!!!! 나중에는 주연 둘이서 대화하는 씬에도 토비를 쳐다보고 있었다ㅋㅋㅋㅋㅋ
‘어!! 저도 파이 만들어도 돼요??’ 이렇게 말하는데 내적으론 ‘그래, 우리 토비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런 느낌ㅋㅋㅋ
뮤지컬 버전의 토비가 영화보다 훨씬 어리고 순수했다. 정말 러빗 부인밖에 모르는 애기였다.”


문장은 들떠 있고, 느낌표가 너무 많고, ‘ㅋㅋㅋ’가 가득했다.

지금의 내가 읽으면 조금 부끄럽지만,

그건 그 시절의 나로선 할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표현이었다.

나는 토비라는 인물을 사랑했고, 그를 연기한 김성철이라는 배우에게도 마음을 빼앗겼다.

“이 배우의 행보가 기대된다”고, 그렇게 적어두었다.


그 한 문장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나도 언젠가 나의 길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그것이 ‘함께 성장한다는 감각’의 시작이었다.



2. 김성철, 그리고 나의 시간


그 후로 몇 해가 흘렀다.

그는 <팬레터>, <마리 앙투아네트>, <데스노트>를 거쳐 무대의 중심에 섰고,

2021년엔 드라마 <그 해 우리는>으로 다시 만났다.

TV 속 그는 훨씬 단단해진 얼굴로, 여전히 따뜻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2016년의 토비를 떠올렸다.

그때의 무대, 그 눈빛, 그 떨림이 겹쳐지며

이상하게 나의 시간까지 함께 흐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대에서, 드라마 속에서, 그는 자신만의 서사를 쌓아갔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삶을 쌓아갔다.

그가 배우로 성장하는 만큼,

나는 관객으로, 그리고 한 사람으로 조금씩 자라났다.

그의 커리어를 따라가는 일은,

결국 내 청춘의 궤적을 되짚는 일이 되어 있었다.


그가 대극장 주연으로 무대에 설 때,

나는 나의 일터에서, 또 다른 형태의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가 대사로 감정을 전달할 때,

나는 문장으로 나의 마음을 기록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그러나 같은 속도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3. 그리고, 또 한 사람 — 홍나현

2019년, 헬렌앤미

2018년, 나는 또 다른 이름에 마음을 빼앗겼다.

뮤지컬 <앤>의 홍나현.

그녀는 주근깨투성이의 앤 셜리였고,

무대 위에서 빛을 뿜어내는 작은 별 같았다.


그녀를 처음 본 날,

나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인스타그램에 감상을 올렸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퇴근길’을 갔다.

작은 DSLR을 들고, 덜컥거리는 손으로 초점을 맞추며 기다렸다.

조명 아래 등장한 그녀는 무대보다 더 작고,

그래서 더 귀여웠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에서 그녀의 별명은 ‘콩알’이 되었다.


그녀는 내게 처음으로 ‘배우를 기다리는 관객의 설렘’을 알려준 사람이다.

손에 쥔 프로그램북은 땀에 젖어 있었고,

막상 얼굴을 마주하자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겨우 말했다.

“오늘 공연 정말 좋았어요.”

그녀가 밝게 웃으며 “감사해요”라고 답했을 때,

그 말 한마디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환하게 비췄다.


그 후로 2019년 <헬렌앤미>에서도 그녀를 다시 보러 갔다.

매번 다른 캐릭터였지만,

그녀 안에는 변하지 않는 투명함이 있었다.

작은 체구 속에 무대 전체를 밝히는 힘이 있었고,

그 무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위로받았다.


그리고 2025년,

그녀는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에 출연했다.

TV 속의 그녀를 보며 나는 다시금 그 DSLR을 떠올렸다.

그때 그 퇴근길의 떨림이,

이제는 성숙한 존경과 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4. 함께 성장한다는 것


김성철, 홍나현.

그들은 내가 어릴 적 만난 ‘갓 데뷔한 배우’들이었다.

무대 위에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던 그 시절의 그들을,

나는 객석에서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들은 대극장의 주연이자 브라운관의 배우가 되어 있었다.


그들의 성장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뿌듯하다.

그건 단순히 “좋아하던 배우가 잘 돼서”가 아니다.

그들의 시간 안에 나의 시간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도전을 이어가던 그 시절,

나도 내 삶의 무대에서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성공은 내게,

“그래, 우리 모두 아직 자라고 있어”라는 믿음을 주었다.



5.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공연장을 찾는다


좋아하는 배우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나의 성장 또한 함께 기록되는 일이다.

그들의 대사, 그들의 숨, 그들의 조명 속에서

나는 내 시간을 본다.


그들이 새로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나도 다시 나의 무대를 정비한다.

그들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나의 자리에서 조금 더 빛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뮤지컬은 늘 ‘함께 자라는 예술’이다.

배우가 매 공연마다 자신을 새로이 발견하듯,

관객도 그들을 통해 자기 안의 시간을 발견한다.

이전 10화뮤지컬에 빠져서 이것까지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