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감정 인식, 수용, 그리고 표현이 가져오는 대화의 변화
“아이가 우는데, 저도 모르게 답답해서 더 언성을 높여 버렸어요.”
“아이의 떼쓰는 모습에 속에서 뭔가 확 끓어오르더라구요.”
여러 방송프로그램들과 전문가 선생님들의 강조로 '아이의 마음 읽어주기'는 이제 그냥 부모에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꼭 지녀야할 어떤 하나의 '의무'가 된 듯 하다.
이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마음, 그리고 감정을 읽어주고 이해해주는게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부모로서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주고자 애쓰지만, 정작 스스로의 감정이 먼저 요동칠 때가 있다. 그럴 땐 우리 몸에서 또 입에서 위와 같은 반응이 먼저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출발점은 부모가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상담자들이 교육과 훈련을 받을 때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자각하는 일 (emotional awareness) 이다. 내담자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수용하고, 내담자와 참만남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와 깊이 있는 소통을 하려면, 특히 감정을 다루는 소통의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한 인식하는 능력과 이를 키우는 훈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가 유발하는 정서적 자극 (특히 화, 짜증과 같은 부정적 정서의 유발) 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바로 이 정서인식에 달려있다.
즉, 감정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가 이해해야 할 신호들
우리가 불편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건 우리의 정서조절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자녀를 양육하다보면 다양한 부정적 정서를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들은 뭔가 다루거나, 통제하거나, 조절하려 하기 전에 우리가 이해해야할 신호들이다.
✔ 분노는 내 욕구 및 기대가 좌절되었다는 신호고,
✔ 불안은 내 안의 예측 불가능성과 마주한 상태이며,
✔ 무기력은 하던 일을 잠시 중지하고 회복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마음의 알람이다.
이 감정들을 외면하거나 억누르기보다는,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첫걸음이다.
감정 인식-수용의 단계
그렇다면 감정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어떤 단계들을 거치게 될까.
1. 몸의 반응을 먼저 인식하기
감정은 늘 신체의 언어로 먼저 표현된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손바닥에 땀이 나거나, 머리가 어지럽거나, 목소리가 떨리거나, 숨이 가빠지거나, 등등. 몸이 먼저 보내는 감정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게 첫번째다. 즉,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신체 감각을 세밀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연습해보기: 가슴, 손, 배, 이마 등 특정 부위를 스캔하듯 느껴보기, 감정을 느끼는 순간, 몸이 어떤 느낌인지 5초 멈추고 집중해 보기.
2.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 (labeling) 은 정서 인식 명확성을 높여주는, 정서조절의 핵심적인 일이다.
“아, 지금 나는 조급함을 느끼는 중이야.”
"난 지금 불안을 느끼고 있어."
'조급함' '불안‘ 짜증’ '화' 등 감정에 이름이 붙는 순간, 그 감정은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물결이 아닌, 내가 바라볼 수 있는 객체가 된다. 이 과정은 감정을 나 자신과 약간 분리된 상태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며, 이는 곧 정서 조절의 시작이다.
3. 감정에 머물러 보기
많은 사람들이 불쾌한 감정을 느끼 때 회피(avoidance)나 억제(suppression)와 같은 방어기제의 스위치를 켠다. 방어기제는 말 그대로 일시적으로는 우리를 압도적인 정서로부터 방어, 보호해준다. 하지만 장기간 동안 감정이 회피되고 억제될 때는 이러한 감정들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우리를 심리적 탈진으로 이끌 수 있다.
감정에 머문다는 것은 판단과 통제가 아닌 수용 (Acceptance) 의 태도를 말하며, 이는 마음챙김과도 연결된다. 지금 현재 (here-and-now)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부정적인 그 감정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돕는다는 건 흥미로운 역설이다.
핵심 질문 전환:
“왜 이런 감정을 느끼지?” : 자기비판적이며 판단적.
“이 감정은 내게 무엇을 알려주며 어떤 신호를 보내는 걸까?”: 의미 탐색과 자기이해 중심이며 수용적.
이는 감정의 ‘메시지’를 읽는 행위이며, 감정의 진정한 기능을 존중하는 태도다.
4.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감정은 인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표현과 공유의 과정을 통해 나와 통합된다. 특히 부모의 경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식은 모델링 효과를 통해 아이에게 건강한 정서표현의 방식을 가르치고 전달한다. 이는 아이의 정서조절 능력과 관계 형성에 긍정적으로 장기적 영향을 미친다.
“엄마는 지금 화가 나. 네가 계속해서 외출 준비를 미뤘을 때 마음이 다급해졌거든.”
이처럼 감정을 솔직하게, 그러나 책임 있게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를 향한 비난이 아닌 나의 감정을 중심으로 말하는 ‘I-message’는 아이와의 신뢰를 지켜주고 관계를 오히려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
자녀와의 대화는 ‘내 감정 다루기’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우리는 자녀와 감정적 대척점에 서고 만다. 예를 들어, 아이가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하고 소리를 치고 만다. 하지만 그 찰나, 스스로에게 조용히 되묻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뭐지?”
“이 감정은 어떤 내 기대나 가치에서 비롯된 걸까?”
어쩌면, 아니 아마도, 하루 종일 쌓인 피로 속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해’와 ‘협조’를 기대했고, 그 기대가 어긋나면서 좌절과 분노가 올라온 것일지도 모른다.
“또 애한테 소리만 쳤네...” 하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치밀어오른 이 화는,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하고 그 순간, 아니면 나중에라도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작은 멈춤과 질문들이 쌓이다 보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수용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향한 따뜻한 이해의 눈길이 깊어질수록, 아이의 감정 역시 훨씬 더 부드럽고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말처럼 쉽진 않다.
하지만 오늘 하루,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좀 더 다정한 부모, 말이 통하는 부모가 되는 길을 느리지만 꾸준히, 묵묵하게 걸어나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