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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Sep 14. 2021

하루의 몫

오랜만에 글을 쓴다. 느낌상 아주 오랜만이다 싶었는데 역시 그렇다.  로그인을 해 보니 지난 360일 간 새로운 글이 없었음을 일러주는 알림이 떠 있다.  그렇구나, 이 공간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지가 일 년도 넘었구나. 언제나 그랬듯 지난 일 년 또한 삶이 꽉꽉 들어찬 시간이었다.  코로나가 이어지는 가운데 온라인으로 상담과 슈퍼비전을 계속했고, 아이가 오래 동안 유치원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육아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박사학위논문을 꾸역꾸역 써나갔고 지난여름 학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지난한 잡어플라이의 시간을 가졌고 봄 무렵에 어쨌든 오퍼를 받아 미국 어느 대학에서 조교수 일을 시작하게 됐다.  아내 역시 학업을 무사히 마쳤고 그 사이 둘째를 임신하여 겨울이 오기 전 또 하나의 생명을 맞이하게 된다. 


바빴다면 바빴던 날들.  시간적으로 많은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실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훨씬 정확하다.  학위를 마무리하고 교수직에 지원하는 과정은 내게 실로 피 말리는 일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여러 변화와 그 여파는 대학 고용시장에, 그리고 그와 직결된 내 삶에 불안정성을 더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 마음은 유연함을 잃고 경직된다.  내게는 지난 1년 간의 구직 활동이 그랬다.  최소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싶었고, 지난 수년 동안 지속해온 학업에도 좋은 결실을 맺고 싶었다.  이런 나의 바람들을 담고 있던 구직활동은 이내 '원함'을 넘어서 '반드시 이루어야만 하는 과업'이 되었다.  이루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잡 오퍼를 받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기쁨'과 '성취감'보다는 '안도감'에 가까웠다. 정말 다행이다, 싶은 그런 느낌. 




구직활동이 내게 남긴 교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오늘 '하루의 몫'을 살아낸다는 개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위를 마무리하고 구직활동을 하면서부터는 불확실한 미래에 수도 없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올해 학위를 마무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학위는 어떻게 마친다 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한국으로 급작스럽게 돌아가야 한다면?  그럼 나와 내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렇듯 구직활동을 하며 이 경우 저 경우를 따져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에 알맞게 플랜 B, C 를 세우지는 못했다. 나란 인간은 그렇게 충분히 치밀하고 똑부러진 사람은 아니었다. 


불확실함으로 가득했던 나의 구직활동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깜깜한 터널을 정처 없이 걷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 터널의 끝에 도달하리라 생각하며 그저 그날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뿐이었다.  꾸역꾸역 논문을 쓰고, 새로운 잡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서를 준비해 제출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면 세상엔 그저 아이와 나만 있는 것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는 일들, 그뿐이었다.  그마저도 내겐 결코 쉽지 않았다.  힘겹게 내딛는 하루하루의 걸음이 날 성장시키고 있는 것인지, 그저 제자리걸음일 뿐인지는 터널 안에 있을 때는 알기 어렵다.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기도문인 예수의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대목이 있다.  일용할 양식, 즉 단 하루치의 양식.  예수는 일 년 치의 양식과 그 양식을 저장할 집, 창고를 구하는 것이 아닌, 하루치의 양식을 구할 것을 가르쳤다.  그것이 육신의 양식이든 혹은 마음과 영의 양식이든 '하루치'의 양식임에는 변함이 없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미래를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 있던 내게 이 대목은 위안이 되었다.  오늘 하루의 몫만을 고민하고 살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필요도 없고, 내일 반드시 오늘보다 나은 내가 될 필요도 없겠구나.  하루하루가 쌓여서 내 삶 전체가 빚어진다는 건 늘 하던 생각이었으나, 오로지 '오늘'의 하루들이 중요함을 다시금 절절하게 느끼고 깨달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연구자, 더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을까.  아내에게는 더 좋은 남편이 되고 아이에게는 좀 더 나은 양육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늘 확답할 수 없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오늘 하루'라면 아주 조금은 더 자신감이 솟는다.  오늘 하루만 좀 더 내 일에 매진하는 것, 오늘 하루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 딱 오늘 하루만 좀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내는 것.  하루의 몫에 충실한 삶, 결국 지금-여기 (here-and-now) 를 살아내는 삶.  내게는 이것만으로 충분히 도전적이면서도 시도해봄직한 삶이 아닐까 싶다. 



퇴근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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