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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11. 2021


'밸런스'라는 생존 비결

직장생활도 잘하고 싶고 좋은 남편이자 아빠도 되고 싶은 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또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나는 '밸런스'라고 답할 것이다.  그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풀자면, 삶의 여러 역할 가운데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밸런스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무한하다면 밸런스를 고민할 일이 없다.  게임에서 하듯 모든 능력치와 경험치를 최대한으로 쌓고 늘리면 될 일이다.


밸런스를 맞춘다는 말은 종종 모든 것들을 '균등'하게 맞추거나 배분한다는 의미로 오해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밸런스의 의미는 모든 일과 역할에 동일한 시간과 에너지를 분배한다기보다는 '최적'의 상태로 나아가는 일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론 마치 제품을 구매할 때에 가성비를 따지듯이, 나의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바탕으로 각 영역에서 비록 최고는 아닐지언정 가장 만족스러운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밸런스를 고민하게 되는 영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밸런스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부분은 '직업적 성취' 대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가끔은 이 두 가지 영역이 양립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직업에서의 성취와 가정에서의 역할 모두를 충실하고 훌륭하게 해내는 이들의 사례를 보면 존경심이 들 따름이다.  출퇴근이 불분명한 내 직업의 특성상 '주말에 할 일 조금만 해 놔야지'라고 생각했다가 막상 딸과 즐거운 (?) 하루를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되어 일은 무슨 티비나 보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가 다반사다.


육아를 하며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밸런스는 뭘까.  내게는 '수용' 대 '경계선을 알려주기'가 아닐까 한다.  흔히 '허용'과 '통제'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 두 가지는 육아뿐 아니라 모든 관계의 본질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애착이론에서는 아이가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수용을 경험하지 못하고 사랑의 갈구를 반복적으로 거절당하게 되면 회피형 애착을 발달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반면에 훈육을 통해 적절한 통제를 받지 못한다면 아이는 자기조절능력을 발달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상담교육자로서의 정체성에서도 이 밸런스는 중요하다.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근거기반실무 (evidence-based practice; EBP) 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곤 한다.  상담과 상담교육의 실제 (practice) 를 겪으며 나오는 고민 없이 연구의 결과 (evidence) 만을 좇는다면 자칫 공허한 연구가 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근거 (evidence) 에 기반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맛대로만 상담 실무 (practice) 를 하고자 한다면 그 또한 윤리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담실제와 연구의 밸런스에 더불어, 상담교육자는 강의를 통한 교육, 슈퍼비전, 그리고 지역사회 및 학술단체 안에서 봉사도 이어나가야 하니 더욱 밸런스가 중요해진다.




문제는 이 밸런스라는 것이 백종원의 레시피처럼 정량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어떤 것이 최적의 밸런스인지는 개개인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밸런스라는 말은 그 어느 쪽에도 최대치에 다다를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어느 영역에서도 성에 찰 정도의 수준에 이르긴 어렵다는 뜻이다.  즉, 직업적 성취와 가정에서의 역할의 밸런스를 찾아 나선다는 일은 양 쪽 모두 일정 부분을 포기해야 함을 뜻한다.  나의 경우,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인이 될 수도 없고,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아빠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적의 밸런스 상태라고 할지라도 이는 결코 정지되어 있는 균형점을 뜻하지 않는다.  밸런스는 마치 시계추처럼 한쪽으로 쏠렸다가 또 다른 한쪽으로 쏠림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직업적 성취에 추가 쏠리는 순간 가정에서 최대한의 포텐셜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가정에서의 역할들에 추가 쏠릴 때에는 직업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우리는 밸런스를 좇는 내내 부족함과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나, 삶이 지속되는 한 나의 추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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