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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12. 2021

'파워', 어떻게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관계에 내재한 힘의 불균형을 대하는 자세

삶이 흘러가는 동안 생긴 변화 중 하나는 내게 주어지는 힘, 즉 파워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초능력과 같은 슈퍼파워 이야기가 아니다.  이 파워라는 건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오면서 여러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내게 주어져 온 것들이다.  이를테면 상담자, 슈퍼바이저, 교수자 등의 역할이 그렇다.  예를 들어, 상담자가 아무리 공감과 경청의 자세로 상담에 임한다고 할지라도 내담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파워를 지니는 쪽에 속하게 된다.  내담자들은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추구하게 되기 때문에 정보의 양과 질, 그리고 관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약자의 위치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내담자 또는 환자와 어떠한 로맨틱한 관계도 맺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위력' 때문이다. 


대단한 위력의 차이가 아닐지라도 이런 상대적인 힘의 차이는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피하다.  힘의 불균형은 상담자-내담자 관계뿐 아니라 수퍼바이저-수퍼바이지, 지도교수-지도학생, 교수자-학생 등의 관계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힘을 잘못 사용하게 되는 사례는 일상에서 무수히 많다.  심각하게는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 등이 있다.  유명 정치인, 종교지도자, 예술계의 입지적 인물 등의 지위를 이용한 일탈과 범죄는 뉴스의 단골 소재다.  이런 심각한 경우를 차치하고서라도 지도교수가 지도학생에게 뱉는 언어폭력, 직장 상사가 하급자에게 시키는 개인적인 심부름 등 힘의 차이는 일상 속에서 매일같이 확인되고 반복된다.




다양한 역할에서 주어지는 힘을 잘못 사용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지닌 힘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다.  역할 자체가 주는 힘의 불균형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은 공명정대하다고 믿거나 그냥 평등한 관계일 뿐이라고 믿는 것이다.  어느 이에겐 스스로가 힘을 지닌 강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거북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자가 아무리 평등한 입장에서 내담자를 대한다고 해도, 팀장님이 팀원들과 아무리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의 역할구도는 바뀌지 않으며, 팀장님이 결국은 팀원들의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는 점 역시 바뀌지 않는다.  개인의 성격 또는 인품이 아니라 결국 그 역할의 차이 때문에 결국 힘의 불균형은 반드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힘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취해버리는 경우다.  즉, 스스로가 지닌 위력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힘이 오남용 되는 것을 방관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힘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다.  '현실치료'를 발달시킨 글래써 박사는 Power를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적 욕구 중 하나로 규정하였다.  힘은 즐거움을 주고, 만족을 주고, 심지어는 가치감을 느끼게끔 한다.  그래서 힘의 추구와 오남용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중독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의 내가 힘의 오남용 할 위험에 빠질만한 이유는 첫 번째 이유에 가깝다.  학생에서 교수자로, 수퍼바이지에서 수퍼바이저로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며 아직 내가 어떤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름대로는 관계에 있어서 수평성을 지향해 왔기 때문에 '나 정도면 후배들이나 학생들에게도 수평적이고 공명정대하게 대하는 편이지'라는 생각을 쉽게 지니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내가 명시적으로, 또 암묵적으로 쥐고 있는 힘을 과연 잘 사용하고 있는지, 오남용하고 있진 않는지 자꾸 스스로 질문해보게 되는 것이다.  




감사한 것은 유학생활을 통해 한국 수직적 위계와는 상이한 수평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었으며 롤모델이라 할만한 분께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박사과정 때 나의 지도교수님은 이러한 힘의 차이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이었다.  지도교수님은 내게 필요 이상의 압력을 가하거나 조언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도 경력, 지식, 전문성, 네트워크 등 모든 면에서 나를 압도하는 분이셨다.  하지만 지도교수님은 주로 먼저 내게 액션을 취하시기보다는, 내가 다가가면 기꺼이 도움을 내어 주시는 그런 분이었다.  물론 종종 지도교수님이 내게 먼저 다가오시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대부분은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편하게 알려주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도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곤 내가 도움을 청하면 당신의 지식과 조언과 자원을 아낌없이 주셨다. 


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의 예에서 볼 수 있듯, 힘의 불균형을 대하는 가장 좋은 자세는 그 힘을 아예 묻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힘의 불균형을 무시하고 모든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없다.  언급하였듯이 힘의 불균형은 어떤 관계에서는 없앨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내가 가진, 그리고 앞으로 가지게 될 여러 역할들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려는 허상을 좇거나 그 힘을 땅에 묻기보다는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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