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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Jul 15. 2019

디지털 홍수 속에서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

뽀로로는 부모의 아군일까 적일까



뽀로로는 아군일까 적일까


"뽀로로 더 볼래! 으앙~"

"어머 얘 좀 봐. 벌써 한 시간이나 봤잖아. 오늘은 이제 그만!"


이런 실랑이 없이 아이를 키우는, 또는 키웠던 집이 있을까? 그 정도야 다 다르겠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각종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콘텐츠에 아이를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뭐 사실 생각해 보면 꼭 최근의 현상만도 아니다. 나도 어릴 적 썬가드며 케이캅스며 드래곤볼이며 수많은 만화들을 보며 자랐다. 장르에도 국한받지 않아서 카드캡터 체리나 세일러문 같은 만화도 재밌게 봤던 것 같다. 일요일 아침마다 틀어주었던 디즈니만화동산을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렸음은 말해 무엇하랴. 다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이들이 영상 콘텐츠를 접하기가 훨씬 용이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언제, 얼마나, 어떻게 이런 디지털 콘텐츠를 보여주어야 할지 고민을 하곤 한다. 


그렇다면 뽀로로는, 콩순이는, 타요는,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유튜브 영상들과 디지털 콘텐츠들은 이 세상 부모들의 공공의 적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때로는 이보다 든든한 아군이 없다. 뽀로로는 엄마나 아빠가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다. 아이가 이앓이가 너무 심해 자지러지게 울 때 초보 부모였던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약을 먹여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세상 끝날 것처럼 우는 아이를 보며 '너무 심하게 울면 경련이 온다고 하던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면 뽀로로를 보여줬다. 그리고 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그제야 잠시 한 숨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뽀로로복음 1장 1절. 노는 게 제일 좋았더라...


우리 부부의 고민, 대응, 그리고 또다시 고민


우리 부부 역시 이를 놓고 고민하는 수많은 양육자 중 한 커플이다. 우리도 나름대로 디지털기기에 아이를 너무 과도하게 노출시키지 않고자 어느 정도 신경을 써 왔다. 우선 우리 집은 티비가 없다. 아이 때문에 없앤 건 아니고, 결혼할 때 티비를 사지 않았고 계속해 유지해 왔다. 아이의 루틴은 이렇다. 평일에는 어차피 9시에서 보통 4-5시까지는 데이케어센터에 있다 오고, 보통 밤 10시 반에서 11시 즈음에 잔다. 집에 있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짧다 보니 우리가 열심히 놀아주면 아예 안 보는 날도 있고, 아이가 원할 경우 30분 정도 볼 때도 있다. 가끔 아내와 내가 보는 방송 프로그램을 같이 볼 때도 있는데 그러다 보면 아이의 영상 시청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간혹 있다.


밖에서 가족이 다 함께 식사를 할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게 된다. 아이의 식사하는 타이밍이 우리와 맞지 않을 때도 있고, 운 좋게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해도 우리 집 아이의 경우 아이가 아기의자에서 집중해서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10분 남짓이다. 의자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큰 소리를 내는 아기를 아예 레스토랑 밖으로 데리고 나가 놀 때도 있지만, 그냥 식사에 집중하고 싶을 때는 그 자리에서 영상을 틀어 준다. 물론 훈육을 하고 싶지만 다른 식사하시는 분들께 피해를 끼칠 순 없는 노릇이다. 그 외에도 지인들과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그 시간을 좀 누리고자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방치할 때도 있다. 고민은 하지만 큰 스트레스는 없고, 나름대로의 대응을 하지만 역시 고민은 된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디지털 콘텐츠가 부모에 앞서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킬 때


아이는 자라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이때 적당한 성공경험과 적당한 실패 경험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욕구를 너무 손쉽게 충족시키는 아이는 조급해지고 실패와 좌절을 다루고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실패 경험만을 반복하는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부모에게, 더 나아가 이 세상에 대해 불신만을 키워가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근 육아에 있어서 이 성공과 실패 경험의 밸런스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라는 생각을 한다. 울음을 그치지 않고, 심심해하고, 외로워 보인다는 이유로 디지털 콘텐츠를 즉각적으로 제공해주는 게 반복된다면. 다시 말해서, 가족 안에서 충족되어야 할 기본적인 욕구들, 즉 안전감, 재미, 관계 안에서의 충만감, 격려와 지지에서 오는 유능감, 정서적 안정 등을 양육자로부터 충족받지 못한 채 디지털기기와 콘텐츠로 쫓기듯 내몰린다면.


이런 경우에는, 부모와 가족에 앞서 디지털 콘텐츠가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셈이 된다. 영상매체의 짜릿한 자극에는 대가가 있다. 아이들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으로 공감과 위로를 얻고 문제상황을 딛고 헤쳐나가며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아이의 울음과 짜증은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녹록지 않은 고난과 위기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하루에 얼마 이상은 영상을 보여줘선 안된다'는 식의 '정답'과도 같은 말을 모든 경우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위와 같은 함의점을 제시하는 신뢰도 높은 연구는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기질과 성격, 부모의 성격, 육아환경이 모두 다른데 천편일률적인 답이 어디 있겠나 싶다. 예를 들어, 매일 한 시간 동안 영상을 본다고 해도 과정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가 정말 그 콘텐츠를 열렬히 좋아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한 시간을 본 뒤 부모가 충분히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는 것과, 부모가 아이의 이런저런 요구에 응하기가 귀찮고 떼를 쓰는 아이를 잠재우려고 옛다 봐라, 식으로 보여주며 방치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굳이 일반적인 해결책을 찾자면 내가 꼽는 첫 번째는 언제나처럼 '일관성'이다. 아이의 기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규칙과 루틴은 필요하다. 목욕하고 나서 좋아하는 콘텐츠 에피소드 한 편 보기, 그리고 아이와 함께 정한 시간이나 양이 끝나면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쓴다고 해도 칼같이 끝내기, 양육자 간에 영상 시청에 대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등. 돌봄 제공자로서 부모의 정서상태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집안일, 또는 다른 여러 일들로 머리 끝까지 스트레스로 차 있다면, 그런데도 지금 떼를 쓰고 칭얼대는 이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라면, 그래서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려 해도 짜증만 나고 화만 치밀게 뻔하다면? 이 때는 오히려 이런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는 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좀 충전을 한 뒤 아이와 퀄리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육아를 위해 디지털 콘텐츠를 잘 '활용'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결론: 나도 잘 모르겠다


디지털 콘텐츠가 범람하는 만큼 그에 대한 조언과 육아팁도 차고 넘치는 요즈음. 나는 상담자로서 '내담자가 내담자 문제의 가장 전문가다'라는 로저리안의 신념을 지니고 있는데, 육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의 기질과 양육환경이 다른만큼, 전문가들의 조언을 취합하여 결국 본인의 상황에 가장 알맞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육아전문가가 아닌 양육자여야 한다. 디지털 콘텐츠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또는 사용하냐 마느냐의 질문보다는, 어떻게 해야 잘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아이와 상황에 가장 알맞은 방편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냅다 스마트폰을 던져주는 것보다 부모가 직접 아이와 상호작용하고 놀아주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다는 걸 모르는 부모는 없다. 현실적으로 그러기 어려울 때가 너무 잦을 뿐. 아이가 제공받아야 할 안전하고 따뜻한 품을, 부모라는 울타리에 앞서 다른 어떤 것에도 내어주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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