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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Jul 12. 2019

날 닮은 너, 를 보는 아빠의 마음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래서 미안해"


어쩌면 아들들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아기 시절에 대한 정보가 그닥 많지 않다. 어떤 성격이었는지, 밤에 잠은 잘 잤는지, 언제 옹알이를 시작했는지, 어떤 버릇이 있었는지 등. 그에 비해 아내는  자신의 아기 시절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아마 내 경우에는 부모님께서 많이 말씀해주시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크게 관심이 없어서 듣고도 그냥 흘려들은 탓에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로부터 수도 없이 들은 덕에 알고 있는 아이 시절의 내 모습이 하나 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내게 지금껏 수십 번은 얘기하셨음직한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레퍼토리 중 하나다. 며느리에게도 이미 수 차례나 얘기하셔서 아내도 잘 알고 있는 그 내용인즉슨, 어릴 때 내가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노래를 많이 불렀다는 것이다. 기존의 동요를 많이 부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냥 내가 하고픈 말에 음을 붙여서 노래하듯이 말했다는 것. 배고프다고 할 때, 밥을 달라고 할 때, 아니면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에도. 




우리 집 딸도 요새 들어 동요 몇 곡을 익혀서 즐겨 부르곤 한다. 생일 축하 노래, 곰 세 마리, 정글숲, 아기 상어, 나비야, 정도가 되겠다. 그런데 요 녀석도 최근 들어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노랫말처럼 음을 붙여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나를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웃으면서도 혀를 내둘렀다. 


"아니, 하다 하다 이런 것도 닮는 거?"

"그니까. 신기하네."


어디 이뿐일까. 내 아이 아니랄까 봐 아이는 나를 참 많이도 닮았다. 역부족인 일을 자기가 하겠다며 끙끙대는 모습과, 이내 금방 포기하고 아내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쉽게 짜증을 내고 토라지는 모습과, 그만큼이나 쉽게 풀어져 어느새 시시덕거리고 있는 모습에서도. '무서워'를 연신 내뱉으며 겁쟁이처럼 굴다가도 그만 호기심을 못 참고 세상 모든 것들을 건드리며 다니는 모습까지도. 나를 닮은 이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여러 상념들이 어스름한 마음에 내려앉는다. 




임창정 님의 노래 중에 '날 닮은 너'라는 노래가 있다. 아마 내가 초딩 5학년 즈음에 나온 노래로 기억돼서 찾아보니 정확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만큼 좋아했던 노래였다. 노래방에서도 많이 불렀다. 최근 옛날 노래들을 이것저것 찾아 듣다가 흘러 흘러 이 노래의 영상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게 웬걸. '자신을 닮은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으로 노래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서도 어릴 적 그 당시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원래는 아마도 연인을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일 테다. 내가 이미 겪은, 너무나도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의 전철을 밟는 상대를 바라보며, 그럼에도 나는 네 손을 놓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감당해 나가겠다는 약속과 다짐의 노래. 하지만 그날따라 내게는 '날 닮아 참 모난 부분이 많은 너, 어렸던 나에게 상처를 준 모진 세상을 똑같이 살아가야 할 너의 손을 절대 놓지 않을게. 그 곁에 함께 서서 너와 거센 비바람을 함께 맞을게.'라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들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노래를 들으며 괜스레 눈물이 찔끔 났다. (역시 유튜브는 위험..) 아래는 마음에 와 닿았던 가사 몇 구절.


날 닮은 너를 부족한 너를 그저 바라보기엔 
후회로 물든 내 지난날이 너무 많이 다쳤어
(중략)
나 역시 너 같았어 너처럼 어두웠어  
니가 지내온 또 다른 시간도 더 있을 고통도 난 감당할거야
(중략)
날 이렇게 뿌리친대도 너의 손을 놓진 않을거야
너의 손을 놓친 않을거야


비교적 최근에 부른 '김정은의 초콜릿'에서의 '날 닮은 너' 무대. '비교적' 최근 맞다.



   

그러고 보니 요새 아내와 애청하는 JTBC '슈퍼밴드'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상에 젖어든 바 있다. 몇 주 전에 김준협 팀에서 이찬솔 보컬이 부른 'Still fighting it'이라는 노래. 이 곡은 아빠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남자는 한 마리의 새처럼 자유로운 존재였지만 아이를 안아든 순간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그 전에는 새라는 게 그저 자유롭게 날아가기만 하면 되는 존재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그 날갯짓이 실은 자유로운 비행이 아니라 아기새를 먹이기 위한 분주하고 무거운 움직임을 알아 버렸다. 어른이 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리고 남자는 어린 아들을 보며 그 역시 이 고통과 맞서 싸워야 함을 떠올린다. 그리곤 아래와 같은 읇조림으로 곡은 끝을 맺는다. 


You're so much like me I'm sorry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래서 미안해


노래의 가사처럼 부모가 된다는 건 어쩌면 자유를 포기하고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일일지 모른다. 이는 자기 존재의 특별함을 의심치 않았던 아이가, 자신이 수많은 부모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평범한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혹독한 세상에 맞서 홀로 힘겹게 싸우는 걸 넘어서 이젠 그 세상으로부터 누군가를 지켜주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켜낸 아이가 또다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훌쩍 날아갈 때에 홀연히 보내주어야 하는 존재, 부모. 이 모든 나의 과거와 아이의 미래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칠 때, '날 닮은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넌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그래서 미안해.


심사를 하던 윤종신 님도 아들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아니, 이 문장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를 계속 닮아간다. 나 역시 지금까지도 부모님을 닮은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해 나가며 새삼스레 놀라기가 일쑤다. 때로는 닮고 싶지 않았던 부분조차 닮아가는 걸 보며 흠칫, 놀라기도 한다. 


아이도 자라며 나를 닮은 자기 자신의 모습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겠지. 이제는 나와 아내 역시, 우리가 우리 안의 부모의 모습들을 발견해 왔듯이 이미 우리와 많이 닮아 있는 아이가 계속해서 우리를 닮아가는 걸 보아야 할 차례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 맘에 들지 않는 내 모습들도, 나를 닮아 있기에 아이에게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 아이의 손을 꼬옥 잡아줄 수 있기를. 내가 지내온 맑았고 또 흐렸던 날들을 어쩌면 나와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아이에게, 나도 같은 삶을 헤쳐왔고 여전히 헤쳐나가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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