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덩 Mar 10. 2019

가족과 떨어져 지낸 세 달의 시간

아내 그리고 딸에 대한 그리움을 대하는 나의 방식

작년 연말, 아내와 아이가 한국에 갔다. 그렇게 가족과 떨어져 지낸 지도 어느덧 두 달이 훌쩍 넘어 세 달을 향해가고 있다. 시간이 빠르다. 아니, 느린가. 잘 모르겠다. 


"혼자서 지낼만해? 힘들지? 아내랑 아기 엄청 보고 싶겠다."

"뭐, 적당히 잘 지내요. 당연히 그립고 보고 싶지만 아기가 없다 보니 몸은 좀 편하기도 해서요."


지난 두어 달, 혼자 지내는 동안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잘 지낸다고 답하며 웃음을 지었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좀 더 여유로워진 시간 동안 그간 잘하지 못했던 운동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도 봤다. 시간이 쪼달려 잘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종종 만났고, 연구에도 더 많은 시간을 쓰면서 말 그대로 잘 지냈다. 그러나 어쩌면, 사실 이는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다독이는 말이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있다가 혼자 있게 된 데에서 오는 그리움, 외로움, 또 허전함을 견뎌내며 지내야 할 날들이 아직은 남아 있음을 알기에. 




사진으로, 그리고 페이스톡으로 마주하는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아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종종 경이로움을 느낀다. 딸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워 이젠 온 집구석을 달음박질할 만큼 크는 동안 난 어느 부분에서 성장을 이루었나를 돌이키며 반성이 될 정도랄까. 한국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얘기도 많이 할 수 있어서인지 말도 많이 늘었다. 23개월 즈음이 된 지금, 이제는 거의 모든 말을 이해하고, 또 어른들이 하는 말을 곧잘 따라 한다. 단어와 단어를 연결해서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도 늘었다.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혼자 바지와 기저귀를 내리고 응가를 했다는데. 하나뿐인 딸의 이 모든 도전과 성취에 참여하지 못함이 조금은 아쉽고 섭섭하다.


아내 역시 나와 떨어져 지내는 기간 동안 많은 변화들을 겪어내고 있다. 딸을 잠시 친정 부모님께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지인들과도 시간을 보내고, 체력을 키우고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도 한다. 다이어트는 아내의 꽤나 오랜 숙원이었다. 임신해 있던 시간 불었던 몸이 아직 임신 전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내주는 사진들을 보니 확실히 얼굴이 갸름해진 것 같다. 적어도 건강을 돌보고 있다는 면에서 잘된 일이다. 그리고 육아를 하는 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서 지원했던 석사 프로그램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이로써 오는 가을 학기부터는 온 가족이 학교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다. 나는 박사과정생으로, 아내는 석사과정생으로, 딸은 학교 부설 데이케어센터의 tiny turtle로. 캠퍼스 커플로 시작했던 우리가 가정을 이루었고, 결혼하고 만 4년이 지난 이제는 '캠퍼스 패밀리'가 될 거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아내와 딸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그리움, 혼자 지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딸의 성장을 곁에서 보고 응원해주지 못하는 데에 대한 적당한 아쉬움, 때가 되면 다시 재회를 할 테고 이제 다음 학기부터는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감. 이런 슴슴한 감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나는 그럭저럭 지내오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괜찮았는데. 문득 지난날의 사진들을 들춰보다가 그리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움은 특별한 무언가에서 오는 것이 아니란 걸. 소소한 삶의 장면과 순간들, 그 순간들이 상기시키는 기억의 편린들, 그 편린들의 뾰족한 끝부분이 그리움에 닿으면, 마치 풍선이 가시밭에 내려앉듯 펑, 하고 터져버린다. 종종 같이 쇼핑하던 잡화점을 혼자 둘러보며 어느 색깔의 그릇을 살지 고르며 함께 재잘거리던 순간을 떠올리다가, 홀로 샤워를 하던 중 한 켠에 놓인 아기 샴푸에 시선이 멈추어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던 순간을 회상하다가, 혼자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갔다가 함께 게임을 하고 놀던 체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견고해 보이던 둑을 너무나 쉽게 터뜨리고는 갑작스레 물밀듯 밀려오는 것.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다.




실은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피해 오고 있었음을. 우리는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 직면하고 제대로 다루기보다는 어물쩍저물쩍 넘기려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의 대부 프로이트는 이를 '방어기제'라는 이름으로 이론화했다. 방어기제란 스트레스 또는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욕구 또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속이고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말한다. 욕구를 억압하거나 못 본 척 부인하기도 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하며,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정 반대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프로이트는 정신적인 병리를 설명하기 위해 방어기제의 개념을 제안했지만,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 꼭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우리가 스스로의 방어기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면 방어기제는 '활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지난 얼마 간의 시간 동안 아내와 친밀하고 깊은 대화를 무의식적으로 회피해 왔다. 가족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사진첩을 들추기보다는 그냥 넷플릭스를 봤다. 그득한 그리움을 마주하고는 눈물 똑똑 흘리며 청승 떨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아내의 서운함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나의 생각을 차분하게 설명해주었고 아내는 여느 때처럼 이해해 주었다. 그리곤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지금껏 지내올 수 있었다. '방어'기제가 때로는 '보호'기제가 된다고 믿는 이유다. 




가족과 재회하기까지는 이제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마음이 좀 놓이는 기분이 든다. 


오늘 저녁 다시 그리움이 밀려온다면 맥주 한 캔과 땅콩 한 접시를 가져다 놓으리. 

그러고는 사진첩을 뒤적이며 청승맞게 그리움에 한 번쯤 흠뻑 적셔들어도 괜찮을 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