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사과정 네 번째 학기도 이전의 학기들처럼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나란 녀석은 늘 이렇다. 허둥지둥, 우왕좌왕, 좌충우돌. 그러다 보니 개강을 맞은 지는 고작 열흘 정도가 되었을 뿐인데 벌써 하루살이 모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몇 주 전부터는 사정이 생겨 아내 및 아기와 떨어져 지내고 있다. 텅 빈 집 구석구석이 아내와 아이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지만, 확실히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많아져서 학기 중 살아남기에는 다행이기도 하다.
이번에 수강하는 수업 중 하나는 우리 학과가 아닌 발달심리학 프로그램의 수업으로, 유아부터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및 정서적 발달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된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도에 발달심리학 수업을 들었었는데. 이제는 21개월 된 딸아이의 아빠가 되어 발달심리 수업을 듣자니 감회가 새롭다. 청소년기야 원래 내가 관심이 많은 시기이고, 영유아기의 발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이제 양육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좀 더 열의와 흥미가 생긴다. 그래서인지 수업 자료를 읽으면서도 21개월 된 딸 생각이 참 많이 났다.
특히 이번 주 리딩에는 훈육에 관련된 내용이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내용인즉슨, 기질적으로 어느 정도 겁도 있고 두려워할 줄도 아는 아이들의 경우는 과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부드럽게 훈육해줄 때 도덕성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기질의 아이들에게는 적당량의 규칙과 훈육이 부모-자녀 관계를 해치지도 않는다고. 적당한 규율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셈이다. 반면 겁이 없는 (fearless) 아이들은 접근 방법이 좀 달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 꼬맹이는 기질적으로 겁이 정말 없는 편이다. 막말로 정말 겁대, 상실, 휴, 여하튼 아주 어려서부터 얼마나 겁이 없었는지에 대해 얘기하자면 신이 나서 한참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소파를 잡고 올라가 거기서 점프를 하려 하질 않나,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신체부위 가리지 않고 고루 들이박고 다녔다. 아 참, 겨우 걷기 시작할 무렵 이 아기는 무려 아기침대인 크립에서 뛰어내린 전과(?)도 있다. (수면교육 중이었는데 울다가 크립을 탈출했다. 대체 어떻게 뛰어내릴 수 있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 이 일로 충격을 받아 크립은 집 밖에 내놨고 수면교육도 상당 부분 포기해야 했다)
책에서 말하기를, 이런 기질의 아이에게는 잘못했을 때 규율과 훈육을 들이미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한다. 차라리 부모가 기대하는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따뜻하고 수용적으로 반응해 주는 게 도덕적 발달에도, 부모-자녀 간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기질적으로 겁이 없는 아이에게 반복적으로 규율을 강요하고 훈육을 할 경우 아이는 내적인 동기는 전혀 없이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그저 행동하는 시늉만 낼 수도 있고, 오히려 더 고집을 부리게 될 수도 있다.
근데 사실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다. 기질적으로 겁이 많은 아이들은 훈육과 규율을 들이밀어야 할 일이 상대적으로 더 적다. 규율과 훈육이 필요한 쪽은 아무래도 겁 없는 아이들이다. 동네방네 뛰어다니고 돌발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는 훈육과 규율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아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기도 하고, 부모 입장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아이로 인해 무척 좌절스러울 수도 있다, 는 바로 내 얘기 (...)
사실 나나 아내는 아이를 마구잡이로 통제하는 편은 아니다. 특히 나는 워낙 방임형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양식보다는 자연산으로, 사육장보다는 뛰놀 수 있는 목장에서 커왔다고 할까. 어쭙잖지만 나의 육아관도 그러하기에 아이의 안전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이렇다 할 통제나 간섭을 삼가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새벽 한 시까지 잠을 안 자고 놀려고만 할 때 (아니, 네가 왜 대학원생인 나보다 늦게 자는 건데), 간단한 지시를 절대 따르지 않을 때 (너 이제 알아듣는 거 다 알거든), 친구들이나 엄마 아빠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질 때 등의 순간들에는 정말 훈육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훈육은 당분간 하지 않아야겠다'라고 마음먹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루는 진짜 너무 화가 나고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작정하고 언성을 높였다. 맴매의 맛을 보여주마! 눈도 무섭게 부라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았다. 어린 아기에게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 요 녀석은 내 눈만 피할 뿐 딱히 겁먹은 표정도 아녔다. 무서운 표정으로 양 어깨를 꽉 잡고 호통을 쳐도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하더니, 풀어주자마자 금세 다시 웃으며 거실로 달려 나간다. 그때의 그 절망감이란.. 이게 실패하는 훈육방법이구나 싶었다. 효과는 없고 반복되면 관계만 해치게 될 그런 훈육.
그러고보면 겁 없이 사방팔방 돌아다니고 좌충우돌하는 아이의 모습은 나를 꼭 빼닮았다. 성인이 되고 삼십대가 된 지금의 나도 여전히 그렇지만, 지금보다 어릴 때는 훨씬 더했다. 나의 어머니는 십대-이십대 초반 시절의 나더러 럭비공같다는 얘길 수 차례 하셨었다. 당최 어디로 튈지를 모르겠다며.
참 많이 부족한 아빠인 나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의 기질을 좀 더 존중해 보려고 한다. 아이의 안전과 직결되는 행동에는 확실히 주의를 주되, 훈육을 하고 싶어지는 다른 많은 경우에는 무시로 일관하는 게 나을 테다. 나는 우리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통제와 훈육보다는 사랑과 신뢰를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한다고 믿는다. 요 꼬맹이, 암만 겁이 없어도 아기는 아기니까. 너의 세상이자 우주인 우리가 너를 더 수용하고, 더 많은 사랑을 주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