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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Aug 23. 2019

불완전한 인간으로 살다 삶을 마칠 예정입니다

나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학부생일 때 국내외에서 석사나 박사를 하고 계시던 선배들을 만날 일이 왕왕 있곤 했다. 막연하게 대학원을 진로로 생각하던 그때의 나에게 그 선배들이 어찌나 커 보였는지. 나도 언젠가 먼 미래에 박사생 정도 되면 하고 싶은 연구도 척척 하고, 저런 멋진 프로젝트도 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감에 부풀었지 싶다. 하지만 지금 내 현실은 참 녹록지 않다. 사실 이년 전에 처음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의 쭈굴함보다는 자신감과 포부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요새는 처음으로 '이거 내가 잘 마치고 학위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논문 출판의 길은 험하고 전문지식을 갖추는 건 요원해 보인다. '내가 최소한 요거 하나는 잘 알지'라고 말할만한 것조차 아직 없어 시무룩한 요즈음이다. 


최근까지도 종종 듣는 얘기 중 하나는 내가 부모의 역할을 맡고 있음에 대한 찬탄이다. 주로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았거나 육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또래 및 동생들로부터 '아이를 키운다니 대단하다', '부모라니 정말 어른이다' 등의 말을 듣곤 하는 것이다. 리스펙을 전하는 의도를 알기에 고마운 얘기이나, 사실 마음에서 드는 생각은 '그렇게 으른 아닌데..'가 먼저다. 이해는 된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부모가 되며 나도 성장했고 또 계속 성장해 나가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여기서의 성장은 인격과 역량의 성장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과 한계가 계속해서 발견되어서 할 수 없이 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성장이다. 


교회에서는 서리집사 직분을 받은지도 벌써 일 년이 되었다. 교회의 공천위원회로부터 처음에 집사 추천이 왔을 때는 내가 내 수준을 알기에 정중히 거절을 드렸었다. 그럼에도 재차 추천을 받았을 때 마지못해 승낙했던 이유는 단연코 스스로가 그럴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이를 기점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외부에서 볼 때에 나는 성가대도 하고, 교회의 제직으로서 대표기도도 하고, 주일엔 나름 꼬박꼬박 예배도 나오니 괜찮은 신앙생활을 하나 보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사 직분을 받고도 나의 신앙은 도약을 이뤄내지 못했고, 신앙의 성숙과 성장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어쩌면 이 모든 기대와 좌절은 직선적인 진보와 성장을 강조하는 서구적 관점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즉, 삶이란 모름지기 계속 나아져야 하는 것이며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계속해서 꾸준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실제로 삶의 모양은 직선보다는 원을 더 닮은 것 같다. 꾸준히 목표점을 향해 나아간다기보다는 순환적인 패턴이 반복된다. 예를 들자면,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고, 성장을 다짐하고, 일보 앞으로 나아가고, 권태나 좌절을 경험하고, 정체하거나 뒤로 고꾸라지고, 다시 새로운 자극을 받는 패턴을 반복하며 삶은 이어지는 것이다. 

성장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즉,  직선적 관점과 순환적 관점


물론 순환적 패턴을 겪으면서도 전진과 후퇴를 오가며 꾸준히 일진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삶에서 목표를 세우고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나가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의 그림처럼 순환적인 패턴을 반복하는 가운데 조금씩 직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아래의 그래프처럼 더디지만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두 관점의 결합체. 순환을 반복하며 조금씩 직선적 성장을 이루어간다.


문제는 '느낌'이 확 온다는 거다. 무슨 느낌인고 하니, 평생 그렇게 아등바등 성장을 향해 나아가지만 내가 이루고 싶은 수준의 성장을 이루지는 못하리라는 느낌. 이건 숙명적인 직감이다. 내가 후에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게 되어도, 대학생 자녀의 학부형이 되어도, 심지어는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손주를 보는 나이가 되어도 말이다. 그때에도 지금 그렇듯이 나는 내가 바라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불완전한 인간일 것이며, 그럼에도 죽는 그 날까지 성장을 위해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기를 멈추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내 삶이 마칠 때까지 순환적+직선적 성장을 한다고 해도 내가 되고 싶었던 수준의 인격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에 모 장관 후보자가 가족들의 일로 인해 혹독한 검증과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그가 과거에 반대 진영에 했던 날카로운 지적과 비판들이 본인에게 그대로 적용되며 그 어려움이 배가되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가 내세운 높은 도덕적 기준에 더 발목이 잡힌 셈이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그는 본인의 테두리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몰랐거나, 본인이 청문회를 감당해야 하는 자리에 오를지를 몰랐거나, 둘 중 하나는 분명 모르지 않았을까. 나는 전자라고 믿고 싶다. 그는 아마도 본인이 강조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충분히 잘 살아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내가 남은 생을 사는 동안 그런 청문회를 감당해야 할 일은 아마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와 상관없이,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잘 알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래서 속 시원하게 여기에라도 기록을 해 두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한참 부족한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다 삶을 마칠 예정입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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