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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Jul 23. 2019

지도교수님과의 미팅을 마치고

"넌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란다"

엊그제 지도교수님에게 미팅을 요청하며 보냈던 나의 메일에 오늘 아침 답이 왔다. 조금 급한 감이 있지만 오늘 오후에 시간이 된다고. 오전에 부랴부랴 회의 준비를 하고, 리틀쓰촨 (우리 동네 중국집. 맛집이다) 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전쟁에 나가는 병사처럼 성큼성큼 캠퍼스를 향해 올랐다.


'지도교수님과의 미팅'. 이 글을 읽는 이가 대학원생이라면 너무나 쉽게 나의 감정에 이입할만한 워딩이다. 지도교수님과의 회의는 언제나 적정 수준의 긴장과 부담을 불러일으킨다. 하물며 오늘의 미팅은 논문자격시험과 박사논문을 비롯하여 앞으로 나의 진로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부분들을 얘기하기 위해 가는 자리였다. 잘못한 것 하나 없어도 괜스레 침이 꼴깍 넘어가는 어젠다들.




나는 내 지도교수님들을 마음 깊이 좋아하고 존경한다. 물론 지도교수-지도학생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지도교수님은 객관적으로 정말 좋은 분들이다. 이쯤에서 뭔가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 나는 무려 두 분의 지도교수님을 두고 있다.


지도교수가 두 명일 경우 무척 힘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둘 간의 은근한 알력 다툼이 있을 수도 있고, 한 사안에 대해 다른 메시지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다행히 내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내 지도교수님 두 분은 커플이시고 같은 연구주제를 함께 오래 탐구해 오셨다. 두 지도교수님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근엄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할 수 있겠다. 남교수님은 그리 근엄하진 않지만 그래도 직설적으로 통찰력 있는 피드백을 주는 방식으로 나의 성장을 위해 일해주신다. 여교수님은 한없는 따뜻함과 신뢰로 나를 북돋으시는 편이다. 




오늘은 지도교수님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여교수님에게는 쓴소리 비슷한 것도 들은 적 없기에 물론 남교수님으로부터였다. 악의 없는, 아니 실은 정말 나를 위한 선의의 팩폭이었다. 의도와 상관없이 팩폭은 폭력인지라 두들겨 맞으며 좀 아프긴 했다. 내 인격을 건드리거나 하는 그런 류의 쓴소리도 전혀 아니었지만 그동안 (종종 알맹이 없는) 달달한 미국식 칭찬에 길들여진 내 귀가 받아들이기엔 좀 쌉싸름해했던, 그런 이야기들.


다른 분야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몸담은 곳은 명색이 '상담' 전공 아니겠나. 이제껏 이 남자 지도교수님과 회의, 대화, 슈퍼비전 등을 하다가 눈물을 떨군 적이 몇 번 있다. 지금 세어보니 세 번 정도 된다. 오늘을 그 네 번째로 만들고 싶지 않아 스멀스멀 나오려는 촉촉한 기운을 꾸욱- 참았다.




You are important to me.


쉽게 쉽게 갈 수도 있지만 정말로 내가 이 곳에서 성장하길 바란다며 미팅 말미에 해 주신 말. 넌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란다. 그래서 네가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너의 그 부분을 계속해 얘기하는 거란다. 그게 내가 너를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대략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의 성장을 위해 애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 누군가가 지도교수님이라면 더욱이. 

빈말을 거의 않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 지도교수님이 살포시 놓은 따스함이, 이 밤, 나의 마음 한 구석을 조용히 맴돈다. 


'상담자 성장일기'라는 매거진 제목에 걸맞은, 오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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