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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Jul 19. 2019

'감동하는 삶'을 살고 싶다

비행기에서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 풍경 하나에도

미국행 비행기에서 빌었던 소원


항공권을 예약할 때면 늘 해야 하는 선택이 있다. 창가에 앉을 것인가 복도에 앉을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나는 창가 자리를 선택한다. 바로 고개를 돌려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특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스무 살, 첫 미국 여행. 학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떠나는 필드트립이었다. 그 전의 나는 비행기를 탄 일이라곤 국내선 두 세번 남짓이었다. 또 해외여행이라곤 배 타고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간 게 전부였던 스무 살의 나. 첫 미국행 여행의 설렘이 눈에 덧입혀져서였을까. 창밖을 통해 보는 밖의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멀어져가는 도시의 풍경도, 끝없이 펼쳐진 구름의 망망대해도. 마음에 감동이 일었다. 


비행기 안의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나처럼 창 밖을 바라보는 사람, 면세품 책자를 뒤적이는 사람, 목베개에 머릴 맡기고 일찌감치 잠을 청하는 사람. 나는 그렇게 창가에 앉아 창 밖 풍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비행기를 백 번 더 타도 이렇게 창 밖을 보며 감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묻거든 난 준비된 몇 가지 대답이 있다. '신앙인으로서 순간마다 나를 부인하는 삶', '죽는 날까지 성장하는 삶', '' 그러나 좀 더 내 욕심을 좇아 답한다면 앞서 나의 소원처럼 나는 '감동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답하겠다. 삶의 작은 순간마다 감동하는 삶, 감동의 역치가 낮은 사람. 충만하게 삶을 느끼고 누리는 삶. 슬플 때 목놓아 울고, 기쁠 때 즐거이 춤추는 사람. 


감동 感動  [ 감ː동 ]  명사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본 감동의 정의는 위와 같다. 즉 '감동하는 삶'을 풀어서 설명한다면 '많은 것을 섬세하게 느끼어 내는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창공에서 바라본 하늘의 아름다움 외에도 우리 삶에는 감동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나 쉽게 '처음이 주는 감동'에 적응해 버리는 우리의 이 빌어먹을 적응력 때문에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연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도,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뗄 때의 감동도. 




감동하는 삶은 어떻게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가


감동하는 삶은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삶이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들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낸다. 하지만 감동하는 삶은 삶의 다른 장면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충만하게 살아내는 삶이다. 붙잡지 못하고 흘려보낸 순간들은 나중에 예기치 않게 불현듯 다시 내 마음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순간들은 강렬한 감정과 함께 찾아온다. 그것이 분노이든, 슬픔이든, 그리움이든, 기쁨이든, 감동이든. 그래서 감동하는 삶은 '스스로의 감정에 진솔'한 삶이다. 순간순간마다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봐주는 삶이다. 


감동하는 삶은 '느낀 바를 표현'하는 삶이다. 어떤 이는 커피숍에서 가까운 이와 수다를 떨며 그 감동을 표현하고 나눈다. 다른 누군가는 일기장에 감동한 바를 적어서 남기고자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 처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기반한 플랫폼에 기록하고 표현할 수도 있고 혼잣말로 스스로에게 다시금 되뇌어 줄 수도 있다. 종합하면, 감동하는 삶에 대한 나만의 정의는 '지금-여기의 내 감정과 감동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삶'이다. 이렇게 살아낼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해진다. 삶의 작은 일렁임 하나에도 눈길을 주고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지난 봄에 미국상담학회 연례학술대회를 다녀왔다. 필라델피아를 경유하여 뉴올리언즈에 다녀오는 여정이었다. 그간 비행기를 많이 탔음에도 여전히 창문 너머로 바라본 세상이, 하늘이, 푸르고 아름다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할 수 있음에, 십 년도 더 지난 지난 날의 바람을 아직 지켜 나가고 있음에, 감사했다. 이처럼 감동에는 감사가 뒤따른다. 감동하는 삶의 결과는 감사하는 삶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느끼고, 표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왼쪽은 뉴올리언스, 오른쪽은 필라델피아. 사뭇 다르지만 아름다웠던 두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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