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3,977 케이스.
백사십삼만삼천구백칠십칠 케이스.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1월 10일 미국에서 단 하루 안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다. 물론 매일 이 정도의 확진자가 나오는 건 아니고 기록적인 케이스를 남긴 날이었다. 미국이 큰 나라라곤 하지만, 약 3억 3천만에 달하는 전체 인구수를 감안해도 정말 큰 숫자다. 아마 감기나 독감으로 치부되거나 검사와 확진 없이 지나간 케이스를 합치면 더 큰 숫자였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선 이미 코로나바이러스가 감기나 독감처럼 매년 적절하게 예방하고 관리해 주어야 하는 질병이 되고 있다.
고심 끝에 우리 가족은 이제 곧 만 5세가 되는 첫째 아이를 Pre-K 스쿨에 그만 보내기로 결정했다. 미국에서는 만 5세 이상이 되면 의무교육으로 킨더가든, 즉 초등교육을 시작하게 되는데 Pre-K는 만 4세 이상의 아이들, 즉 킨더가든을 1년 앞둔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 반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조심하자는 목적이 크지만 다른 이유들도 있다. 최근 아이가 친구들에게 조금 놀림을 받았는지 스트레스를 계속 호소하기도 했고, 매달 나가는 큰 비용을 좀 절감해 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첫째 아이가 유치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보낸 그 첫날이었다. 물론 주말이나 휴일엔 당연히 학교를 가지 않긴 했지만 공식적으로 홈스쿨링을 시작하는 첫날이었던 셈이다. 나와 아내로선 첫째와 둘째를 평일에 모두 집에 품고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꽤 각오를 했었다. 아이는 제법 커서인지 생각보다는 일정을 잘 따라줬다. 공부하는 시간, 티비 보는 시간, 그림 그리고 색칠하는 시간 등등.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는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적극적으로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때에 이따금씩 심심하다고 투정을 부리긴 했지만.
나는 재택으로 일을 하며 가끔 첫째와 놀아주기도 하고, 둘째 아가의 기저귀를 갈기도 했다. 그래도 나로서는 해야 할 업무가 있었기에 낮시간 동안에 육아는 주로 아내의 몫이 되었다. 그런 아내가 낮에 두 아이의 주양육자를 맡으며 밤에 갓난아기의 수유까지 하는 건 안 될 일이었다. 그건 슈퍼맨도 원더우먼도 정말 정말 하기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런 이유로 이제 갓 생후 두 달이 된 둘째 아이의 밤 수유는 이제 내가 맡기로 한 것이다.
너무 다행인 사실은 둘째가 비교적 순하고 잘 자는 아이라는 점이다. 비록 어제는 새벽에 1시간 반 동안 고래고래 울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내 진을 빼놓았지만, 첫째와 비교하면 그래도 참 온순하다. 첫째는 기질적으로 예민한 면이 있어서 편히 잠들거나 깊게 자지 못하는 편이다. 잠을 워낙 싫어하기도 해서 요새도 억지로 억지로 침대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지 않으면 11시를 훌쩍 넘겨 놀고도 더 놀겠다며 엉엉 울곤 한다. 매일 이런 잠과의 투쟁을 반복하는 첫째아이는 아기 때도 잠으로 애를 많이 먹였다.
아내는 첫째를 출산한 뒤 갑작스러운 산후출혈이 있어 동맥색전술을 받고 절대적 안정을 취해야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에도 아내에게 의사는 아기를 오래 들지도 말고 무조건 잘 쉬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감사하게도 처가에서 도움을 주시기로 해서 내가 출근한 동안 낮에 아기를 돌봐 주셨다. 그리고 그때도 한동안 밤 수유는 주로 내 차지였다. 한 시간 반마다 깨서 앵앵 우는 아기가 어떤 수로도 달래지지 않을 땐 정말 울고 싶었다. 처가 어른들과 아내가 깰까 봐 화장실과 주방을 오가며 울음을 달래던 길고 길었던 밤.
그래도 제법 큰 첫째는 이젠 그 시절에 비하면 참 많이 컸고 잠도 제법 잘 잔다. 사실 첫째의 이런 기질은 어쩌면 나를 닮았다. 나 역시 쉽사리 잠을 편히 들지도, 깊게 잠들지도 못한다. 졸리고 피곤해도 기어이 유튜브로 예능이라도 조금 보고 자려하고 웹툰 한 편이라도 더 보고 자려는 내 모습이, 어떻게든 안 자고 조금이라도 더 놀겠다며 떼를 쓰는 내 아이를 닮았다. 아이에게서 나를 닮은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게서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도 첫째는 자러 가기 전 개길대로 개긴 뒤 10시가 다 되어 느지막이 침대에 누웠다. 그리곤 씻고 나오는 나를 보며 하는 말.
아기가 밤에 울텐데 아기랑 자면 아빠 기절하겠다, 어떡해?
아주 웃기고 있다. 네가 아기일 때 안 자고 맨날 울어서 진짜 기절할 뻔했거든? 그리고 아까 추운데 너랑 나가서 눈싸움하고 들어와서 더 힘들었거든? 자려고 누운 아이 괜히 흥분시키랴 장난스러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론 웃음이 났다. 그렇게 밤잠 낮잠 가릴 것 없이 잠으로 우릴 고생시키던 첫째 아이가 둘째를 돌보러 가는 내 걱정을 해 주다니.
우습지만 위로를 받는다. 힘도 조금 나는 기분이다. 그래, 아직까진 너무 잘해주고 있는 우리 둘째이지만, 혹여 좀 고생스러운 순간을 안겨준다고 해도 그날도 그 순간도 금세 지나간 추억의 시간이 될 것을 알기에. 오늘 밤도 잘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