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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Dec 31. 2021

자녀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

둘째의 출산과 가족의 완성

둘째의 탄생


얼마 전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실은 담담한 이 한 문장에는 결코 다 담아지지 않을 인생의 큰 변화다. 결혼한 이후로 나와 아내는 늘 둘은 낳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왔고, 이제야 그 소망을 이룬 셈이기도 하다. 첫째 아이를 낳고 나와 아내 모두 그간 눈앞에 놓인 일들ㅠ을 하며 바삐 살아온 탓에 첫째 아이와는 나이차가 꽤 나게 되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모두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나와 아내가 '베이비붐이 일겠다'라고 농을 했는데 우리가 거기에 일조할 줄이야... 아무렴 어때, 삶은 좀 더 고단해졌지만 마음만은 풍성하다.


둘째 아이를 가진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가족이 완성된 느낌이랄까.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기에 결코 추호라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자녀가 둘이 되자 가족이 완성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뭔가 큰 일을 이룬 듯 한 충만감. 아무래도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가 엄마와 아빠와 자녀 둘인 4인 가족에 가깝기도 하고 나 역시 그런 4인 가족에서 커 왔기에 지금 내 가족의 새로운 모습에 어렴풋이 익숙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아내와 내가 자녀 둘을 계획했기에 그 계획을 이룬(?) 데서 오는 성취감도 있을테다. 




자녀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


둘째의 출산을 경험하며 다시금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녀를 가진다는 것의 의미는 무얼까. 다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자녀를 낳게 된 걸까. 얼핏 둘러봐도 자녀계획의 모양은 가지각색이다. 치열한 고민과 계산 끝에 자녀를 낳을지 말지, 낳는다면 몇을 낳을지 결정하는 이들도 있고, 결혼하면 애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부담과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자녀를 낳기로 결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고민 없는 임신은 있을 수 있어도 고민이 없는 출산은 있을 수 없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해 나온 모든 생명은 이유가 무엇이든 세상에 나오는걸 환영받거나, 최소한 지켜지기로 선택된 아이들이 아니던가. 


자녀를 낳는다는 것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온 듯 싶다. 과거에야 자식은 일가의 노동력이자 자산이었고, 가문을 이을 수 있는 후손이었고, 또 비교적 최근까지는 노후를 의탁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들어 자녀란 일생에 걸쳐 교육을 비롯한 여러 투자와 지원을 해야 할 '부담'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지 않나 싶다. 또 그와 동시에 키우는 재미와 더불어 정서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존재이며, 또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바람과 소망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녀는 인생에 콘텐츠를 더한다


자녀의 또 다른 의미를 인생이라는 쇼의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인간은 자극을 추구하는 존재다. 10대와 20대일 때는 인생의 많은 콘텐츠가 새롭고 자극적이다. 그래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떤 대단한 사건이 없이도, 삶에 콘텐츠가 풍부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그런 자극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n번째 연애는 첫 번째 연애만큼 설레기 어렵고, 맛있는 음식들도 다 아는 맛이 되어 버린다 (물론 그래도 먹을 때마다 맛있긴 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친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격한 운동 후에 마시는 음료수가 두 잔째가 되면 그 효용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처럼.


점점 감동도, 경탄도, 자극도 느끼기 어려워질 인생의 어느 무렵, 결혼과 출산은 쉽사리 마르지 않는 새로운 자극의 샘이 되어준다. 연극으로 치자면 새로운 막이 열리는 것이고, 게임에 비유하자면 확장판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를 계획하고 출산한다면 자녀가 커가는 향후 10-20년 동안은 인생에 새로운 콘텐츠가 계속 공급되게 된다. 그 방향이 좋은 쪽이든 어렵고 힘든 쪽이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삶에 있어서 경험의 양과 질이 풍성해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많은 부모와 자녀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간다. 




결국, 사랑을 배우는 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녀를 가지는 부모들이 스스로의 정서적 만족과, 안정감과, 인생의 자극 또는 키우는 재미를 위해, 즉 이기적인 욕구의 만족을 위해 아이를 낳는다고 할 수는 없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를 빼닮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인간이 이기적 욕구를 넘어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사랑을 경험하고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자식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기독교의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인 '끊어낼 수 없는' 아가페적 사랑에 가장 가깝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부모-자녀의 관계를 통해 그 아가페적 사랑을 '체험'해 보게 된다. 부모는 자녀의 존재를 통해 사랑을 배우고, 자녀란 부모에게 사랑을 가르친다. 자녀란 그렇게 가진 것 이룬 것도 없는 이에게도 세상을 다 가진듯한 충만함을 안겨줄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가 된다. 온몸이 따끈따끈한 둘째를 품에 안을 때면 이 추운 겨울에도 내 가슴팍을 뜨끈하게 데워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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