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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Mar 30. 2020

의지력 총량의 법칙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학생 가족의 일상에 가져다준 변화 

어제부로 내가 거주하는 카운티도 'Stay at Home' 명령의 대상이 되었다. 모두에게 그러하듯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우리 가족의 하루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와 나의 가족은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 전에도 연방정부 및 CDC의 지침을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행해 오고 있긴 했다. 밖에 나갈 때라곤 주로 마트에 가서 먹을거리를 사거나 답답해하는 아이를 데리고 집 앞에 잠깐 산책을 나가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Stay at Home' 명령이 떨어진 어제저녁 이후로는 그런 최소한의 바깥출입조차 더 꺼려지게 된다. 이렇게 온 가족이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함께 보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모두가 각자만의 어려움을 견뎌내고 있을 테고, 그건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의 경우 아내와 나 둘 다 풀타임 학생으로 있는데, 아이는 봄방학 이후로 쭉 어린이집을 못 가고 있다. 해외에 있다 보니 양측 부모님이나 친지들로부터 육아에 대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 오롯이 아내와 나 둘이서 육아와, 학업과, 연구와, 상담과, 기타 업무가 뒤범벅이 된 일상을 삼 주 가량 보내오고 있다. 나는 올 가을부터 잡마켓에 나가서 직업을 구해볼 생각이었는데 다른 여느 분야들처럼 학계도 전망이 무척 어두워졌다. 미국에서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hate crime) 도 늘어나고 있어서 혹시 모를 테러에 대한 걱정도 늘었다. 기분 탓일까, 식료품점과 산책로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눈빛이 괜스레 매섭다. 노심초사, 전전긍긍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마음이 조금 더 번잡해진 건 사실인 것 같다. 



   


번잡한 마음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당장 눈 앞의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매 순간이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 순간들이다.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에 대한 의사결정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인간의 의지력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의지력 총량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실제로 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과 연구를 통해 우리의 의지력은 정량이 있으며, 그 양이 다하고 나면 우리의 의지력은 고갈된다는 사실을 밝혀 왔다. 이런 의지력에는 감정 조절, 생각과 행동의 조절, 시간 관리, 충동을 조절하는 일 등이 모두 포함된다. 즉, 한 인간으로서 구실 하기 위한 거의 모든 활동에는 모두 의지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는 정해진 양의 의지력을 어떤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할지 매 순간 선택하는 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우리들. 집중은 안 되고 집은 엉망진창이 되기 십상이다.  출처는 www.nbcnews.com/think/opinion


내 전공은 꼭 실험실에 가서 장비를 쓰지 않아도 연구도, 미팅도, 수업도 할 수 있는 전공이다. 나의 경우 상담과 슈퍼비전은 올스탑 됐지만 아내는 지난주부터 온라인으로 상담도 다시 재개했다. 결과적으로 나와 아내 둘 다 평소에 하던 업무를 거의 그대로 하면서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한편 아이의 고집과 떼에는 성역이 없다. TV를 보겠다고, 밥을 먹지 않겠다고,  밖에 나가고 싶다고, 이를 닦지 않겠다고, 잠을 자지 않겠다고 온 몸에 힘을 주며 우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짠하기도 하지만 하루에도 그렇게 몇 번씩 아이와 씨름을 하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빠진다. 그렇게 그 날의 의지력을 아이에게 쏟아부어 훈육도 하고, 여차저차 밥도 먹이고, 이도 닦여 재우고 나면 남은 의지력이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할래 쳐도 깨작깨작, 야식의 충동을 거부할 의지력도 없어서 몇 날 밤을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야식을 퍼먹으며 유튜브를 봤다. 




물론 이 시국에서의 나의 푸념이 다른 누군가에겐 퍽이나 배부른 소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육아와 일을 해내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아이는 여럿인데 한부모가정인 경우만 생각해 봐도 얼마나 많을런지. 이번 사태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분들의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 학교의 자체 호텔과 레스토랑에 근무하던 직원 중 200여 명이 이미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활동을 하던 가장이었을 것이다. 하루하루의 노동과 임금으로 삶을 영위하던 분들도 생계의 위험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내가 따뜻한 집에서 집밥을 먹으며 앞으로의 진로를 걱정할 때에, 어떤 이들은 당장 오늘의 의식주를 걱정해야 한다. 재난의 갈퀴는 이토록 잔인해서, 두툼한 옷을 입은 자들에게는 그 옷을 상하게 하지만, 헐벗은 자들에게는 그들의 살을 곧장 할퀴고 목에 칼날을 들이댄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편으로 나는 나의 일상을 지속해 내야 한다. 아내와 나는 오늘부터 함께 건강한 식단을 꾸리고, 홈트레이닝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며, 몸과 마음과 영의 건강을 챙겨보자고 '다시' 다짐했다. '다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몇 주 사이에 이미 수차례 다짐하고 또 수포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어쩌면 이번에도 또 금세 자제력을 잃게 될지도 모르고, 양육자인 나의 웰빙에 초점을 두다 보면 상대적으로 아이에게 원하는 만큼의 케어를 해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은 의지력을 쥐어짜 절제되고 심플한, 균형 잡힌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가 보기로 한다. 나의 의지와 아내가 의지가 만났을 때 1+1=3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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