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좋다는데 왜 사는 건 이럴까?(1)
사주명리, 사주팔자 지피피기
사주팔자를 보면 부자가 될 팔자에 관운도 좋고 무엇하나 나무랄 것 없는데, 누구는 부자가 되고 누구는 그저 그렇게 사는 걸까? 똑같은 날자에 시간분초까지도 같은 쌍둥이도 살아가는 방식과 길흉은 다르게 나타난다. 사주팔자를 믿어도 되는 걸까?
누구나 이런 의문점을 가지면서도 사주팔자를 보고, 무당을 찾아가 신점을 본다. 종교적 신을 믿는 이들은 본 적도 없는 존재 자체를 확인할 수도 없는 자신들의 신에게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물론 백 프로 확신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믿는 것이니 자신의 신념을 따를 뿐이다.
그렇다면 사주팔자를 통해 사람의 운을 판단하는 사주명리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느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사주 한번 봐드릴까요?" 했더니, "나는 교회에 다녀서 보면 안돼요."라고 하더라. 또 한분은 "다른 신을 섬기면 안돼요."라고 하였다. 과연 예수가 여기에 있다면 사주명리학이나 주역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할지 의견을 한번 묻고 싶다.
인간은 생로병사라는 운명적 한계에 갇혀 있다. 그래서 그 한계를 넘기 위한 수단, 또는 한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철학, 타자에 의해 나를 규정하고 의탁하고자 하는 종교는 어쩔 수 없는 존재의 한계성에 의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사주팔자는 음양오행의 성정을 품은 천간과 지지의 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만물은 지구의 공전에 의해 일어나는 춘하추동이라는 기후적 변화에 순응하며 생로병사를 거듭한다. 이것은 예수가 아니라 부처 할아비가 와도 반박할 수 없다.
천간은 만물의 근원에 있는 음과 양이라는 기운의 대립과 화해를 통한 상호작용으로 만물의 씨앗이라 할 수 있는 오행 장치가 마련되고, 이 오행의 생극제화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온갖 사물을 펼쳐내는 것을 문자화한 것이다.
지지는 1년을 12개월로 분류해 놓은 것이니 1년을 표시하는 달력과 같다. 다만 지지라는 문자에는 달력의 숫자와는 달리 그 계절 해당 월의 사시순환에 대한 정보가 함유되어 있다. 이러한 천간과 지지의 조합을 통해 존재의 특성을 판단하고 계절에 따른 삶의 흐름을 분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대단히 합리적인 인문적 특성을 지닌다.
예수가 사주팔자를 통해 존재를 분석하는 사주명리학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올커니" 하면서 무릎을 탁 쳤을 거라 생각된다. 기독교 경전을 바탕으로 성립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창조한 이 지구의 순환 이치를 천간과 간지로 정리하고 그것을 통해 사람 개개인의 삶에 대해 상담을 해주는 사주학은 결코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벗어나는 행위라 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의 누적된 경제적 활동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통계를 내어 경제 예측시스템을 만들어 향후의 경제적 상황을 예측함으로써 시의적절한 경제활동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도록 도움을 준다. 이러한 경제 시스템을 우리는 경제학, 또는 경영학이라는 학문으로 통칭한다.
"모든 걸 하나님이 해줄 텐데, 경제학 경영학이 무슨 필요가 있어?"
아마도 이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치료해 줄 텐 데, 병원이 무슨 필요가 있어?"
물론 이러한 사람도 없겠지. 뉴스를 통해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예수님께 기도만 하다가 죽는 사람도 가끔 보기는 한다. 하나님이 내 맘대로 사용하는 만병통치약인가?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며 사계절을 경험하고 자전을 통해 낮과 밤을 경험한다. 이 사시사철과 밤낮의 순환을 통해 씨앗은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장성하여 열매를 맺고, 태풍과 비바람과 뜨거운 태양을 견디며 숙성된 열매를 땅에 떨어트리고 가을의 숙살지기를 통해 알갱이와 쭉정이로 분리되어 수렴된다. 그리고 겨울의 깊은 땅 속에서 깊은 잠을 자며 보존되다가 다시 지구 순환을 통해 태양의 따스한 기운이 땅 속 깊이 전달되면 다시 생명의 기지개를 켠다.
예수가 와도 이런 사시순환의 논리는 반박할 수 없다. 본인이 창조한 지구 순환의 모습을 표현한 것 뿐인데? 물론 부처가 환생해도 반박할 수 없을 거다. 그들도 사시순환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하고, 밥 먹고 똥 싸고 살다가 간 사람들이니까. 이 사실을 어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사시순환과 생로병사.
기독교적 종교 관점에서 본다면, 이건 하나님이 만든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속에서 자율적으로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자율적으로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간다. 반박할 수 있는가?
천간과 지지로 지구의 순환원리를 표상한 사주명리학이나, 여덟 개의 괘상으로 우주만물의 원리를 표상한 주역은 종교가 아니라 인문학이다.
하나님이 창조했든,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빅뱅으로 탄생하였든, 어쨌든 나를 비롯한 만물은 그 우주, 이 지구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사시순환의 누적된 경험을 토대로 달력을 만듦으로써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을 터득하여 적용한다. 예수나 부처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인간이 수천 년을 거쳐 사시순환 속에서 생로병사를 거듭하며 쌓아올린 퇴적물이다.
인간은 사시순환의 경험을 통해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지를 생각하고 정리하고 기록함으로써 더 나은 학문적 토대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주역은 음양이라는 부호를 가지고 팔괘로 만들어 우주와 지구의 순환원리를 설명한다. 사주명리는 음양오행의 성정이 내재된 천간과 지지를 통해 지구의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탐구한다.
사주명리학이라는 시스템은 이러한 인간의 경험이 누적되어 쌓아올린 인간을 위한 "지혜의 서"라 할 수 있다. 모든 학문은 인간을 위해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인간 그 자체를 분석해 주는 학문은 심리학 정도 외에는 공식적으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주학은 사시순환과 관련되어 인간 개개인의 특성과 성향을 분석함으로써 시의적절하게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자문 역할을 해주는 인문학이다. 이것을 단순히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이것이 미신이라면 기본적으로 한 번도 본적 없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다만 글 속에서 읽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 전달받은 신은 결코 미신의 속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어떤 예측에 있어서도 100%의 확정성은 없다.
다만 잠재되어 있는 가능태를 말할 뿐이다.
경제학도, 경영학도, 사주명리학도, 그리고 과학도 100%는 없다.
다시 사주명리학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사주팔자는 다 좋다고 하는데 사는건 왜 이럴까?"
이런 분을 위해 사주명리를 좀더 얘기 해보자.(2)
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