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 주역명리,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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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학문은 생로병사의 시공간적 한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시공간의 불확실한 변화 예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경험칙에 통계를 내고 논리성을 부여함으로써 내일의 불확정성을 확률적으로 예측한다. 경제학, 경영학 등 대부분의 학문이 그렇다.
인간의 인생 행로를 예측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무속적 신앙을 통해 무당의 입을 빌려 내일을 예측하는 방법밖에 없을까? 아니면 본적도 없는 신에게 모든 해답을 맡기고 의존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지구 상에서 수천년을 살아오며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계 낸 적이 없을 뿐 더러 통계를 낸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시공간적 한계 속에서 생로병사를 거듭하며 개개인마다 살아가는 복잡다단한 삶의 양태를 어떻게 통계를 내고 논리성을 부여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막연히 강물 위를 떠내려 가는 나뭇잎처럼 삶을 표류하기에는 이성적이고 지혜롭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종교적 테두리를 쳐서 신(神)으로 둔갑시키는데 익숙하다. 예수가 바다 위를 걸은 것을 기적으로 신앙하면서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 영상 통화하는 것은 당연시한다. 만일 예수 시대 사람에게 영상통화를 하게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AI 신인류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면 아마도 AI는 그들의 신으로 등극하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학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수많은 사건들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무지는 종교의 탈을 쓰고 우리의 눈앞에서 신으로 둔갑하곤 한다. 귀신이란 믿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믿음의 영역이다. 신비는 신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종교라는 논리적 틀을 걸치고 우리 앞에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신비가 과학으로 증명되면 신비는 기적이 아닌 물리적 현상이 된다. 우주 삼라만상 중에 그 어느 것도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것은 없다. 귀신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 역시 물리법칙 안에 존재하는 물리체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을 따라 생로병사를 거듭하는 존재일 뿐이다. https://bookk.co.kr/bookStore/66a77ff1d13a138d351a96c0
사시순환의 이치를 밝혀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문자로 논리화시킨 사주 명리학은 인간이 현세에 태어난 년월일시를 간지로 전환한다. 즉, 년월일시를 간지(干支)로 전환함으로써 자연의 일부로서의 개인의 특성을 문자로 표상한 것이 사주팔자(四柱八字)이다. 우리는 사주 여덟 글자를 분석함으로써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특성을 판단할 수가 있다.
태어난 날 이래, 시간은 흐르고 공간은 변해간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사주 여덟 글자를 변화해가는 시공간에 대입함으로써 우리는 개인의 과거와 미래를 확률적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사주 명리학은 천간과 지지로 표현한 자연학이자 인간학이다. 공자님은 주역 「계사전」에서 “易與天地準역여천지준”이라고 하여 역(易)은 천지 만물을 준거하여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보이지 않는 근원에서 작용하는 음양은 오행의 생극 시스템에 의해 현상의 세계에서 상(象)과 문자(文字)로 드러난다. 상은 주역 팔괘(八卦)가 담당하고, 문자는 천간(天干)이 담당한다. 그러므로 천간을 기반으로 구성된 사주팔자는 음양이라는 근원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주역 팔괘를 만날 때 비로소 완전체를 이룬다. 본서는 만물의 근원에서 작용하는 음양을 탐구한 양자물리학, 그리고 음양이 상으로 표상된 �주역�의 팔괘(八卦), 문자로 표현된 사주 명리학이 함께 어우러져 길흉의 해석을 넘어 지적 갈증의 해소라는 지식을 선물한다. 그리고 사주팔자는 개인의 자유의지 발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는 사주 디자이너의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