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허심
태초에 태허(太虛)는 비어 있었네.
아무런 소리도, 빛도 없이
오직 무한한 침묵만이 가득했으니,
그것이 만물 이전의 첫 번째 비움이었다네.
일원시(一元始),
한순간의 숨결로 우주를 빚어내고
음(陰)과 양(陽)이 서로의 뿌리가 되어
삶이라는 거대한 채움을 시작했으니,
그대들 생로병사의 순환은
마치 굽이치는 강물과 같구나.
욕심으로 채우고, 번뇌로 채워진 마음은
무거운 짐이 되어 영혼을 짓누르고
그대들 스스로 지옥을 만들었으니,
나는 그대들에게 묻노라.
그 채움의 끝에 무엇이 남았는가?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비웠네.
소유하려는 마음, 덧없는 이름,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마저도.
허정(虛靜)의 바다에 이르러
고요한 태극호흡을 쉬니,
비로소 내 안의 본성(性)이 깨어나는구나.
이 몸은 비었으나, 태허의 지혜로 가득하고
이 마음은 비었으나, 우주의 모습을 품었으니.
나는 우주 안의 주체요, 우주 또한 나의 모습을 품었네.
비움으로써 모든 것을 채웠고,
채움으로써 다시 비워낼 수 있는
무위이무불(無爲而無不)의 경지에 이르렀다네.
그대들이여,
삶의 잔을 비울 때 슬퍼하지 말라.
그 빈 잔에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채워지고,
세상 모든 것을 비울 때
환존합대동(環存合大同)의 큰 하나가
그대들의 가슴을 채우리라.
원융무애(圓融無碍),
비움과 채움은 둘이 아니니
이것이 곧 영원히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이 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