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PR 인턴으로 살아남기(2)

오만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

by 비상구가빨강

마케팅 인턴일 때, 나는 늘 ‘도와주는 사람’ 같았다. SNS도 운영하고 콘텐츠도 기획했지만, 어떤 일을 깊이 다룰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루에 두세 가지 다른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고, 일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았다. 기획안을 써도 늘 초안으로만 남았고, 결정은 다른 누군가가 했다. 나는 전문가라기보다는 잡일을 담당하는 사람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PR 에이전시에서는 조금 달랐다. 이곳은 오직 미디어와 기사로 업을 만들었다. 보도자료를 다듬고, 기자 미팅을 준비하고, 하나의 주제로 깊이 있는 기획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전문가가 되어간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인턴이었기 때문에 내 이름이 기사에 올라갈 일은 없었지만, ‘이 메시지를 어떻게 말하면 더 잘 전달될까’를 고민하는 순간순간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세워주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피드백이었다. 누군가는 지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피드백을 통해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잘 쓴 문장’을 쓰고 싶었다면, 그때부터는 ‘제대로 쓰는 글’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다. 퇴고를 할수록 글이 달라지는 걸 알게 되었고, 말보다 중요한 건 맥락이라는 걸 처음으로 체감했다. 매일 아침 기사 스크랩을 하며 좋았던 표현을 따로 적어두는 습관도 그때 생겼다. 말의 결을 다루는 일, 그게 나한테는 꽤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장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건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였다. 나는 그곳에서 자주 실수했다. PR에서 가장 기본적인 업무라고 하는 모니터링부터가 어려웠다. 담당 고객사만 서른 곳이 넘었고, 매일 수십 개의 기사를 빠짐없이 읽고, 걸러내고, 정리해 파일로 만드는 일이었다. 리더마다 트래커를 정리하는 방식도 달랐다. 출근하자마자 기사를 열어보는 일이 습관처럼 이어졌지만, 이상하게 늘 한두 개씩 빠뜨리는 경우가 생겼다.

나는 그걸 만회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7시에 출근하겠다고 말했다. 더 집중하고, 더 많이 보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도 실수는 줄지 않았다. 문서를 열 때마다 손끝이 조심스러워졌고, ‘오늘은 또 뭐가 빠졌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속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AI도 실수하는데, 어떻게 이 많은 브랜드의 기사를 다 챙기라는 건지. 팀원들은 그런 나에게 조용히 조언을 건넸다. “이건 이렇게 보면 더 빨라요.” “이렇게 정리하면 누락 줄일 수 있어요.” 모두 진심이었고, 다정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런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나는 스물셋이었고, 나름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콘텐츠를 만들고, 글을 써왔고, 나름의 결과도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모니터링이라는 업무가 주어졌을 때, ‘나는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 지루함을 느꼈고, 기본기를 다지기도 전에 ‘새로운 일을 주세요’라는 말부터 했다. 그렇게 나는, 일을 잘하지도 못하면서도 말은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의 나는 너무 오만했다. 잘하고 싶었던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걸 잘 보여주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내는 것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먼저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모든 게 꼬였다. 결국 내가 마주한 건, ‘왜 나는 이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사님, 대리님, AE님… 모두가 돌아가며 조언을 건넸지만 그때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오만해진 사람을 일깨울 수 있는 건 결국 자기 자신뿐이니까. 그리고 그 시절의 나는, 아직 깨지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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